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무의식을 부유(浮遊)하는 수많은 아이디어(관념)들과 이야기로서의 세계, 그리고 '세계의 창(窓)'으로서 기능하는 나의 아이덴티티

 

집단무의식을 부유(浮遊)하는 수많은 아이디어(관념)들과 이야기로서의 세계, 그리고 '세계의 창(窓)'으로서 기능하는 나의 아이덴티티

프로파일 아로 2023. 2. 3. 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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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잠에서 깨어났는데 소설이나 동화의 소재로 쓸만한 엄청 좋은 창작의 아이디어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끔씩 이렇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잠에서 깨어나면서 기억이 소실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럴 때면 큰 낭패를 본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나는 이런 가설을 세워본다. 잠을 잘 때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집단무의식의 세계와 에너지 차원으로 연결되어있다.

프랑스의 관념주의 철학자인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이 세운 급진적인 가설에 따르면, 인간의 우뇌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기능(이미지, 감각)뿐만 아니라 또 다른 능력, 즉 보다 비범하고 영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능력이란 테야르가 말하는 정신 (* noosphe're; 정신을 뜻하는 그리스 어 <누스noos>와 구(球), 범위, 권(圈)을 뜻하는 <스파이라sphaira>를 합친 말)에 선을 댈 수 있는 소질이다. 정신권 ─ 칼 융은 그것을 집단적 무의식이라고 명명했다 ─ 이란 대기권이나 전리권(電離圈)처럼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일종의 거대한 구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비물질적인 구름은 인간의 오른쪽 뇌가 발산한 모든 무의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 오른쪽 뇌는 밤에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 정신권의 마그마에 들어가서 인류의 오른쪽 뇌가 발산한 것의 총합인 총체적인 정신을 퍼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비유하자면 무의식을 담당하는 우리 뇌의 우반구가 원초적인 진짜 정보들이 모여 있는 파장에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상상하거나 발명한다고 믿고 있지만, 그건 따지고 보면 우리의 오른쪽 뇌가 정신권에서 퍼온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왼쪽 뇌가 오른쪽 뇌의 말을 잘 듣기 때문에, 정보가 옮겨지고 어떤 생각으로 틀이 잡히면서 구체적인 행위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친구이자 저명한 물리학자였던 데이비드 봄 또한 테야르와 비슷한 가설을 세웠다. 봄에 따르면, 이 우주에는 눈에 보이는 명재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암재계가 공존한다. 인간의 우뇌는 암재계의 세계에 속하며 물리적인 법칙에 따르지 않고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초월한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암재계의 회로를 열면 우주의 에너지와 통할 수 있게 되며, 그렇게 되면 우리가 소위 ‘기적’이라고 말하는 초능력 현상들이 일어난다. 위대한 예술적 창조나 과학적 발견도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다.

수많은 위대한 예술적 창조나 과학적 발견들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 이유는 집단무의식 속 수많은 개인무의식들이 서로 공명하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혹자는 '우뇌'라고 뭉뚱그려서 표현하기 보다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인간 두뇌 속 송과체가 정신권과 물질권을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생체 내부 기능(시상하부 및 바이오리듬 통제, 산화제로부터의 보호)을 조절하는 것 외에도 수면, 명상 상태, 임사 체험 시 환각성 신경전달물질(DMT)을 내보내는 송과체는 베다 전통에서는 제6 차크라인 아즈나, 힌두교에서는 브라마의 창, 고대 중국에서는 천상의 눈(天目)에 대응하며, 도가 수련에서는 니환궁(泥丸宮)으로 알려져 있고, 데카르트는 '영혼의 의자'라고 불렀다.

2.

잠을 자는 동안 내가 공급받은(?) 우수한 아이디어를 놓치게 될 때, 그 아이디어의 순번은 다른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주의 정신권에, 집단무의식에, 떠돌아다니는 정보들은 온전히 나의 것만은 아니며, 누구든 그것에 접속해서 동일한 원천으로부터 영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IT업계의 용어로 말하자면, 정신권은 일종의 오픈소스(Open Source)다. 소스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누구든 접근해서 그것을 볼 수 있다. 신지학과 뉴에이지에서는 정신권이 우주와 인류의 모든 기록을 담은 정보집합체로 누구나 그 레코드(기록)를 복원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s)'라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꿈에서 주는 힌트랄까, 영감을 예의주시하고, 꿈의 풍경들을 현실세계에서 기록해가는 습관을 기를 필요가 있다. 현실의 상위차원인 꿈 속 세계에서 삶의 형태를, 인류의 문명을 바꿀, 단서가 없으리라고 아무도 단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로가 생각하기에 꿈에서 가장 영감을 받았을 것 같은 근래의 저작물은, 바딤 질란드가 집필한 <리얼리티 트랜서핑(Reality Transurfing)>이라는 책이다. 저자 역시 자신이 꿈에서 영감을 받아 책을 집필했음을 밝힌 바 있다. 2004년에 출간되었으니 나온지 이미 꽤 되었지만, 처음 읽는 독자라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논리로 현실세계를 접근하는 방식에 충격을 받을 것이다. 마치 파도를 자유자재로 헤엄치는 해변가의 서퍼(Surfer)들처럼, 트랜서퍼(Transurfer)들은 자신의 의도에 따라 현실의 여러 차원들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나는 '우연히 이 세상에 나온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드는 이 세계의 모든 명작들은 이와 비슷하게 불가사의하고 신비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고 본다. 다른 말로 하면 집단무의식 속에 무르익은 어떤 정보들이 적절한 시기에 현상계에 부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우구스트 케쿨레가 1865년에 (고대 문화에서 우로보로스라 알려진) 자기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의 꿈을 통해 벤젠 구조식을 알아낸 것이나, 살바도리 달리가 꿈에서 영감을 받아서 작품들을 만들어냈다는 류의 이야기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다.

