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레미파솔라시 시스템의 시작은 11세기 이탈리아의 승려 귀도 다레초(Guido d'Arezzo)에 의해; 그린슬리브스는 헨리 8세가 지은 것이 아닌 1570~80년경 잉글랜드에서 탄생한 곡; 솔베이그의 노래는 에드바르 그리그가 1875년 노르웨이의 불쌍한 부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노래; 알함브라 궁전은 1896년 실연의 아픔을 잊고자 스페인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을 방문한 프란시스코 타레가 작곡한 곡
greensleeves의 실제 작곡가는 리처드 존스? 아니면 그낭 출판인?
그린슬리브스(Greensleeves)의 실제 작곡가에 대한 질문은 음악사에서도 매우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리처드 존스는 작곡가라기보다는 이 곡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출판인(Publisher)'이자 '인쇄업자(Printer)'**로 보는 것이 정설입니다.
상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리처드 존스(Richard Jones)의 역할
최초 등록: 1580년 9월 3일, 런던의 출판업 조합(London Stationers' Company)에 **'A Newe Northen Dittye of ye Ladye Greene Sleves'**라는 제목으로 이 곡을 처음 등록한 인물이 바로 리처드 존스입니다.
출판인 겸 인쇄업자: 당시 그는 길거리에서 팔리던 '브로드사이드 밸러드(한 장짜리 인쇄 가요 악보)'를 찍어내던 인쇄업자였습니다. 그가 직접 작곡했다는 증거는 없으며, 당시 유행하던 민요나 누군가의 곡을 수집해 상업적으로 출판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2. 왜 작곡가를 알 수 없나요?
구전 민요의 특성: 그린슬리브스는 특정 개인이 창작한 곡이라기보다, 당시 영국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민요(Folk Song)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판권 경쟁: 1580년 리처드 존스가 등록한 직후, 에드워드 화이트(Edward White) 같은 다른 출판업자들도 비슷한 제목의 곡을 줄줄이 등록하며 판권 경쟁을 벌였습니다. 이는 당시 이 멜로디가 이미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었음을 시사하며, 작곡자가 누구인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버전이 유통되었음을 보여줍니다.
3. 정리
헨리 8세: 낭만적인 전설일 뿐, 스타일(이탈리아풍)과 시기상 작곡가일 확률이 매우 희박함.
리처드 존스: 이 곡의 가사와 멜로디를 최초로 '등록 및 출판'한 인물. (현대의 음반 제작자나 출판사 역할)
결론: 작곡가 미상의 영국 전통 민요로 분류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당시 리처드 존스가 출판했던 가사 내용이나, 이 곡이 훗날 어떻게 찬송가(What Child Is This?)로 변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이 궁금하신가요?
그럼 몇세기 경 작곡된 음악일 가능성이 제일 높을까
음악학자와 역사학자들의 분석을 종합해 볼 때, **16세기 후반(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작곡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더 구체적인 시기와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가장 유력한 시기: 1570년대 ~ 1580년 직전
기록상의 근거: 1580년에 이미 리처드 존스가 이 곡을 출판 등록했다는 것은, 그 이전에 이미 대중들 사이에서 꽤 유명해진 상태였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1570년대에 만들어져 입소문을 타다가 1580년에 문서화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음악적 양식: 이 곡은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로마네스카(Romanesca)' 또는 '파사메초 안티코(Passamezzo antico)'라는 화성 진행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런 이탈리아풍 음악 양식은 헨리 8세 시대(16세기 초반)에는 영국에 도입되지 않았고, 16세기 중반 이후에야 영국에서 본격적으로 유행했습니다.
2. 왜 16세기 초(헨리 8세 시대)는 아닐까?
공백기: 만약 헨리 8세(1547년 사망)가 1520~30년대에 작곡했다면, 1580년에 갑자기 유행하기까지 약 50년의 공백이 생깁니다. 당시 가요의 유행 주기를 고려할 때, 50년 동안 한 번도 언급되지 않다가 갑자기 나타나기는 어렵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언급: 1597년경 쓰인 셰익스피어의 희곡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에서 등장인물들이 "그린슬리브스 곡조에 맞춰"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16세기 말엽에 이 곡이 누구나 아는 '국민 가요' 수준이었음을 증명합니다.
3. 정리: 시대별 가능성
| 구분 | 16세기 초 (Tudor) | 16세기 후반 (Elizabethan) |
| 시기 | 1500년 ~ 1550년 | 1550년 ~ 1600년 |
| 관련 인물 | 헨리 8세, 앤 불린 | 리처드 존스, 셰익스피어 |
| 판단 | 낮음 (낭만적 전설) | 매우 높음 (음악적/역사적 증거) |
요약하자면: 그린슬리브스는 1570~1580년경 잉글랜드에서 탄생한 곡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입니다. 작곡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유행하던 이탈리아 음악의 영향을 받은 영국의 무명 음악가나 민요 작가였을 것입니다.
