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윌슨의 긍정적 실존주의(positive existentialism), 인간 무의식의 비밀과 최면, 주관적 정신 (집단무의식), 우뇌, 기적, 천재, 그리고 신사고운동: 성 베르나르두스의 기적 / 볼테르는 비판했지만, 데이비드 흄(David Hume)이나 드 라 콩다민(Charles-Marie de La Condamine) 같은 완고한 회의론자들도 놀라움을 표했던 성 메다르 교회의 기적 (1727-1732) / 1890년 토머스 제이 허드슨의 최면치료와 1870년대 칼 핸슨의 최면 사례들이 말해주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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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최면(hypnopsis)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다. 최면은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잠깐 최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의식과 무의식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프로이트는 의식을 바다 위에 떠 있는 빙산의 일각, 무의식은 바닷속에 잠겨 있는 나머지 부분이라 했고, 융은 의식을 바다에 떠 있는 섬, 섬을 제외한 나머지 바다가 무의식이라 했다. 프로이트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평생을 두고 반복된다고 했고, 융은 태고 때부터의 경험이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 기억이나 의식에 없는 것을 무의식으로, 융은 거기에 더해 태고 때부터 지금까지 내 기억이나 의식에 없는 것을 무의식으로 본 것이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부정적인 것으로, 융은 창조적인 것으로 봤다.
그렇지만 프로이트나 융 모두 무의식이 의식보다 더 광대하며, 의식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것은 현대의 심리학자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우리는 무의식을 힘을 평소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지만, 사실 인간의 행동과 생각을 결정하는 것은 무의식이다.
1980년대에 벤자민 리벳(Benjamin Libet)은 독일 신경학자인 한스 콘휴버(Hans Kornhuber)와 헬렘홀츠의 후속 연구를 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알아내게 된다. 한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2.56초마다 회전하는 컴퓨터 시계를 보도록 지시받았는데, 그들이 생각을 결정하기 1/3초 전에 뇌에서 먼저 신호가 잡힌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연구자들은 슬로우 모션으로 녹화된 비디오를 재생하면서 어떤 사람이 언제 움직일 것을 결정하리란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 이 실험은 인간의 뇌를 관찰하는 관찰자는 실험대상이 어떠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것을 결정을 내리는 본인보다 먼저 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식에 앞서 무의식이 어떤 흐름을 만들어내면, 비로소 의식이 그것을 수용하게 된다.
세상의 모든 최면 요법은 인간의 무의식을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통제함으로서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일들을 가능하게 만든다. 최면이 갖고 있는 힘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1727년부터 1732년까지 프랑스 파리의 성 메다르(St.Medard)라는 작은 교회에서 일어난 일련의 불가사의한 사건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1727년부터 1732년에 걸쳐, 파리의 성 메다르라는 작은 교회에서는 일련의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났다. 현대의 독자들은 그 사건을 공상에 불과하다고 웃어넘길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공산만은 아닌 것 같다. 그것이 진실이었다고 증명하는 여러가지의 고문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의사, 재판관 등 사회적인 신뢰도가 높은 인물들의 이야기도 포함되므로 기적이 일어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만 의학자나 철학자나 과학자나 현 단계에서는 아직 그 기적의 해명을 시도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기적은 파리의 부신부 프랑수아 드 파리의 매장에서 비롯되는데 1727년의 일이다. 프랑수아 부신부는 당시 37세의 젊은 나이였으나 병을 치유하는 힘을 가진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그는 코넬리우스 얀센 사제(1585~1638, 화란의 가톨릭 신학자)의 신봉자였다. 그는 인간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의 은총에 의해서만 구제된다고 주장하는 인물이었다. 프랑수아 부신부는 자기에게 구비된 병의 치유력이 신에게서 주어졌음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의 관은 성 메다르의 높은 제단 뒤의 무덤 속에 안치되었다. 참석자들은 차례대로 꽃을 바쳤다. 그 가운데 불구의 어린이가 하나 있었다. 그 아이는 관 위로 넘어질 뻔했다. 당황한 아버지가 손으로 부축하는 순간 아이는 몸을 뒤틀며 발작을 일으켰다. 몇 사람이 교회 경내의 조용한 구석으로 아이를 끌고갔다. 그러자 갑자기 경련이 멈추었다. 아이는 눈을 뜨고 놀란 듯이 두리번거리고는 천천히 일어섰다.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장례식의 참석자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아이는 근육이 전혀없는 오른발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에 그 오른발이 건전한 왼볼과 같은 상태로 치유된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소문을 들은 절름발이, 문둥병, 곱사등이, 장님 등이 교회로 몰려들었다. '상류계급'의 사람 중에는 이 기적의 치유를 믿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프랑수와 부신부의 신자들은 대부분 가난뱅이였다. 부자는 그 정신상의 문제를 가톨릭의 예수회에 맡기고 있었는데 훨씬 학문적이며 세속적인 지혜도 통달한 교파이다. 그러나 무지나 인간의 허약함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는, 이 경이로운 일들을 설명할 수 없음을 점차 알게 되었다.
