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쇼 라즈니쉬: 섹스 안에서 깨어있을 수 있다면 삶에서 무슨 행위를 하더라도 깨어있을 수 있다; 섹스는 남녀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전적으로 자기 본질과의 대화이다
오쇼 라즈니쉬의 이 말은 탄트라(Tantra) 관점에서 섹스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매우 압축적으로 표현한 문장이야. 직역하면 오히려 더 헷갈릴 수 있어서, 핵심을 풀어서 설명해볼게.
원문 문장의 구조부터 풀면
“탄트라: 섹스 안에서 깨어있을 수 있다면
삶에서 무슨 행위를 하더라도 깨어있을 수 있다;
섹스는 남녀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전적으로 자기 본질과의 대화이다.”
여기서 핵심 키워드는
👉 깨어있음 (awareness, consciousness)
👉 자기 본질 (one’s own being / essence) 이야.
1️⃣ “섹스 안에서 깨어있을 수 있다면…”
여기서 깨어있다는 건
-
흥분에 휩쓸리지 않고
-
자동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
생각·판단·환상에 빠지지 않고
-
지금 이 순간의 감각, 에너지, 감정을 또렷하게 알아차리는 상태
를 말해.
오쇼에게 섹스는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강력한 본능적 에너지야.
욕망, 쾌락, 집착, 자아가 가장 쉽게 폭주하는 순간이지.
👉 그런 순간에도 의식이 흐트러지지 않는다면,
👉 그보다 덜 강한 자극들(일, 관계, 감정, 갈등) 속에서는
👉 깨어있기 훨씬 쉽다는 논리야.
그래서
“섹스 안에서 깨어있을 수 있다면, 삶의 어떤 행위에서도 깨어있을 수 있다”
라고 말하는 거야.
2️⃣ “섹스는 남녀 사이의 대화가 아니다”
이 말은 도발적으로 들리지만, 오쇼의 의도는 이거야:
우리가 보통 섹스를
-
상대를 만족시키는 행위
-
기술, 성과, 관계의 문제
-
‘너와 나’의 상호작용
으로만 이해하지만,
탄트라에서는 섹스를 ‘타인 중심 행위’로 보지 않는다는 거야.
3️⃣ “전적으로 자기 본질과의 대화이다”
이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야.
탄트라에서 섹스는:
-
쾌락을 얻기 위한 행위 ❌
-
상대를 소비하는 행위 ❌
-
목표(오르가즘)를 향한 과정 ❌
이 아니라,
👉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에너지, 욕망, 두려움, 집착, 자아를 관찰하는 명상적 장(場) 이야.
즉,
-
흥분할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
통제하고 싶어지는가?
-
사라지고 싶어지는가?
-
집착하는가?
-
‘나’라는 감각은 어디에 있는가?
이 모든 것을 상대라는 거울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 묻는 과정이라는 거지.
그래서
“섹스는 남녀의 대화가 아니라, 자기 본질과의 대화” 라는 표현을 쓰는 거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오쇼는
섹스를 쾌락의 행위가 아니라
가장 강렬한 명상 상태로 삼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삶 전체를 의식적으로 살 수 있다
고 말하는 거야.
조금 더 일상적인 비유로 말하면
-
술에 취하지 않고 술 마실 수 있으면 → 삶에 취하지 않는다
-
분노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으면 → 평온 속에서도 깨어있다
-
섹스 중에도 의식을 잃지 않으면 →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잃지 않는다
이런 맥락이야.
원하면
-
탄트라가 일반적인 섹스와 어떻게 다른지
-
오쇼가 말한 ‘의식적 섹스’가 실제로 뭘 의미하는지
-
혹은 이 말에 대한 비판적 해석도 같이 풀어줄 수 있어.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