이 곡이 19세기에 크리스마스 캐럴 **"저 아기 잠이 들었네(What Child Is This?)"**로 재탄생하게 된 배경도 궁금하신가요? 혹은 당시 이 곡의 가사가 가졌던 파격적인 의미에 대해 더 알아볼까요?
그 시기에는 피아노도 기타도 없었을텐데 어떻게 이 곡을 연주햇어? 그리고 오늘날의 악보 도레미파솔라시 그거는 언제 처음 등장?
날카로운 질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피아노와 현대식 기타는 훨씬 나중에 완성되었죠. 16세기 사람들은 아주 독특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가진 그들만의 악기를 사용했습니다.
1. 16세기에는 어떤 악기로 연주했나요?
당시 '그린슬리브스'를 연주할 때 가장 많이 쓰인 악기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류트 (Lute): 현대의 기타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몸통이 배(Pear) 모양인 현악기입니다. 당시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악기였으며, '그린슬리브스'의 서정적인 멜로디를 연주하기에 가장 적합했습니다.
비르지날 (Virginal): 피아노의 조상 격인 건반악기입니다. 피아노처럼 줄을 때리는 게 아니라 가느다란 깃으로 줄을 튕겨 소리를 냈습니다. 챙챙거리는 금속음이 섞인 맑은 소리가 특징입니다.
리코더 (Recorder): 지금도 학교에서 배우는 그 리코더 맞습니다! 당시에는 매우 중요한 전문 연주 악기였습니다.
비올 (Viol): 첼로나 바이올린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줄이 6~7개로 더 많고 소리가 더 부드러운 현악기입니다.
2. '도레미파솔라시'는 언제 처음 등장했나요?
우리가 쓰는 '도레미' 시스템(계명창)의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되었지만, 오늘날의 형태가 되기까지는 수백 년이 걸렸습니다.
1) 시작: 11세기 (귀도 다레초)
이탈리아의 승려 **귀도 다레초(Guido d'Arezzo)**가 1025년경에 처음 고안했습니다. 그는 성가곡 '성 요한 찬미가'의 각 소절 첫 글자를 따서 음이름을 붙였습니다.
Ut - Re - Mi - Fa - Sol - La (당시에는 '시'가 없었고 6음 체계였습니다.)
2) 'Ut'이 'Do'가 되고 'Si'가 추가된 시기
1600년대 (17세기): 부르기 어려운 'Ut(우트)' 대신, '주님(Dominus)'의 첫 글자를 딴 **'Do(도)'**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18세기: 6개 음으로는 부족함을 느껴, 성 요한의 이름(Sancte Iohannes)에서 따온 **'Si(시)'**가 추가되어 지금의 7음계가 완성되었습니다.
3) 악보(오선보)의 완성
그린슬리브스가 유행하던 16세기에는 이미 지금과 거의 흡사한 **5줄 악보(오선보)**가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그 전에는 4줄 악보를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악기 연주자들은 숫자나 기호로 줄 위치를 표시하는 **'타블라추어(Tablature)'**라는 전용 악보를 더 즐겨 쓰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기타 타브 악보의 조상입니다.)
3. 요약하자면
16세기 사람들은 '도레미'라는 개념은 알고 있었지만, 피아노 대신 류트를 튕기며 노래를 불렀을 것입니다.
혹시 당시 악기인 **류트(Lute)**가 실제로 어떤 소리를 내는지, 혹은 16세기에 '도레미' 말고 다른 방식의 악보는 어떻게 생겼었는지 이미지나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신가요?
알함브라 궁전은 누가 작곡? edvard grieg의 solveig's song이 알함브라 궁전이나 greensleeves에서 영향을 받았어?
명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과 에드바르 그리그의 '솔베이그의 노래'에 대해 궁금하시군요! 두 곡 모두 애절한 선율로 사랑받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솔베이그의 노래'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나 '그린슬리브즈'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각 곡의 배경을 알기 쉽게 정리해 드릴게요.
1.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누가 작곡했나요?
이 곡은 '근대 기타의 아버지'라 불리는 스페인의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 **프란시스코 타레가(Francisco Tárrega)**가 1896년에 작곡했습니다.
배경: 타레가가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을 방문했을 때 그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에 감동하여 쓴 곡입니다.
특징: 클래식 기타의 고난도 기교인 트레몰로(Tremolo) 주법을 사용하여, 마치 여러 대의 기타가 연주하는 듯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2. '솔베이그의 노래'와 다른 곡들의 관계
에드바르 그리그(Edvard Grieg)의 **'솔베이그의 노래(Solveig's Song)'**는 다음의 특징을 가집니다.