3.

유체이탈을 한 사람들, 또는 유체이탈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의식(혼)이 육체에서 빠져나가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부감풍경(俯瞰風景)이 펼쳐진다고 한다.

영적 차원에서 물질 세계를 내려다보는 듯한 위의 풍경화는, 육신의 제약에서 벗어난 본래의 인간 ㅡ 즉, 영혼은 ㅡ 전지전능하고 자유롭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고 싶은 곳은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보고 싶은 것은 순식간에 볼 수 있다. 또 알고자 하는 정보는 정신권에서 알려준다.

하여, 임사체험자 다수는 육체의 굴레에서 벗어나 유체이탈을 할 때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진 듯한 느낌과 함께 무한한 지복을 느꼈다고 말하며, 심지어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고 증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세상에 매여있는 어떤 대상 ㅡ 그것은 가족일 수도 있고, 일일 수도 있고, 사명일 수도 있으며,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ㅡ 때문에 결국 속세로 돌아왔다고 볼 수 있다.)

4.

근래 일본의 라이트노벨들이 이세계(異世界)를 소재로 한 차원이동을 이야기하는 것은 꽤 흥미로운 현상이다.

왜냐하면 앞에서 살펴봤듯, 실제로 이 세상은 여러 차원으로 분화되어 있으며, 각 차원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은 이데아(Idea)가 ㅡ 테야르의 정신권에 대응한다 ㅡ 현실세계에 선행해서 존재하며, 현실세계의 모든 것들은 이데아 속 관념들의 소산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우리가 특정한 이름으로 명명하는 모든 대상들 ㅡ 그것이 책상이든, 탁자든, 얼굴이든, 색깔이든, 무엇이든 ㅡ 은 이미 이데아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다스칼로스가 말한 한 에피소드는 특히 흥미롭다. 영계를 오랫동안 방문해보니,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전쟁들은 주로 영계에서 먼저 일어났다는 것이다. 즉, 영계에서 수니파와 시아파가 서로 지지고 볶으면서 싸움을 시작하면(* 물론 이들은 이미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서로간의 '생각'만으로 공격을 하고, 무한하게 다시 부활할 수 있다. 육신의 죽음은 존재하지만, 영혼의 죽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관념적 영향력이 현실세계의 수니파와 시아파에게까지 미쳐 그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역사상의 전쟁들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실여부는 알 수 없으나 정신권과 물질권의 상호작용하는 특성을 고려할 때 충분히 개연성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언젠가 영국의 소설가 데이비드 미첼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인간 세계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이야기들이 쓰여있는 페이지 가운데 하나를 보면서 살아간다."

이데아적 관점에서 보면 이 말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집단무의식, 정신권, 또는 이데아의 관념들이 물질화된 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상계의 이야기들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삶의 스토리들, 또는 이야기의 패턴들이 고대의 영웅신화처럼 '정형화된 패턴'을 따르는 이유는 그것들이 보다 깊은 근원으로부터 유래했기 때문이다. 델포이 무녀의 저주가 상징하는 출생에의 비극(* 기독교의 원죄, 불교의 카르마에 대응한다)과, 그 비극이 촉발시킨 모험에의 부름, 그리고 삶의 관문들을 하나씩 돌파해나가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변증법적 구성을 가진 오이디푸스 신화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먼저 정신권에 어떤 이야기들과 그 이야기의 패턴들이 선행해서 존재하고, 그것이 우리가 아는 모든 이야기들의 원류가 되는 것이다.

5.

나는 15분 넘게 부단히 내가 잠을 자면서 잃어버렸던 아이디어를 생각했고, 마침내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을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약간의 뿌듯함을 느낀다.

그 아이디어는 내가 근래 읽고 있는, 미국의 상업작가였던 스티븐 J. 캔넬(Stephen J. Cannell)이 홍콩 삼합회를 주제로 쓴 액션스릴러 소설 <Riding the Snake>에서 시작되었다. 이 책의 표지는 빅토리아 파크에서 내려다본 홍콩 도심의 야경이다. 최근 내 무의식 속에는 이 야경에 대한 이미지가 저장되어 있었다.

