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의 건국자 리콴유의 우생학 사상과 불임 시술, 대졸 여성에 대한 육아 혜택 제공 (1984-5년), 그가 다시 대학생이 되면 분자생물학자가 되고 싶다고 한 이유; "동아시아인은 서양인보다 지능이 높으므로, 올바른 시스템만 갖추면 서구를 추월할 수 있다"고 확신; 그는 한국의 박정희가 그 시스템을 가장 먼저 증명해낸 인물이라고 보았습니다.
What if I were a young undergraduate again? 29 July 1994 NUS Talk by SM Lee Kuan Yew에 따르면 리콴유는 대학생 시절로 돌아가면 뭐가 되고 싶다고 했어? 이 생각이 이후 변한적 있어?
1994년 7월 29일, 싱가포르 국립대학교(NUS)에서 열린 대담(Dialogue Session)에서 리콴유(Lee Kuan Yew) 전 총리는 본인이 다시 대학생 시절로 돌아간다면 무엇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매우 구체적이고 흥미로운 답변을 남겼습니다.
1. 리콴유가 되고 싶었던 것: "분자생물학자"
리콴유는 그날 학생들에게 만약 자신이 21세 대학생으로 돌아간다면 **분자생물학(Molecular Biology)**을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유: 그는 미래의 가장 큰 변혁이 정보기술(IT)뿐만 아니라 유전학과 생물학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인간의 게놈을 이해하고 질병을 치료하며, 생명 자체를 설계하는 능력이 인류의 운명을 바꿀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맥락: 리콴유는 평소에도 "지능"이나 "인성"의 유전적 요인에 관심이 많았으며, 과학적 데이터가 사회 정책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철저한 실용주의자였습니다.
2. 이 생각이 변한 적이 있나?
리콴유의 이 생각은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확고해졌습니다.
과학에 대한 일관된 경외심: 그는 법학을 공부하여 정치인이 되었지만, 늘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세상을 바꾸고, 정치인은 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뿐"이라는 철학을 유지했습니다.
사후 인터뷰와 저서: 그의 자서전이나 후기 인터뷰(예: One Man's View of the World)에서도 그는 다시 태어난다면 정치가 아닌 과학의 최전선에 있고 싶다는 의사를 거듭 비쳤습니다. 그는 정치는 '인간의 본성'이라는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를 다루지만, 과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습니다.
현실적인 회고: 물론 그는 "만약 내가 생물학자가 되었다면 싱가포르라는 국가는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농담 섞인 회고를 하기도 했으나, 개인적인 지적 호기심의 관점에서는 늘 생명과학을 최우선으로 꼽았습니다.
요약하자면
리콴유는 1994년 NUS 강연에서 분자생물학자를 꿈꿨으며, 이는 세상의 근본적인 원리를 파악하고 통제하고자 했던 그의 '설계자적 기질'이 투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생각은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지적 지향점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리콴유가 당시 강연에서 대학생들에게 강조했던 **'성공을 위한 자질(IQ, EQ, 그리고 투지)'**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가요?
이후 비슷한 질문을 받았을 때 시간이 흘러 다른 직업을 말한 적도 있었어? 그리고 싱가포르나 iq나 지능, 학벌에 따라 사회등급을 나눠서 차별하는 제도가 있어? 과거에는 있었어? 어떤 거였어?
리콴유 전 총리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분자생물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의 확신은 더 강해졌습니다.
두 번째 질문하신 싱가포르의 사회적 차별이나 등급 제도에 대해서는, 싱가포르가 표방하는 **'능력주의(Meritocracy)'**의 명과 암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싱가포르에는 공식적인 '계급'은 없으나, 과거에 학벌과 지능에 따라 노골적인 혜택을 주려 했던 논란의 제도들이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1. 리콴유의 생각은 변했는가?
리콴유는 1994년뿐만 아니라 2000년대 이후 인터뷰와 저서(Hard Truths to Keep Singapore Going)에서도 일관되게 **"다시 태어난다면 정치가 아닌 과학자(생물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정치를 "인간이라는 다루기 힘든 재료를 가지고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고단한 작업"으로 보았고, 과학은 "우주와 생명의 객관적인 진리를 탐구하는 명쾌한 작업"으로 보았습니다. 특히 유전학이 인류의 지능과 건강을 결정짓는 핵심이라고 믿었기에 이 분야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관심을 유지했습니다.
2. 과거의 노골적인 학벌/지능 차별 제도
싱가포르 역사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은 1980년대에 시행된 소위 **'우생학적 정책'**들입니다.
