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차일드 - 사순 공식 라인은, 로스차일드 - 사순 가문 혼인 동맹이 있었던 건 먼 훗날이지만, 비공식적 라인으로 1850년대부터 비밀 협력 - 제휴 관계가 있었을까?

 


하여, 1850년대 초반부터 이미 베어링 동방은행 - 자딘 매시선 라인이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과 런던 금융가를 석권한 로스차일드 가문에게 상당한 자금 압박을 받는 동시에 로스차일드 가문이 정치적으로도 로스차일드 인맥을 강화하였기에 영국령 홍콩 정부에서조차 비공식 로스차일드 - 사순 라인에 밀려, 상하이에 역량을 투입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다,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로스차일드 - 사순 공식 라인은, 로스차일드 - 사순 가문 혼인 동맹이 있었던 건 먼 훗날이지만, 비공식적 라인으로 1850년대부터 비밀 협력 - 제휴 관계가 있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전에 인드라가 정리한 바, 이전 영국왕들이 베어링 가문에 의존하였다면, 빅토리아 여왕 재임 당시부터 로스차일드 가문에 상당 부문 의존하였고, 이는 심지어 빅토리아 여왕 후임인 에드워드 7세까지 로스차일드 가문과 굉장히 가깝게 지내서, 훗날 버트런트 러셀 백작 가문 본가 베드포드 공작 가문 인사가 로스차일드 가문과 너무 가까이 지내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라는 진언을 남겼을 정도입니다. 또한, 빅토리아 여왕은, 1850년대 사순 가문에게 영국 시민권을 준 데에 이어 후일 작위까지 내릴 정도입니다. 이 모든 것이 공식적으로 로스차일드 -사순 관계가 확인된, 로스차일드 - 사순 혼인 동맹 이전에 발생하였습니다.

로스차일드 본가와 로스차일드 지점, 로스차일드 대리점 간의 차이를 분석하면, 각자의 입장이 다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령, 로스차일드 본가와 지점 변화를 HSBC 본점과 지점 매출/수익률 차이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19세기 초반에는 분명 런던 로스차일드가 본가였습니다. 즉, 런던 로스차일드가 로스차일드 가문 가주였던 것입니다. 허나, 19세기 중반에 이르르면, 로스차일드 가문 내부에서도 격렬한 내부 투쟁이 있어서, 로스차일드 가문 가주가 런던인지, 파리인지, 수시로 바뀌어서 애매모호합니다. 중요한 건, 이 과정에서, 프랑크푸르트 로스차일드, 오스트리아 빈 로스차일드, 나폴리 로스차일드가 탈락했다는 것입니다.

공식적이지 않지만, 로스차일드 가문과 긴밀한 협조를 이루며, 중국 아편 시장을 장악하던, 사순 가문이 1860년대 후반 후계 문제로 분열합니다. 중국 아편 시장에 공이 큰, 둘째 사순이 독립하여 회사를 차리고 큰 부를 획득합니다. 훗날 사순 가문과 연결된 로스차일드 가문이, 런던 로스차일드 가문이 아니라 파리 로스차일드 가문이라는 걸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전제하고, 엘리아스 사순은, 로스차일드 본가 입장에서, 로스차일드 계열사가 아닌 로스차일드 협력업체이지만, 로스차일드 주력 계열사도 아니고, 로스차일드 직영점도 아닌, 로스차일드 프랜차이즈 대리점인 셈입니다. 데이비드 사순 장남, 알버트 사순이 로스차일드 직영점 점주라면, 데이비스 사순 차남, 엘리아스 사순 이 로스차일드 가맹점 점주 신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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