사태가 여기에 이르자 예수회는 기적이란 것은 '사기'거나 악마의 소행이라고 퍼뜨렸다. 그 결과 파리의 상류계급들은 성 메다르 교회의 경내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찾아왔다가 충격을 받고 돌아가는 일이 허다했다. 그중에는 인쇄물을 통해서 증거를 남기는 사람도 있었다. 가령 필립은 인과관계로 이 현상의 설명을 시도했다.
한편 베네딕트회의 수도사 베르나르 루이 드 라 타스트와 같이 기적을 행하는 사람을 신학적인 근거로 탄핵하고자 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타스트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나 기적의 대상자에게서도 사기행위 또는 엉터리라는 증거를 적발해내지는 못했다. 이렇게 해서 많은 증언이 쌓여 갔다. 이 시대의 위대한 철학자의 한 사람인 데이비드 흄(1711~1776)은 그의 저서 <인간의 이해에 관한 탐구(1758)>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한 인물에게서 그렇게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은 전에 없던 일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이 지식의 시대에 그 인격 및 지식을 믿을 수 있는 다수 인사의 눈앞에서 많은 기적들이 증명되었다는 점이다... 그렇게도 많은 상황이 단일한 사실을 확증한 것을 우리는 역사상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이 사건을 조사한 사람 중에 루이 아드리앵 드 페주라는 법률가가 있었다. 그는 자기가 눈으로 본 것을 친구인 판사 루이 바실 카레 드 몽제롱에게 말하지만 판사는 가볍게 물리친다. 마술사에게 속았거나 축제 때 흔히 볼 수 있는 마술사의 경우를 '기억'이라고 떠들어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그는 페주와 동행하여 교회를 구경하러 갔다. 법률가라는 인텔리가 어쩌다가 속았는지를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리하여 1731년 9월 7일 아침에 출발한다. 그러나 교회를 출발할 때 몽제롱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후에 그는 목격한 것을 부정하기는커녕 투옥조차 감수하게 된 것이다.
교회에 발을 들여놓은 뒤 판사가 최초로 목격한 것은 땅 위에서 엎치락 뒤치락하고 있는 한 무리의 여자들이었다. 믿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때로는 등을 뒤로 젖히고 뒷머리가 발뒤꿈치에까지 이르도록 몸을 굽히도록 했다. 여자들은 모두 긴 가운을 입고 있었는데 발목에서 묶여 있었다. 폐주의 설명에 따르면 부신부의 신비의 축복을 받는 여성은 이것이 지금까지 의무로 되어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여자들이 거꾸로 서거나 몸을 흔들거나 하면, 호기심이 많은 남자들이 구경하러 교회로 몰려오기도 했다고 한다.
그 의식에 남자가 참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몽제롱은 여성이나 소녀가 참혹하게 구타당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들에게는 적어도 처음에는 그렇게 비쳤다. 사나이들은 몽둥이나 철봉으로 여자를 구타했다. 땅바닥에 엎드려 있는 여자도 있었는데 그들은 분명히 거대한 무게의 바위같은 것에 짓눌린 몰골이었다.
