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런트 러셀의 '이시스에게' 해설 - 그에게 이 시는 단순한 연애시가 아닙니다. 평생 차가운 논리의 바다에서 헤엄치던 한 인간이, 죽기 직전 따뜻한 사랑의 항구에 도착하여 던지는 최후의 안도감입니다. "나는 인생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았다"는 고백은, 그가 쌓아온 모든 학문적 성취보다 **'누군가와 온전히 연결되는 경험'**이 더 가치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지적해주신 시는 러셀이 그의 자서전 제3권(1944~1967년의 기록) 서문에 헌사로 바친 **'이시스에게(To Edith)'**라는 시가 맞습니다. (여기서 '이시스'는 그가 말년에 만난 마지막 아내 **이디스 핀치(Edith Finch)**를 신화 속 여신 이시스에 빗대어 부른 표현입니다.)

무신론자이자 냉철한 지성인이었던 그가 죽음을 앞두고 쓴 이 시의 의미를 해석해 보겠습니다.


🌹 러셀의 '이시스에게' (To Edith) 해석

이 시는 평생을 지적 탐구와 사회적 투쟁 속에 살았던 노학자가 마침내 찾은 **'정서적 구원'**에 대한 고백입니다.

1. 전반부: 평생을 지배한 고독과 고뇌

오랜 세월을 두고 나는 평온을 찾아 애썼노라... 심장을 갉아먹는 고독의 아픔도 알았노라.

  • 지독한 고독: 러셀은 겉으로는 화려한 명성을 얻었지만, 내면적으로는 늘 타인과 소통하지 못한다는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렸습니다. 그는 지식을 추구할수록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고립감을 더 크게 느꼈습니다.

  • 평온의 부재: 세 번의 이혼과 끊임없는 철학적 회의, 전쟁 반대 운동으로 인한 감옥 투옥 등 그의 삶은 폭풍우 같았습니다. 그는 이성(Reason)으로 세상을 해결하려 했지만, 정작 자기 마음의 평온은 찾지 못했습니다.

2. 후반부: 이디스(그대)를 통한 구원

이제 늙어 종말에 가까워서야, 비로소 그대를 알게 되었노라... 나는 희열과 평온을 모두 찾았고.

  • 말년의 안식: 러셀은 80세가 되어서야 네 번째 아내인 이디스 핀치를 만납니다. 무신론자였던 그에게 '이시스(이디스)'는 종교적 신이 아니라, 인간적인 사랑을 통해 신성함을 경험하게 해준 존재입니다.

  • 지식에서 사랑으로: 평생 논리와 지식에서 답을 찾으려 했던 그는, 결국 삶의 마지막 조각인 '평온'은 머리가 아닌 **가슴(사랑)**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3. 결말: 죽음에 대한 태도 변화

이제, 잠들게 된다면, 아무 미련 없이 편히 자련다.

  • 죽음의 수용: 무신론자에게 죽음은 '끝'이자 '무(無)'입니다. 보통은 공포일 수 있으나, 러셀은 사랑을 통해 삶의 의미를 완성했기에 죽음을 **'미련 없는 휴식'**으로 받아들입니다. 사랑이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게 한 것입니다.


💡 무신론자 러셀이 왜 이런 시를 썼을까?

러셀은 신을 믿지 않았지만, 인간의 삶에 **'종교적 차원의 숭고함'**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그에게 이 시는 단순한 연애시가 아닙니다. 평생 차가운 논리의 바다에서 헤엄치던 한 인간이, 죽기 직전 따뜻한 사랑의 항구에 도착하여 던지는 최후의 안도감입니다. "나는 인생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았다"는 고백은, 그가 쌓아온 모든 학문적 성취보다 **'누군가와 온전히 연결되는 경험'**이 더 가치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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