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시기, 로스차일드 vs 록펠러/러셀 네트워크간 미묘한 견제와 협력 사례 2: MI5-빅터 로스차일드-킴 필비-스튜어트 멘지스-MI6 vs. 채텀하우스/록펠러/러셀-BSC-윌리엄 스티븐슨-프랭클린 루스벨트/윈스턴 처칠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로스차일드 vs 록펠러/러셀 네트워크간 미묘한 견제와 협력 사례 2: MI5-빅터 로스차일드-킴 필비-스튜어트 멘지스-MI6 vs. 채텀하우스/록펠러/러셀-BSC-윌리엄 스티븐슨-프랭클린 루스벨트/윈스턴 처칠

 

엄밀히 따지면 공식적인 서열은 스튜어트 멘지스가 높았으나, 실질적인 영향력과 '미국'이라는 무대에서의 권력은 스티븐슨이 압도적이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사용자님께서 "영국 내 모든 정보부를 총괄했다"고 말씀하신 부분은 영국 본토가 아닌 **'서반구(North & South America) 전체'**라는 특수한 공간 내에서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왜 멘지스보다 더 강력한 실권자로 보였는지 그 이유를 정리해 드립니다.


1. 전무후무한 직함: '영국 보안조정국(BSC)' 국장

당시 영국 정보계는 MI5(국내), MI6(국외), SOE(특수작전)가 서로 칸막이를 치고 싸우는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윌리엄 스티븐슨은 미국 내에서 이 세 기관을 모두 통합하여 지휘하는 **'BSC'**라는 조직의 수장이었습니다.

  • 통합 지휘권: 본토에서는 불가능했던 정보 부서 간의 통합 지휘를 스티븐슨은 미국 땅에서 실현했습니다. 이는 처칠이 그에게 준 파격적인 권한이었습니다.

  • 처칠의 직통 라인: 멘지스는 공식 보고 체계를 거쳐야 했지만, 스티븐슨은 처칠과 직접 연락하는 **'백채널(Back-channel)'**을 가졌습니다. 처칠은 멘지스보다 스티븐슨의 개인적인 판단을 더 신뢰할 때가 많았습니다.

2. '돈'과 '자원'의 통제

스티븐슨은 자수성가한 억만장자였기에, 본토의 예산 승인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 돈을 써서 공작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 미국과의 파트너십: 미국의 정보 수장 도노반(OSS)과 루스벨트 대통령을 직접 상대한 사람은 멘지스가 아니라 스티븐슨이었습니다. 2차 대전의 승패가 미국의 참전에 달려 있었던 만큼, 미국을 움직이는 키를 쥔 스티븐슨의 권력은 멘지스를 압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3. 멘지스와 스티븐슨의 보이지 않는 긴장

사실 MI6 수장 멘지스는 스티븐슨을 견제했습니다. 멘지스는 전통적인 귀족 출신의 관료였고, 스티븐슨은 "근본 없는 캐나다 사업가"였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멘지스조차 스티븐슨이 루스벨트와 나누는 은밀한 정보 공유망을 건드릴 수 없었습니다. 스티븐슨이 미국에서 창설을 도운 **OSS(CIA 전신)**가 결국 영국의 MI6를 대체하는 괴물이 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스티븐슨은 역사적으로 멘지스보다 훨씬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 요약하자면

  • 스튜어트 멘지스: 대영제국 정보부의 '정통 수장' (공식적 권위)

  • 윌리엄 스티븐슨: 처칠의 대리인이자 영미 정보 동맹의 '실질적 설계자' (실질적 권력)

사용자님의 직관대로, 2차 대전이라는 비상 상황에서 **"영국과 미국의 운명을 쥐고 흔든 사람"**은 런던 사무실에 앉아 있던 멘지스가 아니라, 뉴욕 록펠러 센터에서 밤낮으로 루스벨트의 측근들을 구워삶던 스티븐슨이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스티븐슨이 죽었을 때 CIA는 공식 성명을 통해 "현대 미국 정보부의 할아버지(The Godfather)"라고 칭송했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CIA 요원들에게 가르쳤던 가장 섬뜩한 공작 기술 중 하나가 무엇인지 혹시 아시나요?