① 대졸 어머니 우대 정책 (Graduate Mothers Scheme, 1984)
리콴유는 "똑똑한 부모 밑에서 똑똑한 아이가 나온다"는 신념이 강했습니다. 당시 대졸 여성이 결혼을 기피하고 저학력 여성의 출산율이 높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했습니다.
내용: 대졸 여성이 셋째 아이를 낳으면 초등학교 입학 우선권을 주고, 엄청난 세금 혜택을 부여했습니다.
결과: "국가가 지능에 따라 시민을 등급 매긴다"는 거센 비판과 학계의 반발에 부딪혔습니다. 결국 이 정책은 도입 1년 만인 1985년에 폐지되었습니다.
② 학력에 따른 불임 시술 보상 (1984)
내용: 학력이 낮고 소득이 적은 여성이 둘째 아이 이후 불임 시술을 받으면 국가가 현금(약 1만 달러)을 지급하거나 주택 구매 혜택을 주었습니다.
의도: 가난한 집안의 다자녀가 빈곤의 대물림으로 이어진다는 실용주의적 판단이었으나, 인권 침해와 우생학적 차별이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3. 현재의 시스템: 제도적 차별인가, 효율적 배분인가?
현재 싱가포르에는 위와 같은 노골적인 정책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스트리밍(Streaming, 수준별 분반)' 제도는 여전히 사회적 등급 논란의 중심에 있습니다.
| 구분 | 내용 | 비판점 |
| 수준별 분반 (Streaming) | 초등학교 6학년 시험(PSLE) 성적에 따라 중학교 과정을 Express, Normal 등으로 나눕니다. | 12세 때의 시험 한 번으로 아이의 미래(학벌)가 일찍 결정된다는 낙인 효과가 있습니다. |
| 엘리트 코스 | 성적이 매우 우수한 학생은 국가 장학금을 받고 해외 명문대로 유학 가며, 귀국 후 고위 공무원으로 보장받습니다. | 사회 상층부가 특정 학교 출신으로만 채워지는 '학벌 카르텔' 우려가 존재합니다. |
참고: 최근 싱가포르 정부도 이러한 비판을 수용하여, 2024년부터는 엄격한 스트리밍 제도를 폐지하고 과목별 수준에 맞게 수업을 듣는 **'전과목 기반 수준별 수업(Full Subject-Based Banding)'**으로 전환하며 사회적 격차를 줄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싱가포르에는 법적인 카스트나 사회 등급은 없습니다. 하지만 과거 리콴유 정부 시절 **"우수한 지능(학벌)이 국가의 자산"**이라는 논리 아래 대졸자와 비대졸자를 차별 대우했던 흑역사가 분명히 존재하며, 그 흔적이 오늘날의 극심한 교육 경쟁과 학벌 중시 문화로 남아있습니다.
리콴유가 강조했던 **"지능의 유전성"**에 대한 그의 구체적인 주장이나, 그가 왜 그토록 유전학에 집착했는지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가요?
1의 경우는 실제로 효과가 있긴 했어? 시행기간이 1년이라 좀 부족했나? 중학교 과정이 normal이어도 명문대 진학이 가능? 또 리콴유의 대졸 차별은 여성에게만 적용되었나?
리콴유의 '대졸 어머니 우대 정책'과 싱가포르의 학벌 시스템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주셨네요. 질문하신 내용에 대해 역사적 사실과 현재의 시스템을 바탕으로 정리해 드립니다.
1. '대졸 어머니 우대 정책'의 효과와 한계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실제적인 인구 구조 변화나 지능 향상 효과는 거의 없었습니다.
짧은 시행 기간: 말씀하신 대로 1년(1984~1985)은 인구 통계학적 변화를 확인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습니다.
심리적 반발: 이 정책은 오히려 역효과를 냈습니다. 대졸 여성들은 "우리가 아이 낳는 기계냐"며 분노했고, 비대졸 여성들은 "우리는 열등한 시민이냐"며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정치적 타격: 1984년 총선에서 리콴유가 이끄는 인민행동당(PAP)의 지지율이 급락(약 13% 하락)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리콴유조차 민심의 이반을 느끼고 빠르게 정책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 리콴유의 차별은 여성에게만 적용되었나?
정책의 **직접적인 혜택과 타겟은 '여성'**이었습니다. 리콴유의 논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남성의 선택: 당시 통계상 고학력 남성은 자신보다 학력이 낮은 여성과도 결혼했지만, 고학력 여성은 자신보다 학력이 낮은 남성과 결혼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결과적 현상: 이로 인해 '대졸 여성의 미혼율'이 높아졌고, 리콴유는 이를 "국가적 지능 자산의 손실"로 규정했습니다.