이 여성들은 모두가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여자들이 더 때려달라고 애원했다. 이런 난폭한 처치에 의해서 여자들은 병이나 불구의 몸을 치유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 내의 다른 장소에는 19세 정도의 장밋빛 얼굴의 예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탁자 앞에 앉아서 무엇인가를 먹는다. 그녀에게 접근하여 접시에 담긴 것을 본 몽제롱은 질겁을 했다. 겉모양과 그 냄새로 보아 인간의 오물임에 틀림없었던 것이다. 구역질 나오는 오물을 입에 넣으면서 그녀는 때때로 노란 액체를 마신다. 그것은 오줌이었다. 소녀는 노이로제의 치료를 위해서 왔다고 했다. 하루에 몇 백 번 손을 씻지 않으면 안 되고 남이 손을 댄 음식물은 절대로 입에 넣지 않았다.
부신부의 기적은 이 소녀도 치료하기에 이른다. 이런 종류의 상황은 정신병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상하고 어처구니없는 광경이 또 기다린다. 그녀는 이 음식(?)을 먹은 후 기분이 나쁘다는 듯 입을 벌렸는데 그 입에서는 하얀 액체가 흘러나왔다. 페주는 그것을 잔으로 받았다. 그것은 마치 우유 같았다.
인간의 배설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소녀를 본 몽제롱은 소름이 끼쳤지만 이 정도는 시작에 불과했다. 더욱 처절한 광경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교회 내의 또 다른 장소에서는 화농의 상처나 종기를 말게 하기 위해서 몇몇의 여자들이 자신의 의지로 지원하고 있었다. 그것은 상처를 입으로 빠는 일이었다. 한 사람이 어린 소녀의 다리에서 붕대를 벗기나 심한 냄새가 풍겼다. 몽제롱은 역겨움을 참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다리의 곳곳이 화농되어 있었고 뼈까지 보이는 곳도 있었다.
치유를 자원한 여자는 컨벌션(Convulsion, 그리스도교의 일파, 18세기 초 프랑스에서의 열광적인 얀센주의 단체. 컨벌션은 '경련'의 뜻)의 한 사람이다. 그녀는 기적의 치유를 받고 육체에 대한 비뚤어짐이나 경련으로 개종한 신자로 하여금 지금 신에게 선택되어 인간이 그 본래의 혐오감을 어떻게 극복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녀는 하늘을 쳐다보며 잠시 묵도했다. 그리고 소녀의 썩은 다리에 입을 대고 고름을 빨기 시작했다. 몽제롱의 눈에 꺠끗해진 다리가 보였다. 이 처치가 완료될 무렵 소녀의 상처는 완전히 치유될 것이라고 페주는 그에게 말했다.
그러나 몽제롱은 다음과 같은 것을 보고 나서 일체의 저항을 버렸다. 심오한 무엇인가를 목격한 그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가브리엘 모러라는 16세의 소녀가 들어왔다. 그녀의 출현으로 주위가 시끄러워졌다. 상식을 초월한 이 기적의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녀는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그녀는 망토를 벗고 땅에 누웠는데 스커트는 발목까지의 길이였다. 끝이 날카로운 창을 손에 들고 네 명의 사나이가 다리를 벌린 채 그녀 위에 섰다. 그녀가 미소를 짓는 것을 신호로 사나이들은 창으로 그녀의 복부를 찌른다. 몽제롱은 말리려다 제지를 당했다. 그는 숨을 몰아쉰다. 그러나 피는 보이지 않았다. 소녀는 잠을 자고 있었고 평화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음에는 쇠몽둥이가 그녀의 턱 아래를 누른다. 목을 관통할 정도였다. 그러나 쇠몽둥이를 들어올렸을 때 피부의 어디에도 상처가 없었다. 그 다음에 사나이들은 끝이 예리한 삽을 그녀의 가슴에다 대고 힘껏 눌렀다. 그래도 소녀는 평온하게 미소를 짓는다. 가슴에는 4개의 삽자국이 있어야 했는데 짓눌린 자취가 없었다. 이윽고 삽의 날을 목에 대고 사나이들은 힘을 다하여 짓눌렀다. 목이 잘릴 정도였으나 역시 그 자국도 보이지 않았다.
