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이 자랑했던 '절세의 미남', 한스 요하임 마르세이유는 나치 독일에 부역적이었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한스 요하임 마르세이유(Hans-Joachim Marseille)는 우생학자나 골수 나치 신봉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나치 독일군 내부에서 가장 '나치답지 않은' 돌출 행동으로 악명이 높았던 인물이었습니다.
마르세이유가 왜 우생학이나 나치 이데올로기와 거리가 먼 인물인지 그 근거를 정리해 드립니다.
1. 나치 규율에 대한 노골적인 반항
마르세이유는 전형적인 '나치 군인'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습니다.
복장과 태도: 머리를 길게 기르거나 군복 단추를 풀고 다녔으며, 상급자에게 경례를 제대로 하지 않아 징계를 밥 먹듯이 받았습니다.
불량 학생: 독일 공군(Luftwaffe) 내에서 그는 "실력은 천재적이지만 통제 불능인 골칫덩이"로 통했습니다. 나치즘이 강조하는 '철저한 규율과 복종'은 그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습니다.
2. 마르세이유의 반나치적 일화
그가 우생학이나 인종 차별적 사상에 관심이 없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들이 있습니다.
유대인 음악 사랑: 당시 나치는 유대인 작곡가의 음악을 '퇴폐 음악'으로 규정해 금지했습니다. 하지만 마르세이유는 기지에 유대인 음악가들의 레코드판을 가져와 크게 틀어놓고 즐겼으며, 이를 제지하는 상관들을 비웃었습니다.
남아프리카 출신 흑인 조수 (마티아스): 가장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는 포로로 잡힌 남아프리카 연방 출신의 흑인 병사 **마티아스 레팅기(Matthias Letulu)**를 자신의 전속 조수로 삼았습니다. 당시 나치의 인종 차별적 관점(우생학)에서 흑인은 열등한 인종이었으나, 마르세이유는 그를 대등한 친구로 대우하며 종전 후에도 그를 보호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3. 히틀러와의 대면
마르세이유는 '아프리카의 별'로 불리며 국민적 영웅이 된 후 히틀러를 직접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그는 나치 경례를 거부하거나 히틀러 앞에서 당당하게 재즈 음악(나치가 금지한 '흑인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등,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4. 왜 우생학자로 오해받을 수 있을까?
그가 우생학자로 오해받는다면, 그것은 아마 나치 선전기구(고벨스) 때문일 것입니다.
나치는 마르세이유의 '아리아인다운' 잘생긴 외모와 압도적인 격추 기록(158대)을 보고, 그를 **"우수한 아리아인의 표본"**으로 홍보했습니다.
즉,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나치 체제에 의해 우생학적 우월함의 홍보 모델로 이용당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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