남성에 대한 영향: 직접적인 보조금 정책은 여성 중심이었지만, 사회적으로는 **"남성들도 똑똑한 여성과 결혼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과 캠페인이 전개되었습니다. 이는 남녀 모두를 '유전적 자산'으로 등급화했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3. Normal 과정에서 명문대(NUS 등) 진학이 가능한가?
싱가포르의 교육 시스템은 매우 엄격하지만, 최근에는 **'사다리'**를 많이 만들어두긴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매우 좁은 문입니다.
시스템의 구조: 중학교 입학 시 성적에 따라 **Express(4년제)**와 **Normal(5년제)**로 나뉩니다.
Normal (Academic): 중학교를 1년 더 다니며(5년) 'O' Level 시험을 치릅니다. 이후 폴리테크닉(전문대 개념)에 진학하거나, 성적이 아주 좋으면 Junior College(대학 입시 중심 고교)로 편입할 수 있습니다.
명문대 진학 가능성: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Normal 과정에서 시작해 폴리테크닉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NUS(싱가포르 국립대)에 입학하는 사례가 매년 뉴스에 나옵니다.
현실적 장벽: 하지만 처음부터 Express 코스를 밟은 학생들에 비해 훨씬 먼 길을 돌아가야 하며, 상위권 대학 입학생의 압도적 다수는 여전히 초등학교 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은 학생들입니다.
4. 과거의 또 다른 차별: 공무원 임용과 'Honours Degree'
리콴유 시대에는 학벌 차별이 공직 사회에서 매우 노골적이었습니다.
학위 등급 차별: 영국식 시스템을 따라 학사 학위를 1등급(First Class), 2등급 상(Second Upper) 등으로 나눴는데, 리콴유는 1등급 학위 소지자가 아니면 고위 공무원(Elite Administrative Service)으로 임용하지 않았습니다.
지능 검사: 신입 공무원 채용 시에도 별도의 지능 검사를 실시하여 일정 수치 이상이 나오지 않으면 승진에 제한을 두기도 했습니다.
리콴유는 이러한 정책들이 **"자원이 없는 싱가포르가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생존 전략(인적 자원 극대화)"**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혹시 리콴유가 지능이나 학벌 외에, 싱가포르인들의 **'기질'이나 '성격'**에 대해서는 어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는지 궁금하신가요? (예: 'Hard Truths'에서 언급된 내용들)
그가 말한 지능의 유전성에 대해서도 말해봐. 그는 동양인이 서양인보다 지능이 높다고 보았어 그 반대라고 보았어?
리콴유는 지능의 유전성에 대해 매우 확고하고도 논쟁적인 신념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지능의 80%는 유전에 의해 결정되고, 나머지 20%만이 환경과 교육에 의해 좌우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의 인종별 지능에 대한 견해는 단순히 '동양인이 높다' 혹은 '서양인이 높다'는 이분법보다는, 특정 인종 집단(Ethnic groups)의 인지적 특성과 문화적 결합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1. 인종별 지능에 대한 그의 견해
리콴유는 공개적인 자리와 저술을 통해 인종 간의 지능 차이를 언급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동아시아인에 대한 평가: 그는 동아시아인(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이 서양인(백인)에 비해 수리적 능력과 추상적 논리 사고 능력에서 대등하거나 오히려 앞서는 면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그는 "동아시아인들은 IQ 테스트에서 서양인보다 평균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는 경향이 있다"는 당시 일부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자주 인용했습니다.
서양인에 대한 평가: 반면, 서양인들이 가진 창의성, 발명가적 기질, 개척 정신은 동양인이 쉽게 따라잡기 힘든 강점이라고 보았습니다. 즉, '지능의 수치' 자체는 동양인이 높을 수 있어도, 세상을 바꾸는 '혁신성'은 서양의 문화와 결합된 지능에서 나온다고 분석했습니다.
유색인종 내에서의 비교: 리콴유는 싱가포르 내의 다민족(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 사이에도 유전적 지능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이는 싱가포르 내에서 엄청난 사회적 논란과 상처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2. 왜 "지능의 유전성"에 집착했는가?
그가 유전학, 특히 분자생물학자가 되고 싶어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데이터 중심의 통치: 그는 싱가포르라는 작은 나라가 생존하려면 **'최고의 머리(Top Brains)'**를 찾아내어 그들에게 국가 경영을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능이 유전된다면, 우수한 지능을 가진 사람들을 장려하여 국가의 전체적인 IQ 수준을 높이는 것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본 것입니다.