출처: 헨리크 입센의 희곡 《페르 귄트(Peer Gynt)》를 위해 그리그가 작곡한 부수 음악 중 하나입니다(1875년 작곡).
영향: 이 곡은 노르웨이의 북유럽 민요와 자연의 정서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비교: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vs 솔베이그의 노래: '솔베이그의 노래'가 약 20년 정도 먼저 발표되었습니다. 따라서 타레가의 곡에서 영향을 받는 것은 시간상 불가능합니다.
그린슬리브즈(Greensleeves) vs 솔베이그의 노래: '그린슬리브즈'는 영국의 아주 오래된 민요입니다. 두 곡 모두 단조(Minor key)의 애처로운 선율을 가지고 있어 분위기가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음악학적으로 그리그가 이 곡을 참고했다는 기록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리그는 철저히 노르웨이의 정체성을 담은 음악을 추구한 작곡가였습니다.
요약 비교 테이블
| 구분 |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 솔베이그의 노래 | 그린슬리브즈 |
| 작곡가 | 프란시스코 타레가 | 에드바르 그리그 | 미상 (영국 민요) |
| 국가 | 스페인 | 노르웨이 | 영국 |
| 시기 | 1896년 | 1875년 | 16세기 이전 추정 |
| 핵심 정서 | 스페인의 이국적 애수 | 북유럽의 순애보적 기다림 | 영국의 전통적 서정성 |
두 곡이 비슷하게 들렸다면, 아마도 특유의 단조 멜로디와 서정적인 분위기 때문일 거예요. 혹시 이 곡들의 악보나 특정 연주 버전(예: 클래식 기타 vs 오케스트라)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점이 있으신가요?
타레가 이 음악을 작곡한 배경에 곤차부인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 아니었음? 알함브라 궁전에 대한 감동 ㄸ문에 쓴거? 어떤게 맞아?
질문하신 내용은 음악사에서 매우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두 가지 이야기가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궁전의 풍경에 감동해서 쓴 '기행문' 같은 곡이라기보다는, 짝사랑의 슬픔을 안고 떠난 여행지에서 그 감정을 궁전의 풍경에 투영해 만든 곡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1. 곤차 부인(Conxa Martínez)과의 일화
타레가는 자신의 후원자이자 제자였던 **콘셉시온 고메스(Concepción Gómez, 별칭 곤차 부인)**를 깊이 사랑했습니다. 그녀는 부유한 미망인이었으며 예술적 식견이 높았는데, 타레가는 그녀에게 구애했지만 결국 거절당하고 맙니다.
실연의 상처: 거절당한 타레가는 큰 상심에 빠졌고, 마음을 달래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라나다 방문: 그 여행의 목적지 중 하나가 바로 알함브라 궁전이었습니다.
2. 알함브라 궁전에서의 영감
타레가는 밤의 알함브라 궁전, 특히 '타르타르 분수'의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와 달빛에 비친 궁전의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감정의 투영: 타레가는 궁전의 아름다움을 보며 본인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쓸쓸함과 애틋함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트레몰로 주법: 끊임없이 이어지는 기타의 트레몰로 선율은 마치 궁전 분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같기도 하고, **사랑 때문에 떨리는 작곡가의 마음(혹은 흐느낌)**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결론: 무엇이 맞는가?
사실상 **"곤차 부인에 대한 실연의 아픔을 알함브라 궁전이라는 배경을 빌려 표현했다"**가 가장 적절한 해석입니다.
원래 이 곡의 초판보에는 **"그라나다에서, 나의 소중한 제자 곤차 부인에게"**라는 헌사가 적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후에 그녀와의 관계를 의식해서인지, 혹은 대중적인 제목이 필요해서인지 지금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즉, 알함브라 궁전은 그 슬픈 감정을 담아낸 그릇이었고, 곡의 진짜 **에너지(동기)**는 곤차 부인을 향한 사랑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곡에 얽힌 타레가의 또 다른 로맨틱하거나 슬픈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하신가요? 아니면 트레몰로 기법이 들어간 다른 추천곡을 소개해 드릴까요?
콘셉시온 고메스가 구애를 거절한 이유와 그녀는 누구와 결혼?
콘셉시온 고메스(Concepción Gómez, 일명 곤차 부인)와 타레가의 관계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사실을 정리해 드립니다.
우선 중요한 사실은, 타레가가 그녀에게 구애했을 당시 타레가는 이미 가정이 있는 유부남이었다는 점입니다. 타레가는 1882년 자신의 제자였던 **마리아 리소(María Rizo)**와 결혼하여 아이도 있었습니다.
