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시대, 신을 체험하기 위해 이성을 중시한 토마스 아퀴나스 vs 체험을 중시한 스토아 학파의 신플라톤주의자 보나벤투라
우리 지능이 밝히는 빛이 우리 마음까지 감동시키지 않으면 효과가 없는 빛이다.
영적인 보나벤투라와 지적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시각은, 최상위의 윤리의식이자 양심의 불꽃이라 불리는 '신데레시스(synderesis)'에 대한 관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먼저 보나벤투라는 "이성은 분명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빛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진리를 알 수 없으며, 진리란 명상과 기도로 영혼을 끊임없이 단련하여 하느님과 직접 일치할 때 알 수 있는 것"이라 주장한다. 이성이 아예 필요하지 않다는 소리가 아니라 진리를 향한 1차적인 단계이자 도구라는 이야기이며, 간단히 말해 머리로 지식을 습득한 뒤에도 가슴으로 통찰까지 하여야만 하느님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일단 하느님을 본 경험을 이끌어내는 이성의 단계와 그를 통해 하느님을 본받은 영혼을 느끼는 감각의 단계를 거쳐 마지막으로 하느님과 자신의 영혼이 완전히 일치하는 일종의 황홀감, 즉 관조(觀照)의 단계에 이르는 3가지 과정이 중요하다는 관점. 아우구스티노 같은 초대 교부들의 의지를 그대로 받든 것이며, 그야말로 수도자답고 사제다운 발상이다.
반면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하는 진리의 인식은 그와 반대로 작용한다. 기도나 명상으로 영혼의 단련을 통해 하느님을 보지만 이해할 수 없으며,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하느님에 대한 지식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슴으로 '응시하는' 것을 통해 머리를 굴려 그 뜻을 이해하라는 이야기다. 아니, 머리뿐만이 아니라 온몸을 굴려 이해해야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주창하는 것은 실천적 지성이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그리스도교를 그 나름대로 융합한 결과이다.
이 의견의 차이는 그들이 속한 수도회의 성향과도 관련이 있다. 보나벤투라가 속한 프란치스코회는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채 절반은 폐쇄된 곳에서 기도하는 것이 주된 활동이었고, 토마스 아퀴나스가 속한 도미니코회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고 세상으로 나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교육시키고 전파하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보나벤투라가 세라핌 박사라 불리는 이유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도 성흔을 받은 라베르나 산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여섯 날개 세라핌의 환영을 보았던 것도 있고, 그런 그가 저서 <하느님께 가는 영혼의 여정(ITINERARIUM MENTIS IN DEUM)>에서 하느님을 향한 영혼의 여정을 그 세라핌의 여섯 날개[12]로 나누어 제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1단계: 하느님에게 올라가는 단계와 그분의 흔적을 통하여 관상함에 대하여 (DE GRADIBUS ASCENSIONIS IN DEUM ET DE SPECULATIONE IPSIUS PER VESTIGIA EIUS IN UNIVERSO). 2단계: 이 감각적 세계 속에 그분의 흔적 안에서 하느님을 관상함에 대하여(DE SPECULATIONE DEI IN VESTIGIIS SUIS IN HOC SENSIBILI MUNDO). 3단계: 타고난 능력에 각인된 그분의 형상을 통하여 하느님을 관상함에 대하여(DE SPECULATIONE DEI PER SUAM IMAGINEM NATURALIBUS POTENTIIS INSIGNITAM). 4단계: 은총의 선물에 의해 재형성된 그분의 형상 안에서 하느님을 관상함에 대하여(DE SPECULATIONE DEI IN SUA IMAGINE DONIS GRATUITIS REFORMATA). 5단계: 하느님의 일차적인 이름인 존재를 통하여 하느님의 하나이심을 관상함에 대하여(DE SPECULATIONE DIVINAE UNITATIS PER EIUS NOMEN PRIMARIUM, QUOD EST ESSE). 6단계: 선이신 그분의 이름 안에서 하느님의 삼위일체를 관상함에 대하여(DE SPECULATIONE BEATISSIMAE TRINITATIS IN EIUS NOMINE, QUOD EST BONUM). 최종 단계: 호한 사랑 속에 하느님을 향하여 상승하는 영혼에게 휴식을 주는 신비로운 영적 황홀에 대하여(DE EXCESSU MENTALI ET MYSTICO, IN QUO REQUIES DATUR INTELLECTUI, AFFECTU TOTALITER IN DEUM PER EXCESSUM TRANSEUNTE). |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