사회 복지에 대한 비판적 시각: 그는 하위 20%의 지능을 가진 사람들에게 과도한 교육 예산을 쏟아붓는 것보다, 상위 5%의 엘리트를 키워 수만 명을 먹여 살리게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냉혹한 엘리트주의를 고수했습니다.
3. 리콴유의 "아시아적 가치"와 지능
그는 동양인이 서양인보다 유리한 지점에 있는 이유를 단순히 유전자로만 설명하지 않고 **'유교적 가치관'**과 결합했습니다.
"동양인이 높은 지능을 발휘하는 이유는 유전적 잠재력에 더해, 교육을 숭상하고 가족을 중시하는 유교적 규율(Discipline)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즉, 그는 **[우수한 유전자 + 엄격한 가정 교육]**의 결합이 동양인의 성공 비결이라고 보았습니다.
4. 현대의 시각에서 본 리콴유의 생각
오늘날 리콴유의 이러한 '인종주의적/우생학적' 시각은 현대 과학과 인권 관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습니다.
과학적 한계: 현대 유전학은 지능이 수천 개의 유전자가 복잡하게 얽힌 결과이며,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리콴유가 생각했던 20%보다 훨씬 더 결정적이라고 봅니다.
정치적 논란: 그의 생각은 특정 인종이나 계층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쓰일 위험이 컸으며, 실제로 싱가포르 내부에서도 소수 민족들에게 소외감을 주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요약하자면, 리콴유는 동아시아인의 지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했지만, 그것이 반드시 서양을 압도한다는 뜻이라기보다 **"우리도 충분히 우월한 유전자를 가졌으니, 제대로 교육하고 관리하면 세계를 제패할 수 있다"**는 일종의 국가 개조론의 근거로 사용했습니다.
리콴유의 이런 엄격한 엘리트주의가 싱가포르의 **'태형(매질)'**이나 '껌 금지' 같은 아주 사소하고 엄격한 법 집행과도 연관이 있다는 점을 알고 계시나요? 이 부분도 흥미로운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리콴유는 박정희 영향을 받았나?
리콴유 전 총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기보다, 서로를 깊이 존경하고 인정했던 '동지적 관계'**에 가까웠습니다. 리콴유는 박정희를 "아시아의 3대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꼽으며 그의 업적을 극찬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와 리콴유가 박정희에 대해 가졌던 생각들을 정리해 드립니다.
1. 리콴유가 본 박정희: "역사의 심판에 맡기는 지도자"
리콴유는 1979년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직전에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청와대 만찬에서 리콴유는 박정희에게 다음과 같은 찬사를 보냈습니다.
"어떤 지도자들은 언론과 여론조사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데 정력을 소모하지만, 다른 지도자들은 오직 일에만 집중하고 평가는 역사의 심판에 맡깁니다. 만약 각하께서 눈앞의 현실에만 집착하셨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말은 리콴유 본인의 통치 철학(대중의 인기보다 국가의 미래가 우선)과도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이었습니다.
2. 박정희를 "아시아 3대 지도자"로 꼽다
리콴유는 평소 박정희(한국), 덩샤오핑(중국), 요시다 시게루(일본) 세 사람을 아시아를 위기에서 구하고 현대화의 기틀을 닦은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했습니다.
강한 의지에 대한 감탄: 리콴유는 박정희가 가난을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졌으며, 이를 위해 '새마을 운동'과 같은 전 국민적 에너지를 끌어모은 점을 높게 샀습니다.
통일벼와 농촌 개혁: 리콴유는 방한 당시 포항제철보다 오히려 농촌의 황금들녘과 통일벼에 더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는 "농민의 배가 부르면 공산주의 혁명은 끝난 것"이라며 박정희의 농촌 근대화 성공을 부러워했습니다.
3. 두 사람의 공통점과 차이점
리콴유와 박정희는 비슷한 철학을 공유했지만, 방식에서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 구분 | 공통점 | 차이점 |
| 통치 스타일 | 권위주의적 리더십: 민주주의보다 경제 발전이 우선이라는 '개발 독재' 기조 공유. | 법치 vs 인치: 리콴유는 철저히 영국식 법 시스템 안에서 통제했으나, 박정희는 유신 헌법 등 법을 직접 개정하며 통치함. |
| 청렴도 | 부패 척결: 공직 사회의 청렴을 강조함. | 리콴유는 고위직에 세계 최고 수준의 연봉을 주어 부패를 원천 차단했고, 박정희는 상대적으로 절검과 정신 개조를 강조함. |
| 민족주의 | 국가 생존: 외세로부터 자국을 지키기 위한 강한 민족주의적 성향. | 리콴유는 다민족 국가 특성상 '싱가포르인'이라는 정체성을 새로 만든 반면, 박정희는 기존의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함. |
4. 사후의 평가
리콴유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으며,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도 과거 박정희와의 인연을 언급하며 친분을 이어갔습니다. 리콴유의 아들인 리셴룽 총리 또한 박정희-박근혜 부녀와 대를 이은 인연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결론적으로, 리콴유는 박정희를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길을 걸었던, 시대를 앞서간 동료 지도자"**로 보았습니다. 리콴유의 '아시아적 가치' 담론은 박정희가 주창했던 '한국적 민주주의'와 궤를 같이하는 이론적 방어 기제이기도 했습니다.
