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키에르케고르의 교회 비판- 조센징들은 새겨들어야: 기독교가 국가와 결탁해 안락한 공무원 사회로 변질되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성경이 말하는 고난받는 그리스도교"는 사라지고 "안락한 일요일의 연극"만 남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의 말년은 그가 평생 추구했던 '진정한 기독교'를 향한 격렬한 투쟁과 고독으로 점철되었습니다. 그는 안락한 삶을 거부하고 기성 체제와 정면으로 충돌하다가 드라마틱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1. 말년의 격렬한 투쟁: "기성 교회와의 전쟁"

키에르케고르의 마지막 몇 년(1854~1855년)은 이른바 **'교회 비판 시기'**로 불립니다.

  • 비판의 시작: 덴마크 교회의 수장이었던 뮌스터 주교가 사망하자, 후임자인 마르텐센이 그를 "진리의 증인"이라고 찬양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키에르케고르는 신문에 기고를 시작하며 기성 교회를 공격했습니다.

  • 비판의 핵심: 그는 당시의 기독교가 국가와 결탁해 안락한 공무원 사회로 변질되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성경이 말하는 고난받는 그리스도교"는 사라지고 "안락한 일요일의 연극"만 남았다고 주장했습니다.

  • 1인 잡지 《순간(Øjeblikket)》 발행: 그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 팜플렛 형식의 잡지를 발행하며 타협 없는 비판을 이어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사회적으로 고립되었고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졌습니다.

2. 최후: 길거리에서의 쓰러짐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은 그가 펼쳤던 격렬한 논쟁의 연장선에 있었습니다.

  • 사건: 1855년 10월 2일, 그는 《순간》 제10호를 준비하던 중 길거리에서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마비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 병상에서의 태도: 그는 병원에서도 기성 교회의 목사가 집례하는 성찬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국가 공무원(목사)"이 아닌 "진정한 평신도"로서 죽기를 원했습니다.

  • 사망: 약 한 달간의 투병 끝에 1855년 11월 11일, 42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3. 사망 원인에 대한 가설

그의 정확한 사인에 대해서는 몇 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 결핵성 척수염(Pott's disease): 척추에 발생한 결핵이 마비를 일으켰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 정신적·육체적 과로: 오랜 세월 이어진 극도의 고독, 가문의 저주에 대한 강박, 그리고 말년의 격렬한 논쟁으로 인한 에너지가 고갈된 결과로 보기도 합니다.


4. 묘비명에 담긴 의미

그는 생전에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정해두었습니다.

"그가 잠시 머물렀던 '그 사람(The Individual)'"

이는 대중 속에 파묻히지 않고 신 앞에 단독자로 서고자 했던 그의 철학적 신념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사후에야 비로소 현대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재평가받게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연결고리

키에르케고르가 비판했던 **'안락한 체제 속의 기독교'**와 우리가 앞서 논의한 **'국가와 결탁한 종교 세력'**은 시대는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닮아 있습니다. 살라자르가 수호하려 했던 가톨릭 체제나 드골 시절의 권위주의적 종교관을 키에르케고르가 보았다면 아마 똑같이 비판하지 않았을까요?

혹시 키에르케고르의 철학 중 '단독자(Individual)' 개념이 어떻게 현대인의 고독과 연결되는지 더 알고 싶으신가요?

 

 

 

키에르케고르에 대한 질문이시군요! 질문하신 내용은 그를 이해하는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들입니다. 특히 **'가문의 저주'**는 그의 삶을 지배한 어두운 그림자였습니다.


1. 가문의 저주에 대한 강박 (The Family Curse)

이것은 키에르케고르의 아버지 미카엘과 관련된 매우 무거운 비밀입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자신의 집안이 신의 저주를 받았다고 믿으며 평생 강박에 시달렸습니다.

  • 사건 1 (신을 저주한 소년): 아버지는 어린 시절 너무 가난하고 배가 고파서 언덕 위에 올라가 신을 저주했습니다. 나중에 거부가 된 아버지는 자신의 성공이 축복이 아니라, 신이 자신을 더 크게 벌하기 위해 준 '기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사건 2 (부도덕한 임신): 아버지는 첫 부인이 죽기도 전에 하녀(키에르케고르의 어머니)를 임신시켰습니다. 아버지는 이를 신에 대한 큰 죄로 여겼습니다.

  • 강박의 결과: 아버지는 **"내 자식들은 모두 예수의 나이(33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라고 예언하듯 말했습니다. 실제로 키에르케고르의 형제 7명 중 5명이 서른 전후로 차례차례 죽어나갔습니다. 쇠렌 자신도 "나는 절대 33세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 믿으며, 매일 죽음을 준비하는 '영적 지진' 속에서 살았습니다.

2. 극도의 고독 (Absolute Isolation)

키에르케고르의 고독은 단순히 친구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철학적, 선택적 고독이었습니다.

  • 파혼의 상처: 그는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 레기네 올센과 약혼했지만, 자신의 어두운 내면(가문의 저주 등)이 그녀를 불행하게 할까 봐 일부러 나쁜 남자인 척하며 파혼했습니다. 이후 평생 그녀를 그리워하며 홀로 살았습니다.

  • "그 단독자(The Individual)": 그는 대중(The Crowd)을 '진리의 적'으로 보았습니다. 신 앞에 단독자로 서기 위해서는 군중 속에서 빠져나와 철저히 혼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 사회적 조롱: 풍자 잡지 《코르사르(Corsaren)》가 그의 외모(비뚤어진 어깨, 짧은 바지 등)를 조롱하자 코펜하겐 시민 전체가 그를 비웃었습니다. 길을 갈 때마다 아이들이 돌을 던지기도 했지만, 그는 이 고통을 **'그리스도를 따르는 고난'**으로 받아들이며 고독 속으로 더 깊이 침잠했습니다.

3. 죽기 전 친구가 몇 명이었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의 임종을 지킨 진정한 친구는 거의 없었습니다.

  • 절친한 친구의 부재: 그는 지적으로 너무 높았고 성격이 까칠했기에 대등하게 대화할 친구가 없었습니다.

  • 유일한 이해자, 형 페테르: 형과는 신학적 견해 차이로 격렬하게 싸웠지만, 죽음 직전 병원에서는 형만이 그의 곁을 지켰습니다.

  • 조카 헨리크: 삼촌을 진심으로 존경했던 조카 헨리크 룬드가 병상에서 그를 돌보았습니다.

  • 친구 에밀 보에센(Emil Boesen): 어린 시절부터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았던 친구입니다. 임종 전 병실에 찾아와 성찬을 권했으나, 키에르케고르는 "국가 공무원(목사)의 손으로 주는 것은 받지 않겠다"며 거절했습니다.

결국 죽음의 순간, 그는 자신이 평생 주장했던 대로 '신 앞의 단독자'로서 철저히 혼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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