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과거에서부터 동굴은 현실과 떨어진 신비로운 공간이었다. 웅녀가 쑥과 마늘을 먹어 초월을 이룩한 장소도 동굴이었고, 일본의 아마테라스가 스사노우의 행패에 은둔한 신비로운 장소 또한 동굴이었다. 로마의 미트라교에서는 동굴을 우주의 모형이라고 말하는 등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세계로 보고있다. 외부와 차별화되고 습하고 어두운, 근원적인 이미지가 동굴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초월의 이미지가 수행자라면 반드시 거쳐야할 관문으로, 어린사제들의 뇌리에 새겨지게되었다. 14세가 되던해, 사춘기가 한창이었던 나는 누구에게나 잘보이고 싶은 마음이 유독 강했다. 동굴에서의 수행은 성인사제들도 견디기 힘들어하는 고된 과정이었기 때문에 여름방학 동안 그 과정을 겪어보고자 밀떡 두덩이와 반건조 생선 두쪽, 포도 한송이를 들고 마을 깊숙한 곳의 동굴로 들어가보았다.
입구에서부터 멋들어지게 자라난 종유석과 들어갈수록 시원하게 뻗은 석순들은 내 마음을 현혹시켰다. 동굴 특유의 냉기는 머리를 맑아지게 하였고, 비릿하고 습한 내음은 가장 근원적인 어떤 곳을 떠올리게 했다. 입구로부터 흐릿하게 스며드는 빛은 사물들의 형체를 흐렸고 들어갈수록 그 경계는 더욱더 허물어져, 더이상 들어갈 수 없을 정도에 다다르자 완전한 어둠이 전체를 수렴하게 되었다.
공기가 회백색으로 식어버린 시점에서 빛과 소리를 포함한 모든 파동을 운반할 힘을 잃었고 그에 따라 시간과 공간조차 의미없게 느껴졌다. 시공의 경계가 흐려지기에 육체는 원자단위로 해체되어 어둠에 자연스레 스며들었고, 나는 그렇게 없음으로 충만해졌다.
내가 동굴밖으로 나온것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였다. 동굴에 들어간지 삼일뒤, 실종신고를 받은 구조대원이 의식을 잃은 나를 끌고나온 것이었는데, 동굴 깊숙한 곳의 저산소를 견디기에 너무 어렸던 나는 실종된 3일간 쇼크 상태에 빠졌던것이다. 구조된지 수시간이나 지난뒤 정신이 든 나는 극도의 현기증에 시달렸다. 모든 존재가 지워진 동굴안과 다르게 세계에는 모든 사물과 관념들이 발을 딛고 단단히 서있기 때문에, 마치 이국을 다녀옴으로 생긴 시차와도 같은 일렁임이 거슬리도록 불쾌했다. 이십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동굴밖을 나왔을때 겪었던 불쾌한 일렁임은 멎지 않는다. 동굴에서 경험한 완전한 합일의 경지가 불완전한 현실에서 살아가야할 나를 이방인으로 만든것이다. 언젠가 동굴으로 돌아가고싶은 충동에 찾아가본 동굴 입구는 실종사건으로 인해 이미 폐쇄된 상태였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세계에 대한 그리움은 내 삶의 끝자락까지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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