소녀가 절구공 모양의 큰 쇠몽둥이로 구타당했을 때 몽제롱은 어지러워서 쓰러졌다. 이번에는 25킬로그램 묵의 큰 돌이 약 1.5미터의 높이에서 그녀의 몸에 되풀이하여 떨어졌다. 마지막에그녀는 활활 타는 불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불 속에 넣었다. 조금 떨어져 있는 몽제롱에게도 열이 전해왔지만 소녀의 머리나 눈썹은 타지 않았다. 다시 그녀는 불이 붙은 석탄을 먹기 시작했다. 이 단계에서 몽제롱은 더 견딜 수가 없어서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그는 가끔 그 교회를 방문하여 자료를 모아 책으로 엮고 루이 15세에게 보고한다. 왕은 그 내용에 충격을 받았으나 노한 끝에 그를 투옥시킨다. 그러나 몽제롱은 '증인'의 입장을 고집했고 출옥 후 기적에 관한 정확한 학문적인 증거가 포함된 책을 다시 2권 내게 된다. 몽제롱이 투옥된 이듬해인 1732년, 파리의 치안당국은 이 '스캔들'을 방치할 수 없다고 생각해 성 메다르 교회의 폐쇄를 명령한다. 그러나 컨벌션파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어디에서나 기적을 행할 수 있었다. 그후에도 오랜 세월에 걸쳐서 기적을 행한다. 완고한 회의론자로 알려진 과학자 라 콩다민(1701~1774, 프랑스의 박물학자)도, 1759년에 몽제롱과 같은 흥분을 경험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목격한 것이다.
시스터 프랑수아즈라는 소녀가 나무십자가에 못박혔다. 손과 발에 못이 박힌 채 몇 시간동안 그대로 방치되었다. 옆구리에는 창이 꽂혔다. 이것으로 그는 소녀가 치명상을 입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못을 뺄 떄는 분명히 피가 흘렀다. 그러나 보통 인간같으면 죽었을 이 고문에도 그 소녀는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이상의 기적을 20세기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일부 연구가들은 이것을 자기 최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의 배설물을 먹는 소녀와 남의 상처를 입으로 빨아내는 여자는 설명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가브리엘 모러의 이상한 인내의 힘은 설명되지 않을 것이다. 이 장면은 오히려 수도자의 고행에 가깝다.
가령 J. G. 베네트는 그의 자서전 <증언>에서 수도자의 의식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면도날과 같이 예리한 검이 벌거벗은 사나이의 배 위에 올려졌고 덩치가 큰 사나이가 그 위에서 뛰었다. 그러나 누워 있는 사나이의 몸에는 아무 상처도 없었던 것이다." 이 경우에 작용하고 있는 것은 '생각의 힘'과 같은 것이다. 단순한 최면보다도 깊은 것이었다. 아직 해명되지 않았으나 분명히 주목할 만한, 인간이 가진 이상한 힘의 하나이다.
성 메다르에서 발생한 기적의 과학적 해명을 단순히 방기하는 것은 학문 그 자체를 중지함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당면한 문제는 이른바 '회의론자'의 입장에서 수박 겉핥기식의 설명으로 납득시키려는 태도를 삼가는 것이다.