혹시 리콴유가 박정희 외에 북한의 김일성이나 한국의 다른 지도자들에 대해서는 어떤 독설이나 평가를 남겼는지 궁금하신가요?
덩샤오핑과 푸틴은 박정희 영향을 받았나? 그리고 동양인의 iq는 서양인보다 우수하고, 동양인 중에서는 어느 집단이 가장 우수? 한국인? 중국인?
리콴유 전 총리는 박정희 모델을 아시아 발전의 전형으로 평가했으며, 덩샤오핑과 푸틴 역시 이 모델로부터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 덩샤오핑과 푸틴은 박정희 영향을 받았나?
네, 두 지도자 모두 박정희의 '경제 발전 모델'을 깊이 연구하고 참고했습니다.
덩샤오핑(중국): 1970년대 후반 개혁·개방을 추진할 때, 리콴유로부터 "한국의 발전은 박정희의 리더십 덕분"이라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덩샤오핑은 한국의 **'수출 주도형 경제 성장'**과 **'새마을 운동'**을 중국식으로 변형하여 도입했습니다. 실제로 중국의 '신농촌 운동'은 한국의 새마을 운동을 벤치마킹한 것이며, 그는 공산당 독재라는 정치 체제를 유지하면서 자본주의 경제를 결합하는 방식에서 박정희식 '개발 독재'의 효율성을 높게 샀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푸틴은 공개적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본인의 롤모델 중 한 명으로 꼽았습니다. 소련 붕괴 후 혼란에 빠진 러시아를 재건하기 위해 '강한 국가, 강한 경제'를 표방한 푸틴은, 박정희 시대의 국가 주도 중화학 공업 육성과 카리스마적 통치 스타일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는 박정희 관련 전기와 다큐멘터리를 탐독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2. 동양인의 IQ에 대한 리콴유의 생각과 순위
리콴유는 지능의 유전성을 신봉했으며, 인종 간 지능 차이가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동양인 vs 서양인: 리콴유는 동양인(동아시아인)의 IQ가 서양인보다 높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리처드 린(Richard Lynn) 등의 연구를 인용하며, 서양인의 평균 IQ를 100으로 볼 때 동아시아인은 105~110에 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만, 서양인은 창의성과 개척 정신에서 강점이 있고, 동양인은 수리적 능력과 규율 있는 학습 능력에서 우세하다고 분석했습니다.
동양인 중 누가 가장 우수한가?
리콴유는 특정 국가를 1등으로 못 박기보다 **'중국계(한족), 한국인, 일본인'**을 동일한 고지능 집단으로 묶어서 평가했습니다.
그는 싱가포르 내 중국계의 우수성을 강조하면서도, 한국인에 대해서는 **"엄청난 에너지와 투지(Grit)를 가진 민족"**이라며 지능과 기질의 결합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통계적 순위: 리콴유가 참고했던 리처드 린의 데이터나 현대의 IQ 통계(World Population Review 등)에 따르면, 일본, 한국, 대만, 싱가포르, 중국이 매년 미세한 차이로 1~5위를 주고받습니다. 최근 통계에서는 주로 일본이나 대만이 근소하게 1위로 집계되는 경우가 많으며, 한국은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3. 요약: 리콴유의 엘리트주의 관점
리콴유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1등이냐'보다 **"동아시아인은 유전적으로 우수하므로, 올바른 시스템만 갖추면 서구를 추월할 수 있다"**는 확신이었습니다. 그는 한국의 박정희가 그 시스템을 가장 먼저 증명해낸 인물이라고 보았습니다.
리콴유가 박정희를 높게 평가하면서도, 정작 북한의 김일성에 대해서는 "공산주의라는 잘못된 시스템으로 우수한 민족의 재능을 썩히고 있다"며 매우 혹독한 평가를 내렸던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이 영상은 리콴유가 생전에 박정희 대통령과 한국의 발전 모델에 대해 가졌던 깊은 존경심과 통찰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입니다. 리콴유가 평가한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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