 

 

 

1. 스티븐슨이 전수한 섬뜩한 기술: "암살과 파괴의 예술"

스티븐슨은 캐나다의 비밀 훈련소 **'캠프 X'**를 통해 OSS(초기 CIA 요원들)에게 영국의 가차 없는 공작 기술을 전수했습니다. 그중 가장 섬뜩한 것은 **'비무장 근접 암살술(Unarmed Combat)'**이었습니다.

  • 침묵의 살인: 영국의 전설적인 교관 윌리엄 페어번(William Fairbairn)을 영입해, 단 몇 초 만에 소리 없이 사람의 경동맥을 끊거나 목을 부러뜨리는 기술을 가르쳤습니다.

  • 심리적 파괴(Black Propaganda): 적국의 신문에 가짜 부고 기사를 내거나, 적국 장교의 부인에게 남편이 외도 중이라는 가짜 편지를 보내 가정을 파괴함으로써 대상자의 정신을 무너뜨리는 기법도 전수했습니다.

  • 폭파 기술: 일상적인 물건(석탄, 신발 등)으로 위장한 폭탄을 만들어 적의 보급로를 끊는 정밀 타격 기술을 교육했습니다. 이는 훗날 CIA의 특수 작전 매뉴얼의 근간이 됩니다.


2. 록펠러 센터 3603호: 영국의 "뉴욕 사령부"

놀랍게도 사실입니다. 2차 대전 당시 뉴욕 록펠러 센터(Rockefeller Center) 3603호에는 **BSC(영국 보안조정국)**라는 간판을 단 대규모 영국 정보 기구가 있었습니다.

  • 위장: 표면적으로는 '영국 여권 발급소'나 '상업 연락 사무소'처럼 꾸몄지만, 내부에는 수백 명의 요원이 상주하며 미국 내 여론을 조작하고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 측근 구워삶기: 스티븐슨은 여기서 루스벨트 대통령의 최측근인 해리 홉킨스에드거 후버(FBI 국장) 등과 은밀히 만났습니다. 그는 고급 위스키와 세련된 영국식 매너, 그리고 영국이 입수한 '독일의 미국 침공 계획(가짜로 꾸며진 것도 있었음)' 등을 보여주며 미국의 참전을 이끌어내기 위한 고도의 심리전을 펼쳤습니다.

  • 여론 조작: 미국 내 반전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신문사에 친영 기사를 심거나, 반대파 정치인들의 약점을 잡아 폭로하는 '공작'이 바로 이 록펠러 센터 방 한 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3. 두 거물의 최후: 엇갈린 말년

두 사람 모두 장수했지만, 말년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습니다.

윌리엄 스티븐슨 (1897~1989)

  • 사망: 1989년 1월 31일, 92세의 나이로 버뮤다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 말년: 전쟁 후 그는 다시 사업가로 돌아가 큰 성공을 거두었고, 버뮤다에 은거하며 조용히 지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으나, 1970년대 그의 활약상이 담긴 책 『A Man Called Intrepid』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전설적인 스파이로 추앙받으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스튜어트 멘지스 (1890~1968)

  • 사망: 1968년 5월 29일, 78세의 나이로 런던의 병원에서 사망했습니다.

  • 말년: 멘지스의 퇴임은 불명예스러웠습니다. 그가 아끼던 부하 킴 필비가 소련의 이중간첩임이 밝혀지면서, "영국 정보부를 구멍 뚫린 양말로 만들었다"는 비판 속에 1952년 물러났습니다. 이후 그는 조용히 시골에서 승마를 즐기며 고독하게 지내다 병사했습니다.


💡 요약: "현실의 승자는 스티븐슨"

결과적으로 스티븐슨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우군을 만들어내고 CIA의 아버지가 된 '승리자'로 기억되는 반면, 멘지스는 대영제국 정보부의 몰락(이중간첩 사건)을 지켜봐야 했던 '비운의 수장'으로 남았습니다.

사용자님, 혹시 록펠러 센터 3603호에서 스티븐슨이 루스벨트를 속이기 위해 위조했던 '나치의 남미 침공 지도' 사건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게 만든 결정적 '가짜 뉴스'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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