이상의 글을 읽어보면 알 수 있겠지만, 성 메다르 교회의 기적은 데이비드 흄(David Hume)이나 드 라 콩다민(Charles-Marie de La Condamine) 같은 완고한 회의론자들에 의해서도 목격된 사실이었고, 어떤 법률가의 경우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면서 그 내용의 진실성을 증언하기도 했다. 성 메다르 교회의 기적은 여러 고문서들의 내용으로 보아 분명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리고 성 메다르 교회가 폐쇄된 다음에도 비슷한 기적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결국 이러한 기적들이 프랑수와 드 파리 부신부가 심어놓는 강력한 믿음, 즉 '신의 은총에 의해 그 어떤 병도 치료될 수 있다는' 사람들의 믿음에 의한 것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쇠몽둥이가 턱을 관통한다거나, 옆구리에 창을 꽂는 데도 아무렇지 않았다는 다양한 보고들은 도저히 믿기가 어려울 정도로 황당한 것도 사실이다. 콜린 윌슨의 말처럼 이런 초자연 현상은 "단순한 최면보다도 깊은 것"이다. 그렇지만 이 또한 최면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무의식을 좀 더 깊은 차원까지 각성시킴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하나의 가설을 세우자면, 모든 인간은 의식과 무의식을 갖고 있고, 무의식은 개인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으로 나뉘어 진다. 개인 무의식은 우리가 꿈 속에서 보는 것과 같은 다양한 이미지가 흐르는 공간으로서, 한 인간이 갖고 있는 '기억의 총체'이다. 반면, 집단 무의식은 모든 존재를 연결시켜 놓는 우주의 거대한 '연결망'과 같은 것으로, 모든 초자연현상은 인간의 무의식이 우주(집단 무의식)와 연결되어 어떤 거대한 에너지를 끌어올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역사상 뛰어난 예술가들, 학자들, 사업가들이 꿈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거나(스페인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나 벤젠을 발견한 케쿨레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을 것이다),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오는 영감을 기록하는 습관을 갖고 있었던 것도 이러한 원리에 기반한다고 볼 수 있다.
아직도 최면이 갖고 있는 힘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근래에 일어난 사건들 중 한 가지 실감나는 사례를 제시할 수 있다. 다음은 2011년도 실제로 유럽에서 발생했던 사건이다.
22일 이탈리아는 물론 영국, 독일 등 유럽 지역 언론들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최면술 은행 강도'의 얼굴이 공개되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슈퍼마켓 계산대 점원에게 최면을 건 후, 물건값을 치르는 대신 오히려 현금을 받아 간 '최면술 강도'는 최근 북부 이탈리아에 출몰하고 있다.
얼굴 전체에 수염이 난 이 용의자는 슈퍼마켓은 물론 은행에도 나타나 은행원에게 최면을 건 후 800유로에 달하는 현금을 챙겨 달아난 것으로 확인되었다.
최면에 걸려 자신도 모르게 돈을 건네 준 슈퍼마켓 점원, 은행원 등은 오직 "내 눈을 보세요"라는 용의자의 말을 기억할 뿐이라고 밝혔다. 용의자가 피해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최면을 건 후 돈을 챙긴 후 태연히 달아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이탈리아 경찰의 설명. 또 최면에 걸린 피해자들은 돈을 건네 준 기억이 전혀 없다고 증언하고 있다고.
파문이 커지자, 이탈리아 경찰은 CCTV에 포착된 '최면술 강도'의 얼굴 사진을 공개했다. 전례를 찾기 힘든 방법으로 범죄 행각을 저지르고 있는 용의자는 북부 아프리카, 인도계 남성으로 추측되고 있다.
(사진 : 최면술을 이용해 강도 행각을 벌이고 있는 용의자의 모습 / CCTV 촬영 사진)
사실 최면이 갖고 있는 힘을 이용하여 일어난 범죄는 역사적으로 그 사례가 결코 적지 않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1919년 5월, 넬슨 넬슨(Nelson Nelson, 본명은 Nelson Lintott)이라는 이름의 최면술사가 여성 113명을 성폭행한 죄목으로 재판을 받았다. 이 사건이 기묘한 점은 그가 성폭행을 하는데 동원된 것이 최면술이라는 것이다. 그는 일종의 정신건강원을 차리고 흡연, 불안, 우울증 등을 치료한다고 하여 여성들을 모으고 최면을 건 다음 자신의 욕망을 채웠다. 57세의 그가 최면술을 배운 것은 남아프리카로 알려져 있으며, 그 이전까지는 갖가지 직업을 전전하며 생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범죄 행위를 사진을 통해 기록하였고 결국 이를 몰래 훔쳐본 한 종업원에 의해 잡히게 되었다. 그의 손님이었던 113명은 자신들이 최면상태에서 겪은 끔찍한 사건 때문에 극도로 놀라고 분노했다고 한다.
