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1945 문정관 명대사 - 당대 친일파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

 다음은 일제의 패망 후 문정관(친일반민족행위자, 김영철 분)이 집에서 동생 문동기(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 홍요섭 분)와 나눈 대화다. 인상 깊은 대사가 나온다.
문정관 - 네가 여기 온 것을 보니, 때가 된 것이로구나. 동기, 네 세상이 오면 난 죽겠지만, 그래도 내 아우를 위해 '언젠가는 네 세상이 오기를 빌어주마'라 했다. 그 때, 이 형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너무 빠르구나. 네 세상이 이리 빨리 올 줄은 몰랐구나. 이제 나를 심판대에 세워 민족반역자의 죄를 물어 단죄할 것이냐, 친일파 문정관의 죽음을 전리품으로 너의 세상을 자축할 것이냐?
문동기 - 탄백[14]하십시오, 형님!
문정관 - 탄백을 하라......?
문동기 - 대중들 앞에서 형님의 죄를 낱낱이 고백하고 무릎 꿇고 진정으로 사죄하십시오. 덕산과 함흥의 모든 재산이 몰수되기 전에 형님 스스로 죄과에 대한 반성으로 모든 것을 내놓겠다, 성명을 내십시오.
문정관 - 나더러...... 내 모든 것을 내놓으라는 것이냐?
문동기 - 그것만이 형님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내일은 없습니다. 지금 당장 하셔야 합니다! 어차피 형님의 재산은 몰수될 것입니다. 거기에 집착하신다 한들, 이미 덕산의 한 움큼의 흙조차 형님의 것이 아닙니다. 사죄하십시오, 형님!
문정관 - 나는...... 죄가 없다.
문동기 - 형님!
문정관 - 죄를 물으려면 힘 없는 조선에 물어. 가난하고 무지해 제 백성 하나 지켜내지 못한 조선에 죄를 물어.
문동기 - 얼마나 많은 이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버렸는 줄 아십니까? 안창호 선생, 이봉창, 윤봉길 선생, 나석주 선생! 어디 그들 뿐이겠습니까? 열여섯, 열여덟, 꽃다운 청춘들은 또 얼마나 많이 민족을 위해 쓰러져갔습니까? 모두가 형님처럼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문정관 - 그들은 그들의 신념대로 살고, 난 나의 신념대로 사는 것이야. 그들은 그들이 옳다 믿는 것에 목숨을 바치고 나는 내가 옳다 믿는 것에 나를 다 던졌을 뿐이야.
문동기 - 형님!
문정관 - 나는, 내 꿈대로 살았다. 내 한평생에 후회가 없어. 다시 그 시절이 온다 해도 나는 이 길을 택할 것이야. 일본은 나에게 꿈을 주었고, 용기를 주었고, 기적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대체 실체도 없는 조국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조선이라는 허명이 나에게 밥 한 술을 떠 넣어 주었느냐, 등펴고 누울 자리를 하나 던져 주었느냐?! 누더기 같은 삶을 강요했을 뿐이야! 운명에 순응해 돌덩이나 쪼고 질통이나 지며 엎드려 살라,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라, 강요했을 뿐이야!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 개천에서 용났다는 이 문정관이가 자랑스러워. 내 손으로 기적을 이루어 내 아우를 먹이고 공부시키고 내 자식을 키우고 이룬, 이 모든 것들이 자랑스럽다! 너희들은 나를 단죄할 수 없어. 나를 부러워하고, 동경하고, 내 모든 것을 뺏을 순 있어도, 내게 죄를 물을 수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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