이 책의 표지가 촉발시킨 이미지는 어제 잠을 자면서 내 무의식 속에서 한 때 세계 최악의 인구밀도를 자랑했던 홍콩 구룡성에 대한 이미지들, 그리고 로맹 자케 라그레제(Romain Jacquet-Lagréze)가 찍은 사진들로 연결되었다.

지상에서 초고층 빌딩을 올려다본 독특한 앵글을 통해 수직 성장한 홍콩의 경제와 사회를 은유한 이 사진들은 내게 마치 "인간세계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데이비드 미첼의 말을 재확인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잠을 자는 동안 무의식 속에서 이 이미지들을 토대로 소설이나 동화에 어울릴법한 이야기 구조를 하나 생각해냈다. (* 깨어있을 때처럼 의식적으로 생각한 게 아니라,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저절로' 생각해낸 것이다.)

바로 같은 공간(빌딩숲)에 모여사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세계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 보따리'로서 관조하는 것이다.

각각의 인물들은 서로 독립적인 이야기의 전개 속에서 살아가긴 하지만, 같은 공간(빌딩숲)을 점유하고 있고, 때로는 이야기의 동선이 겹치기도 한다. 즉, 완전히 별개의 옴니버스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 속에 투영되고 침투되어 나타난다.

말하자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몽>처럼 다양한 화자의 관점에서 세계의 풍경을 담아내고, 인간 의식의 지도를 보다 종합적으로 완성시키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작은 조각이 전체 조각의 형상을 비추는 프랙탈 구조처럼 이 이야기는 부분인 동시에 전체로서 기능한다. 하여, 소우주와 대우주에 대한 고대 연금술의 은유("위에서 그러한 것은 아래에서도 그러하다'), 힌두교의 인드라의 망, 불교의 연기법과 화엄사상, 만화경과 만다라, 복잡계 물리학과 자기조직화 현상으로까지 웅장하게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빌딩숲의 다양한 풍경들 (예시)

1층 - 학업 스트레스를 비관해 아파트에서 투신하려는 쌍둥이 여중생 둘이 살고있는 곳

2층 - 하루에 10번씩 부부싸움을 하는 집

3층 - 고독사의 위험에 빠진 전직 정치인이자 독거노인의 집

4층 - 요도자위 등 변태성욕에 빠진 남성의 집

5층 -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문학에 빠져 집안 인테리아를 19세기 풍으로 하고 사는 여성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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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층 - 노처녀 히스테리에 걸린 39세 여성의 집

29층 - 분노조절장애를 겪고 있는 의사의 집

32층 - 정치 비자금을 잃어버려 난처한 상황에 빠진 공작원의 집

45층 - CIA가 파견한 스파이의 집

58층 - UN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믿는 조현병 환자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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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층 - 일본 아니메에 광적으로 탐닉하는 42세 오타쿠 남성의 집

150층 -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관념에 빠져 거식증에 걸린 패션모델의 집

200층 - 출가를 고민하며 불교서적을 읽는 가정주부의 집

6.

이상의 조잡한 이야기들에서 드러나듯(* 이 글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산만하게 쓰여졌다), 나라고 하는 개체의 진정한 특장점이라고 한다면, 역시 나는 80억 인구 전체를 통틀어 '세계의 창(窓)' 내지는 '세계의 거울'로서의 역할이 가장 어울리는 인간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뇌과학 분야의 용어로 말하면 나는 신경세포들을 연결하는 커넥톰Connectom의 역할을, IT업계의 용어로 말하자면 서로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들을 중개하는 플랫폼Platform의 역할을, 즉 다시 말하자면 커넥터Connect의 역할을 하는데 최적화되어 있다. 그것이 나의 존재론적 특성이다.

동양에는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와 삼태극(三太極)이라는 전통이 있으니, 이러한 관념에 대입해서 생각해보면, 내가 가진 특장점은 다음의 세 가지다.

- 천天: 역사상의 다른 시간대를 연결시킬 수 있는 능력

- 지地: 서로 다른 공간들(서로 다른 문화와 차원들)을 연결시킬 수 있는 능력

- 인人: 서로 다른 분야들(이를테면 과학과 종교)을 연결시킬 수 있는 능력

이는 그리스 신화에서 '영계의 문지기'로서 신들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는 역할을 맡은 헤르메스가 갖고 있는 특징들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기원전 3세기경에서 1200년대까지 근동과 유럽을 중심으로 널리 퍼진 신비주의 사상이자,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 (Hermes Trismegistus)로 표상되는, 헤르메스학(Hermeticism)이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에서 따온 것은 물론 우연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유치하게 헤르메스라는 뜻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유사한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이러한 특장점(또는 특단점)을 타고 난 것이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알 수 없다. 개체의식으로 보자면 그것은 우연이겠지만, 집단무의식/정신권/이데아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은 필연일 것이다. 나타나야 할 것이 적절한 시공간에서 연기(緣起)의 흐름을 타고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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