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이야기 (1) 세계 최초의 국가 공인 해적,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뿌리없는 나라, 필리핀 / 1925년, 영국의 금본위제 복귀 결정은 미국 달러에 대한 의존 심화를 낳게 된다
https://m.youtube.com/watch?v=eN_NJgjZV3c
그 이야기는 1925년 영국이 금본위제(Gold Standard)로 복귀하면서 발생한 세계 금융 패권의 결정적인 전환점을 의미합니다.
당시 영국 은행장(영란은행 총재) **노먼 몬태규(Montagu Norman)**와 재무장관 윈스턴 처칠이 주도했던 이 결정은, 명분은 '대영제국의 자존심 회복'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파운드화의 몰락과 달러화의 부상을 공식화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무리한 '전전(前戰) 환율' 복귀
1차 세계대전으로 영국 경제는 망가졌고 물가는 올랐습니다. 당연히 파운드화 가치는 떨어졌어야 했죠. 하지만 노먼 몬태규는 영국의 금융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전쟁 전 환율인 1파운드 = 4.86달러로 금본위제에 복귀할 것을 고집했습니다.
현실: 당시 파운드의 실제 가치는 이보다 훨씬 낮았습니다.
결과: 파운드화가 인위적으로 고평가되면서 영국의 수출 상품 가격이 비싸졌고, 영국 산업(석탄, 철강 등)은 경쟁력을 잃고 극심한 불황에 빠졌습니다.
2. 미국(달러)에 대한 의존도 심화
노먼 몬태규는 파운드화 가치를 억지로 유지하기 위해 당시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였던 **벤저민 스트롱(Benjamin Strong)**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영국에서 금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미국이 금리를 낮게 유지해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영국은 독자적인 통화 정책 주권을 사실상 잃게 되었고, 세계 금융의 중심축이 런던(시티)에서 **뉴욕(월스트리트)**으로, 파운드에서 달러로 이동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 '금'에게 지배력을 넘겨주었다는 의미
과거의 금본위제는 영국 파운드화가 곧 금과 다름없을 정도로 강력했기에 '파운드 본위제'라고 불렸습니다. 하지만 1925년의 복귀는 파운드화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미국이 보유한 막대한 금 자산과 달러의 지원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가짜 금본위제'였습니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이를 "금이라는 유물에 목을 매는 자살 행위"라며 처칠과 노먼을 맹렬히 비판했습니다.
요약하자면
노먼 몬태규는 파운드화의 영광을 되찾으려 했으나, 오히려 시장의 현실을 무시한 고집 때문에 영국 경제를 불황에 빠뜨리고 기축통화의 지위를 미국 달러에게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파운드의 지배력을 금과 달러에게 넘겨주었다"고 평가받는 이유입니다.
미국이 영국의 금 보유량을 추월하여 세계 최대의 금 보유국이 된 시점은 제1차 세계 대전 시기인 1910년대 중반입니다.
구체적인 흐름과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추월 시점: 1915년 ~ 1917년 사이
1차 대전 이전: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세계 경제의 중심인 영국이 막대한 금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추월 계기: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전쟁 물자(무기, 식량 등)를 사기 위해 미국에 막대한 양의 금을 지불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럽의 금이 미국으로 급격히 유입되었습니다.
공식 기록: 역사적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금 보유량은 1915년경에 이미 영국의 보유량을 넘어섰고, 미국이 참전하기 직전인 1917년에는 세계 전체 금 보유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독보적인 1위로 올라섰습니다.
2. 포트녹스(Fort Knox)와 금 보유량의 폭발적 증가
질문하신 포트녹스 보관소와 관련된 결정적 시기는 조금 더 뒤인 1930년대입니다.
1934년 금 매입법(Gold Reserve Act): 루즈벨트 대통령이 개인의 금 소유를 금지하고 국가가 금을 몰수하면서 미국의 금 보유량은 1933년 약 6,000톤에서 1939년 약 15,000톤 이상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포트녹스 완공(1936년): 이렇게 급증한 금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내륙 깊숙한 곳에 포트녹스 금괴 보관소를 지었고, 1937년부터 금이 본격적으로 반입되었습니다.
3. 영국의 몰락과 '오퍼레이션 피쉬(Operation Fish)'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0년, 영국은 나치 독일의 침공에 대비해 남은 금 전부를 캐나다와 미국으로 배에 실어 보냈습니다. 이를 **'오퍼레이션 피쉬'**라고 합니다. 이때 영국 국고의 금이 사실상 바닥나면서, 미국과 영국의 금 보유량 격차는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미국이 처음 영국을 앞지른 것은 1915년 전후이며, 1930년대 중반 포트녹스 시대에 이르러서는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의 압도적 지배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포트녹스의 비밀스러운 금괴 수송 역사 이 영상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의 금이 어떻게 미국 포트녹스로 옮겨졌는지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다루고 있어, 당시 금의 이동 경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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