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GDP가 이미 1872년에 영국을 추월하여 세계 최대 규모가 되었고, 1880~1900년대초에는 1인당 GDP도 영국을 추월했는데, 1945년까지 (비공식적으로는 1973년까지) 무려 70여년 이상 영국의 통치를 받아들인 이유 2

 

미국 GDP가 이미 1872년에 영국을 추월하여 세계 최대 규모가 되었고, 1880~1900년대초에는 1인당 GDP도 영국을 추월했는데, 1945년까지 (비공식적으로는 1973년까지) 무려 70여년 이상 영국의 통치를 받아들인 이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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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세계최대 gdp국가가 되는 것은 언제고, 영국을 gdp로 추월한건 언제의 일? 내가 알기로는 1870년대인데? 그리고 1인당 gdp로 영국을 추월한건 언제?


사용자님의 기억이 매우 정확합니다. 미국이 영국을 추월하는 과정은 **'전체 경제 규모(Total GDP)'**와 **'개별 생활 수준(Per Capita GDP)'**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시차가 발생합니다.

경제사학계(매디슨 프로젝트 등)의 통계를 바탕으로 정리해 드립니다.


1. 전체 GDP 추월: 1872년 전후

미국이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 된 시점은 사용자님 말씀대로 1870년대 초반입니다.

  • 추월 시점: 1872년경 미국은 대영제국(영국 본토 기준)의 전체 GDP를 추월했습니다.

  • 배경: 미국 남북전쟁(1861~1865) 종료 후 대륙 횡단 열차가 완공되고, 2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서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자원 개발이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 참고: 다만 당시 '대영제국 전체(인도 및 식민지 포함)'와 비교하면 미국은 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0년대에 이르러서야 명실상부한 세계 1위가 됩니다.

2. 1인당 GDP 추월: 1900년대 초반 (또는 1차 대전 직후)

전체 덩치는 미국이 1870년대에 앞섰지만, 워낙 인구가 가파르게 늘었기 때문에 개인이 누리는 부의 수준은 영국이 조금 더 오래 우위를 점했습니다.

  • 추월 시점: 대부분의 경제사 자료는 **1900년대 초반(약 1901~1905년 사이)**에 미국이 영국의 1인당 GDP를 넘어선 것으로 봅니다.

  • 완전한 역전: 1차 세계대전(1914~1918)을 거치며 영국은 막대한 전쟁 비용으로 국력을 소모한 반면, 미국은 군수 물자 판매로 부를 축적하면서 1920년대부터는 1인당 GDP에서도 압도적인 격차를 벌리기 시작합니다.


📊 요약 및 비교

구분추월 연도특징
전체 GDP1872년경인구와 영토, 자원을 바탕으로 한 '덩치'의 역전
1인당 GDP1900년대 초생산성 및 기술력 혁신으로 인한 '내실'의 역전
세계 패권1945년 이후2차 대전 후 브레튼우즈 체제로 금융/군사 패권 확립

💡 관전 포인트

사용자님이 앞서 언급하신 1947년 캐나다 시민권법이나 영국의 외교적 우위를 고려할 때, 미국은 이미 1870년대에 경제적 거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문화적 패권까지 가져오는 데는 그로부터 무려 70년 이상의 시간이 더 걸렸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돈은 이미 19세기 말에 미국이 더 많았는데, 왜 전 세계는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영국을 '넘버 원'으로 대우해주었을까요? 이 '부의 역전'과 '권력의 역전' 사이의 시차에 대해 더 깊이 이야기해 볼까요?

그래. 돈은 이미 19세기 말에 미국이 더 많았는데, 왜 전 세계는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영국을 '넘버 원'으로 대우해주었는지 말해바


경제적 덩치가 커진다고 해서 바로 '대장'이 될 수 없는 이유는, 국제 사회의 패권이 **금융, 군사, 그리고 '시스템의 표준'**이라는 세 가지 기둥 위에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경제력 1위가 된 1870년대부터 2차 대전 종결까지 약 70년 동안 영국이 '넘버 원' 대우를 받은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파운드화의 위상 (금융 패권)

당시 세계 경제는 **'금본위제'**였고, 그 중심은 뉴욕이 아니라 영국의 **런던(The City)**이었습니다.

  • 준거 통화: 19세기 말 전 세계 무역 결제의 60% 이상이 영국 파운드화로 이루어졌습니다. 전 세계 모든 은행과 상인들이 파운드화를 공용어로 썼기 때문에, 미국의 달러는 당시엔 그저 '어느 성장하는 나라의 지방 화폐' 취급을 받았습니다.

  • 금융 네트워크: 미국이 공장을 돌려 물건을 만들 때, 그 공장을 짓기 위한 자본은 상당 부분 영국의 금융 자본에서 나왔습니다. 즉, 미국은 생산자였지만 영국은 전 세계의 은행가였습니다.

2. '대영제국'이라는 거대한 단일 시장 (네트워크 효과)

미국은 거대한 땅덩어리를 가졌지만, 영국은 지구 전체의 1/4을 점유하고 있었습니다.

