장미십자회, 로즈 크루시안의 진실 속의 진실 / 루터교 전통 + 남부 독일 파라켈수스 신비주의 전통의 결합이 장미십자회라는 허구적 상상력으로 구체화돼 / 장미십자회의 장미 상징: 장미는 무엇보다 가시를 달고 태어나기에 가시는 인간의 죄와 허영,자아의 고통을 말합니다. ​ ​ 기독교 신비주의에서 '가시 없는 장미는 없다' 라는 구절이 종종 나오는데 이런 의미이기도 합니다. ​ 그리고 십자가는 기독교적인 의미가 있겠지만 가장 큰 본질은 금욕주의나 고난의 신비주의가 아니라 또 고통스러운 세상에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삶에 완전히 몰입함으로써 구원을 얻는 것이다 라고 해석합니다. 결국 인내와 관용과 함께 결함 많은 세상에서 가져와야 할 태도로써 장미를 이야기한 부분들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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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의 장미십자회가 소위 로즈 크루시안의 전설은 오컬트 역사에서 영향을 미친 것들중 하나는 수많은 오컬트 비밀결사 단체들의 모티브가 되어 많은 신비학 단체들을 탄생시킨 점입니다.

로즈 크루시안에 대한 세편의 문서는 사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비밀결사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이러한 이야기가 수많은 지성인 계층들의 '비밀 형제단'과 '연금술'에 대한 로망을 불태웠고 꾀나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그 배경으로 탄생한 것이 프리메이슨과 황금새벽회 그 이외 수많은 뒤 따르는 오컬트 단체들입니다. 뉴에이지에서는 그놈의 '백색형제단' 의 모티브가 된 것이 바로 이 로즈 크루시안이 됩니다.

하지만 위에서 이야기 했듯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단체이고 이러한 로즈 크루시안 문서를 쓴 사람은 당시 초기 개신교 루터파 신학자였던 요한 발렌틴 안드레아(Johann Valentin Andreae)가 써내려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로즈 크루시안은 루터파의 신학자의 자작소설이고 그냥 재미로 쓴 소설인데 그거에 낚여서 다들 저런 멍청한 짓 하는거다 식으로 조롱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문제는 이게 굉장히 단편적인 해석이 됩니다.

오컬트 역사 라는게 참 이래서 재미있으면서 골때리는 부분들인데 시대정신을 흔들 정도로 영향을 준 문서를 겨우 재미로 썼을 수도 있지만 대체로는 그 뒷배경이 상당히 복잡한 부분들이 존재합니다.

요한 발렌틴 안드레아의 삶과 사상들 그리고 그의 가문에 대해서 파헤쳐보면 이건 결코 단순한 장난으로 쓴 소설이 아닌 부분들이 나오게 됩니다.


왼쪽부터 파라켈수스 , 루터교 , 안드레아 가문

안드레아 가문의 로즈 크루시안은 흰 바탕 위에 그려진 붉은 성 안드레아의 십자가, 그리고 각 사분면을 채운 네 송이 장미가 되는데 한편으로 이것이 로즈 크루시안의 원형이기도 합니다.

일단 장미십자가 문양은 흔히 루터파의 상징으로 알려졌지만 동시에 안드레아 가문의 상징입니다.

야콥 안드레아

이 문장은 1554년, 요한 발렌틴 안드레아의 증조부이자 종교개혁기의 중요한 신학자였던 야콥 안드레아(Jakob Andreae)가 공로를 인정받아 작위와 함께 수여받은 것이 됩니다.

야콥 안드레아는 단순한 가문의 조상이 아니기도 합니다.

그는 루터파 신학을 체계화하고, 독일 전역에서 복음주의 교리를 전파하며, 스스로 교회의 질서와 도덕을 세운 사람이고 그의 삶은 신앙과 윤리의 실천을 결합한 살아 있는 본보기였기에, 젊은 요한 발렌틴에게는 평생의 도덕적 스승이자 영적 모델이였습니다.

 

그래서 요한 발렌틴 안드레아에게 장미십자가는 단순한 문장이나 미적 표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문과 신앙, 두 혈맥이 하나로 결합된 상징이였습니다

핏줄과 신앙의 결합된 것이기에 이건 사실 글을 쓰는 제 사견이지만 보통 무게가 아닙니다. 어찌보면 '저주' 이기도 합니다.


그는 증조부를 이어서 루터파 신학자가 되었고 신앙의 유산을 물려 받았지만 동시에 자기 시대에 자신의 증조부 이루어낸 유산들로 교리 논쟁이나 하면서 길거리에 굶주리고 고통받고 비명 지르는 사람들을 쳐다도 보지도 않는 장난질이나 하는 자신의 교단을 보면서 새롭게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여기서 자신의 증조부를 욕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정말 피를 토하는 노력과 다짐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근데 여기에서 '신앙' 적인 삶 조차도 누구보다 모범이 되어야 하고 여기서 꼬투리 잡히면 증조부와 또 자신의 신앙까지 모조리 부정 당하기에 정말 어마무시하게 무거웠을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배경만 잠깐 보아도 그가 이러한 소설을 쓴 이유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정말 제가 요한이라고 한다면 바로 공황장애가 와서 쓰려졌을 겁니다.