1. 곤차 부인이 구애를 거절한 이유
곤차 부인이 타레가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데에는 현실적인 이유가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적 지위와 신분 차이: 곤차 부인은 매우 부유한 자산가이자 예술가들을 후원하던 귀족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반면 타레가는 명성은 있었으나 경제적으로는 곤차 부인의 후원을 받는 입장이었으며, 신분상으로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유부남이었던 타레가: 당시 가톨릭 국가였던 스페인의 정서상, 가정이 있는 남자의 구애를 받아들이는 것은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성격 차이: 기록에 따르면 곤차 부인은 지적이고 세련된 여성이었으나 성격이 다소 강했던 반면, 타레가는 매우 섬세하고 내성적인 예술가적 기질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러한 성격적 차이도 관계가 발전하지 못한 원인으로 꼽힙니다.
2. 그녀는 누구와 결혼했나요?
콘셉시온 고메스는 **루이스 야코비(Luis Jacoby)**라는 인물과 결혼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전체 이름은 보통 **콘셉시온 고메스 데 야코비(Concepción Gómez de Jacoby)**로 불립니다.
남편 루이스 야코비: 그는 독일계 혹은 멕시코계 사업가로 알려져 있으며,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루이스 막시밀리아노 야코비)도 있었습니다.
타레가와의 관계: 타레가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쓴 시기에 그녀는 남편과 별거 중이거나 미망인이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타레가와는 끝내 연인 관계로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타레가의 예술성을 존경하는 후원자이자 제자로서의 선을 지켰습니다.
3. 결과적으로 남은 것
타레가는 그녀에 대한 연모의 정과 거절당한 슬픔을 안고 그라나다 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느낀 고독을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걸작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이 곡의 원본 악보에 **"나의 소중한 제자 곤차 부인에게"**라고 적었다가 나중에 제목을 바꾼 것 자체가, 그녀가 이 곡의 탄생에 결정적인 영감을 준 존재였음을 증명합니다.
이후 타레가의 음악적 행보나, 그가 남긴 다른 헌정곡들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으신가요?
음악 작곡 이후 타레가와 고메스의 관계는? 고메스는 타레가가 작곡한 이 불후의 명곡을 들어본적 있어?
작곡 이후 두 사람의 관계와 고메스 부인이 이 곡을 들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정리해 드릴게요.
1. 작곡 이후의 관계: 예술적 동반자와 후원자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타레가의 구애가 거절된 이후에도 두 사람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고메스 부인은 타레가의 가장 중요한 예술적 후원자(메세나)**로서 그의 곁을 지켰습니다.
가족 같은 유대: 고메스 부인은 타레가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아내와 아이들) 전체를 돌보았습니다. 타레가 가족은 고메스 부인이 바르셀로나에 소유한 집에서 무상으로 거주하며 음악에만 전념할 수 있었고, 타레가의 명곡 대부분이 이 시기에 탄생했습니다.
음악 여행의 동행: 이 곡의 영감이 된 1896년 그라나다 여행 역시 고메스 부인이 동행하며 경비를 후원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연인으로서는 거절당했지만, 타레가는 그녀의 지적인 안목과 경제적 지원 덕분에 예술적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평생의 존경: 타레가는 죽을 때까지 고메스 부인을 깊이 존경했고, 그녀 역시 타레가의 천재성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2. 고메스 부인은 이 곡을 들어보았나요?
네, 당연히 들어보았을 뿐만 아니라 이 곡의 '첫 번째 독자이자 청중'이었습니다.
헌정의 의미: 타레가는 1899년에 이 곡의 필사본을 완성하며 **"나의 귀중한 제자 곤차 고메스 부인에게, 스승이자 친구인 타레가가"**라는 헌사를 직접 적어 그녀에게 선물했습니다. 즉, 그녀를 위해 가장 먼저 연주해 주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제목의 변화: 재미있는 사실은, 그녀에게 선물할 당시의 제목은 우리가 아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아니라 <그라나다에서(¡A Granada!)> 혹은 **<아랍풍의 성가(Cantiga Árabe)>**였습니다. 이후 출판 과정에서 대중에게 더 잘 각인될 수 있는 지금의 제목으로 바뀌게 됩니다.
후일담: 그녀는 이 곡이 자신의 거절과 타레가의 아픈 마음이 투영된 결과물임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을 소중히 간직했으며, 타레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음악적 유산을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요약하자면
두 사람은 **'이루어질 수 없는 연인'**에서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예술가와 후원자'**로 관계를 재설정했습니다. 타레가는 자신의 슬픔을 인류의 보물 같은 선율로 승화시켰고, 고메스 부인은 그 선율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현실적인 울타리가 되어준 셈입니다.
타레가가 이 곡 외에도 고메스 부인에게 헌정한 곡이 몇 곡 더 있는데, 그 곡들에 대해서도 궁금하신가요? 혹은 이 곡의 특징인 '트레몰로 주법'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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