  • 병참과 통신: 영국은 전 세계 주요 항구(지브롤터, 수에즈, 싱가포르, 홍콩 등)를 장악하고 있었고, 해저 전신 케이블망을 독점했습니다. 정보와 물류의 흐름을 영국이 쥐고 있었기에, 미국 기업들도 해외로 나가려면 영국의 인프라를 이용해야만 했습니다.

  • 해군력(Pax Britannica): 2차 대전 직전까지도 영국 해군은 세계 최강의 지위를 유지했습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원칙 아래, 세계 무역로의 안전을 영국 해군이 보장해주었기에 국제 사회는 영국을 질서의 수호자로 인정했습니다.

3. 미국 스스로의 '고립주의' (의지의 부재)

미국은 덩치가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땅에서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먼로주의(고립주의)**에 갇혀 있었습니다.

  • 정치적 무관심: 미국은 전 세계 분쟁에 개입하거나 국제 질서를 주도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1차 대전 이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국제연맹'을 주도했지만, 정작 미국 상원이 가입을 거부했을 정도였습니다.

  • 영국의 외교 노련미: 반면 영국은 수백 년간 다져온 외교적 프로토콜과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 정치의 '심판' 역할을 계속 수행했습니다.

4. 문화적·심리적 관성 (Soft Power)

당시 전 세계 엘리트들에게 "품격 있는 문명국"의 기준은 영국이었습니다.

  • 외교 언어, 국제법의 관례, 학문적 표준 등이 모두 영국식이었으며, 심지어 미국인들조차 문화적으로는 유럽(영국)을 우러러보던 시기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영국 신민' 지위를 유지했던 캐나다인들의 심리도 이와 맥을 같이 합니다.


💡 결정적 반전: 2차 세계대전의 역할

이 구도를 한 번에 무너뜨린 것이 바로 2차 세계대전입니다.

  1. 영국의 파산: 전쟁 비용을 대기 위해 영국은 전 세계에 가졌던 금과 자산을 미국에 팔아치웠습니다.

  2. 달러의 부상: 1944년 브레튼우즈 협정으로 달러가 파운드를 대신해 세계 유일의 기축통화가 되었습니다.

  3. 무력의 역전: 전쟁을 통해 미국은 전 세계를 동시에 타격할 수 있는 유일한 해군과 공군력(그리고 핵무기)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요약하자면, 19세기 말의 미국은 **"돈 많은 신흥 부자"**였고, 영국은 **"파산 직전이지만 여전히 모든 클럽의 열쇠를 쥐고 있는 명문가 가주"**였습니다. 2차 대전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덮치고 나서야 가주 자리가 바뀐 것입니다.

흥미롭지 않나요? 오늘날 중국이 경제력으로 미국을 추격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이 '넘버 원'인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비유가 적절하다고 생각하시나요?

 

 

 


1. 이리 운하(Erie Canal)와 주식시장의 부상

  • 이리 운하의 영향: 1825년 완공된 이리 운하는 뉴욕항과 오대호(Midwest)를 연결하여 물류 비용을 95% 이상 폭락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뉴욕은 미국 최대의 항구이자 금융 중심지로 급부상했고, 중서부의 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오며 미국 자본주의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 전신(Telegraph)의 등장: 1840년대(새뮤얼 모스)에 본격화되었으며, 1850년대에는 주요 도시가 연결되었습니다.

  • 철도주 부상과 주식시장: 운하로 번 돈이 철도 건설로 흘러갔습니다. 철도주는 세계 최초의 '거대 기업(Big Business)' 주식이었습니다. 전신 덕분에 시카고의 밀 가격이나 뉴욕의 주가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되자, 1850년대부터 철도주를 중심으로 한 현대적인 주식 투기 및 거래가 본격화되었습니다.

2. 영국의 해저 전신 케이블 장악 (1850s ~ 1920s)

영국은 전 세계 해저 케이블의 약 70% 이상을 독점했습니다.

  • 기간: 1851년(도버 해협 성공)부터 1차 대전 이후 무선 통신이 발달하기 전인 1920년대까지 압도적 헤게모니를 유지했습니다.

  • 전략적 이점: 영국은 전 세계 항구에 석탄 보급소와 케이블 거점을 두어, 타국의 정보(상업 정보, 군사 명령)를 모두 가로채거나 차단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빅토리아 시대의 인터넷'이라 부릅니다.

 

 

While the exact year varies slightly depending on the economic dataset used, the United States' GDP per capita (a common proxy for average wealth per person) is generally considered to have surpassed that of the United Kingdom around 1880.

Historically, the US overtook the UK in total GDP first (around 1870–1872), but because the US population was growing so much faster, it took another decade for the average American to become wealthier than the average Briton.

Key Milestones in the Transition

Economic historians, particularly those using the Maddison Project Database, point to several distinct "takeover" points:

MilestoneApprox. YearContext
Total GDP~1872The size of the entire US economy becomes larger than the UK economy.
GDP per Capita~1880The average American’s economic output exceeds that of the average Briton.
Manufacturing~1890The US becomes the world's leading industrial power.
Clear DominancePost-1918Following WWI, the gap widened significantly as the UK faced massive war deb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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