신앙과 가문의 족쇄까지 모두 얽혀서 압력과 압박이 상당했고 또 자기 교단에서 정치질 하는 사람들이랑 치고박으면서 증조부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 나아가고 누구보다 모범적인 삶을 살아하기에 너무 힘들었을거고 진짜 보기만 해도 정신병이 왔을겁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자기 자신의 속마음의 이상을 표현한 전설이자 서사인 로젠 크로이츠를 탄생시켰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렇게라도 안하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서 말이지요..


'장미'는 안드레아 가문에서는 인내,관용을 상징을 하였기에 오히려 이 결함 많고 잔인하며 유혹적인 세상에서 피어나는 꽃이자 태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장미는 무엇보다 가시를 달고 태어나기에 가시는 인간의 죄와 허영,자아의 고통을 말합니다.

기독교 신비주의에서 '가시 없는 장미는 없다' 라는 구절이 종종 나오는데 이런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기독교적인 의미가 있겠지만 가장 큰 본질은 금욕주의나 고난의 신비주의가 아니라 또 고통스러운 세상에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삶에 완전히 몰입함으로써 구원을 얻는 것이다 라고 해석합니다.

결국 인내와 관용과 함께 결함 많은 세상에서 가져와야 할 태도로써 장미를 이야기한 부분들이 됩니다.

흔히 말하듯이 장미가 단순히 '비밀' 을 상징하는 것 보다는 장미 십자회의 상징을 가장 널리 알리게 된 요한 발렌틴 안드레아에게 있어서는 장미는 기독교 신비주의에서 널리 이야기 되는 장미로써 받아드려지고 또 훨씬 무거운 상징이 됩니다.


그러면 이쯤되면 또 딴지거는 분들이 항상 말하지만 가문자랑 할려고 소설 쓴거네? 그면? 이러지만... 생각보다 이것도 간단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안드레아는 당시 귀족들과 다르게 독특한 점중 하나는 자신의 조상의 이름을 함부로 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이 신학 만큼이나 가장 열정적으로 몰두 했던 일이 가문 족보 정리와 연구였습니다.

조상을 자랑하기 보다는 그들의 삶의 덕목을 올바르게 계승하기 위한 작업이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가문사에 적은 책인 《Fama Andreana Reflorescens》 에서도 조상들 이름이나 업적을 늘어 놓는 뻔한 짓은 결코 안하고 신앙적인 윤리와 도덕적인 책임으로 세워진 가문이다 라고 강조하는 파트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는 조상들 이름 팔아먹으면 미덕을 자랑하는 것은 오만이며 그 미덕을 실천하지 않으면 가문의 수치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가문사 책이기 보다는 안드레아 본인의 자기변호서 즉 신앙적인 자기 성찰서이자 영적인 선언문이라고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안드레아의 삶을 보면 그럴 인물이 아니고 그는 말년에 천년왕국설과 기독교의 종말론적인 세계관들을 모두 거부하였고 다원적이고 휴머니즘적인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신앙과 교리를 넘어서서 인간의 존엄과 회복에 대한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을 했고 로즈 크루시안 문서를 써내려간 사람 답게 가난한 자를 위한 교육과 치유활동과 공동체 재건에 해서 많이 중요시 여기고 힘을 썼습니다.

그래서 그의 저서에서 천국은 하늘이 아니라 지혜와 사랑으로 서로 돕는 공동체 안에 있다고 선언을 하기도 합니다.

그 이외 안드레아가 남긴 수많은 기록들을 보면 더욱 그렇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한편으로는 안드레아는 루터파 신학을 초월하는 시도 였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당시에 인간의 내면이 신이 깃든다는 사상과 경전이나 교회 없이도 신을 만날 수 있는 사고는 정말 파격적이였으니깐요 그걸 결합한 것이 로즈크루시안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안드레아가 로즈크루시안의 신화를 써내려간 것은 우연이 아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연금술과 자연철학적인 사유는 대체 어떻게 흘러갔을까요?

이건 안드레아가 살고 있는 가문 위치를 보면 알 수 있지만 그가 살고 있는 곳은 남부독일이고 이 남부독일은 파르켈수스 사상과 제자들이 그 시대에 여전히 활동하던 지역이기도 하였습니다.

안드레아 가문은 무엇보다 지식인 집안이였기에 당대 지성계의 흐름속에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학문,신학적인 교류를 통해서 파라켈수스 사상들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그의 연금술의 철학과 배경은 한편으로는 파라켈수스의 유산을 이어받았다고 볼수 있습니다.

실제로 파라켈수스는 수많은 일화에서도 가난한 자들을 배불리 먹이면서 치료를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사실이니깐요.. 그러니 단순 루터교 신학자 즉 개신교 신학자가 악의적인 장난 혹은 낚시의 목적으로 쓴 소설이기 보다는 한편으로는 자신의 이상과 구원을 표현한 서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로젠 크로이츠의 근본적인 뿌리는 파라켈수스가 남긴 씨앗을 계승한 후예들에 의해서 뿌려지고 이것이 안드레아 가문이라는 좋은 토양에서 자라나서 장미십자가로써 개화가 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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