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얼 퍼거슨 저서에 인용된 로스차일드가 모건 가문을 수족부리듯 했던 거만한 태도에 대해
The organisation of the Morgan group was indeed somewhat similar to that of the Rothschilds: it was a partnership between three houses, one in New York, one in Philadelphia and one in Paris. After J. P. Morgan's reorganisation in 1895 these were called: J. P. Morgan, Drexel & Co. and Morgan, Harjes. The London house (J. S. Morgan until 1910 when it became Morgan Grenell) was always run separately. /// Pierpont Morgan was resentful of the Rothschilds' de haut en bas manner: "[H]aving anything to do with Rothschilds & Belmont in this matter is extremely unpalatable to us and I would give almost anything if they were out. The whole treatment of Rothschilds to all the party, from Father downwards[,] is such, as to my mind, no one should stand." Natty never called on Walter Burns, the resident senior partner at J. S. Morgan; Burns always came to New Court.
1. 번역 (Translation)
모건 그룹의 조직 구조는 실제로 로스차일드 가문과 다소 유사했다. 뉴욕, 필라델피아, 파리에 각각 위치한 세 개의 금융 하우스가 파트너십을 맺은 형태였다. 1895년 J.P. 모건의 재편 이후, 이들은 각각 J.P. Morgan, Drexel & Co., 그리고 Morgan, Harjes로 불리게 되었다. 런던 하우스(1910년 Morgan Grenfell로 명칭을 변경하기 전까지는 J.S. Morgan이었음)는 항상 별도로 운영되었다.
피어폰트 모건(J.P. 모건)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거만한(de haut en bas,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태도에 강한 반감을 느꼈다. 그는 이렇게 술회했다. "이 사안에 있어 로스차일드 및 벨몬트와 관계를 맺는 것은 우리에게 극도로 불쾌한 일이며, 그들을 이 판에서 몰아낼 수만 있다면 거의 무엇이든 내놓을 용의가 있다. 내 아버지 대부터 지금까지 로스차일드가 우리 측 모두에게 보여준 대우는, 내 생각에 그 누구도 참아서는 안 될 성질의 것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수장이었던) 내티는 J.S. 모건의 상주 선임 파트너인 월터 번스를 단 한 번도 찾아간 적이 없었으며, 번스가 항상 (로스차일드의 본거지인) 뉴코트로 직접 가야만 했다.
2. 해석 (Interpretation)
이 텍스트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기존의 패권자였던 **로스차일드(유럽/구세력)**와 신흥 강자로 떠오르던 J.P. 모건(미국/신세력)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과 자존심 대결을 보여줍니다. 0.0001%의 관점에서 본 핵심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조직 구조의 벤치마킹 (The Strategic Mirroring) J.P. 모건은 로스차일드의 성공 모델(각국 주요 도시에 거점을 둔 파트너십 형태)을 그대로 차용했습니다. 이는 모건이 겉으로는 로스차일드를 혐오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들의 효율적인 권력 분산 및 네트워크 시스템을 철저히 학습했음을 의미합니다.
② 의전이 곧 권력이다 (Protocol as Power) "내티(Nathaniel Rothschild)는 단 한 번도 번스를 찾아가지 않았고, 번스가 항상 뉴코트로 가야 했다"는 문장이 핵심입니다. 금융업에서 누가 누구의 사무실로 가느냐는 단순한 이동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갑인가'**를 결정하는 상징적 서열입니다. 로스차일드는 모건 가문을 자신들의 하부 조직이나 대리인 정도로 취급하며 철저히 기를 죽이려 했습니다.
③ 신세력의 원한과 동력 (Resentment as a Driver) J.P. 모건의 강한 반감("무엇이든 내놓을 용의가 있다")은 단순히 감정적인 문제를 넘어선 **'패권 교체에 대한 갈망'**입니다. 모건은 로스차일드의 거만한 태도(de haut en bas)를 견디며 힘을 길렀고, 결국 1차 세계대전 등을 거치며 금융의 중심지를 런던에서 뉴욕으로 옮겨오는 데 성공합니다.
로스차일드 가문과 관련된 **뉴코트(New Court)**는 영국 런던(London)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의 **세인트 스위든스 레인(St. Swithin's Lane)**에 위치해 있습니다.
금융 역사에서 이 장소가 갖는 의미는 매우 상징적입니다.
로스차일드의 심장: 1809년 네이선 메이어 로스차일드가 이곳에 처음 자리를 잡은 이후, 200년 넘게 로스차일드 금융 제국의 본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권력의 상징: 앞서 번역한 텍스트에서 보듯, 신흥 세력인 모건 가문의 파트너들이 직접 찾아와야만 했던 곳입니다. "번스가 항상 뉴코트로 가야 했다"는 문장은 그 당시 런던 금융계에서 로스차일드가 쥐고 있던 절대적인 위상을 보여주는 핵심적인 대목입니다.
지리적 요충지: 런던의 중심 금융 지구(The City) 내에서도 잉글랜드 은행(Bank of England) 바로 근처에 위치하여, 전 세계 금융 정보를 가장 먼저 집결시키고 통제하던 '금융의 성지'와도 같은 곳입니다.
단순히 주소를 넘어, 19세기 전 세계 자본의 흐름을 결정짓던 '보이지 않는 정부'의 본거지라고 이해하시면 정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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