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와츠는 '입학 자격'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장학금'을 받지 못해 옥스퍼드 진학을 포기; 장학금 심사에서 탈락한 이유는 너무 니체적이고, 현학적으로 에세이를 써서 면접관들 반감을 샀기 때문; 너무 천재면 오히려 제도권 교육에서 낙방할 수도 있다 - 이런 관점에서 하버드나 서울대는 약간 모자른 B급 인재들이 많이 가는 곳; 와츠 본인은 나중에 이 사건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자신이 제도권 대학의 틀에 박힌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자유롭고 창의적인 철학적 통찰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회고하곤 했습니다.
앨런 와츠는 '입학 자격'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장학금'을 받지 못해 진학을 포기한 것이 맞습니다.
당시 상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드릴게요.
1. 옥스퍼드 장학금 시험 (Scholarship Exam)
1932년경, 와츠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세인트 존스 칼리지(St John's College) 장학금 시험을 쳤습니다.
결과: 그는 장학금 후보에서 탈락했습니다.
이유: 앞서 말씀드린 대로, 시험 답안 에세이를 당시 학계에서 금기시되던 니체(Nietzsche) 스타일의 도발적이고 화려한 문체로 썼기 때문입니다. 평가관들은 그의 총명함은 인정했으나, "지나치게 독선적이고 학문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점수를 깎았습니다.
2. 왜 대학을 아예 안 갔나?
당시 영국 사회에서 앨런 와츠의 집안 형편으로는 장학금 없이는 옥스퍼드 학비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 즉, '입학 허가' 자체는 받을 실력이 충분했으나(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천재로 유명했습니다), 돈이 없어서 **'등록'**을 못한 케이스입니다.
그는 이후 런던에 머물며 생계를 위해 일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제도권 교육 대신 도서관에서 스스로 공부하는 길을 택하게 됩니다.
3. "독학자"로서의 자부심
와츠 본인은 나중에 이 사건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자신이 제도권 대학의 틀에 박힌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자유롭고 창의적인 철학적 통찰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회고하곤 했습니다.
질문자님 말씀처럼 그의 권위는 **"어느 대학에서 누구에게 배웠는가"**라는 정통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명료하게 본질을 꿰뚫는가"**라는 순수한 지적 능력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앨런 와츠의 이런 '아웃사이더'적인 배경이 그의 철학을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학계의 정식 검증을 거치지 않은 점이 한계라고 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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