2) 1934년 프란츠 발터(Franz Walter)라는 최면술사는 같은 기차에 탄 여성을 단지 손으로 만지는 것만으로 최면에 걸고,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강간, 그 후 자신을 위해 '매춘부'로 일할 것을 명령 받았다. 또한 그녀에게 명령을 내려 그녀의 남편을 살해하도록 지시하였으나 이를 거부, 두 차례의 시도 끝에 실패로 끝나자 자살할 것을 명했다고 한다. 지나가던 행인에 의해 구조된 그녀는 이러한 암시에 대해 침묵할 것을 명령받아 진상을 알아내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노력 끝에 진상이 밝혀져 프란츠 발터는 10년형을 선고받았다.
3) 1985년 미뉴엘이(Minuel)라는 포르투갈인은 최면을 통해 여러 희생자들에게서 그들이 평생동안 모은 돈을 뺏어왔다고 한다. 희생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의 최면에 걸리면 온 몸에 한기가 들면서 마음으로는 거부해도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돈을 바쳐야만 했다고 진술했다.
사실 최면이 갖고 있는 힘에 대해서는 이미 미국 정부에 의해 오래 전에 밝혀졌다. 1950~60년대 캐나다 맥길대학과 CIA가 'MKUltra'고 명명한 세뇌 실험을 연구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직까지 주류 학계에서는 최면을 겨우 순간의 암시 작용에 불과한 것 즈음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이상의 사례들을 종합해 보면 고도로 숙련된 최면술사는 인간의 의식 자체를 지배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은 모든 인간이 적절히 노력만 하면, 자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 원하는 일들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실제로 일부 심리학자는 이러한 아이디어에 착안하여, 실험자들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연구들을 해왔다.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 앨렌 랭커(Ellen Langer) 교수는 여러 호텔의 청소부 84명의 건강 상태를 조사해보았고, 그들 대부분이 과체중인데다가 배가 볼록 나오고 혈압도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후 랭거 교수는 그들에게 15분간 시트를 가는 데만 40칼로리가 소모되고, 진공청소기를 들고 15분간 청소하면 50칼로리가 더 빠져나가며, 방 하나를 청 하나를 청소하는 것은 10분 운동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는 것을 설명해주었다. 한달 후 이 설명을 들은 청소부들의 건강을 검진해보았더니, 불록 나왔던 배가 쑥 들어가고 삼중턱도 사라졌다. 혈압도 떨어졌다. 그들이 따로 운동을 한 건 절대 아니었다. 청소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살이 빠져나간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니 실제로 살이 빠져나갔던 것이다.
뉴욕 대학의 피터 골비처(Peter Gollwitzer)와 독일의 심리학자 베로니카 브란트스타터(Veronika Brandstatter) 교수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에세이를 쓰겠다고 구체적으로 실행 과정을 상상한 학생들의 경우 평균 2.3일 만에 에세이를 완성한데 비해, 12월 26일까지 쓰겠다는 목표만 정해놓은 학생들은 평균 7.7일 걸려 에세이를 완성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게다가 과정을 구체적으로 그린 학생들의 경우 75%가 에세이를 제출한 반면, 그렇지 않은 그룹의 경우 32%만 에세이를 제출했다. 즉, 실행과정을 구체적으로 그릴수록 이미지도 생생해지고, 목표를 이룰 확률도 높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적인 명연설가였던 존 F. 케네디는 대중연설이 계획된 전날은 잠자리에 들기 전 반드시 상상 속에서 연설을 하고 청중들의 환호하는 모습, 자신이 취해야 할 제스처, 미소, 목소리 톤까지 구체적으로 그렸다.
그러니 우리는 본문의 내용을 통해 아주 중요한 사실을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누구나 최면을 통해 자기가 원하는 모습을 형성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날씬한 이미지를 상상하면 날씬해지고, 똑똑한 이미지를 상상하면 똑똑해지고, 성공한 이미지를 상상하면 성공하게 된다.
심리학 실험들에서 들어난 바와 같이, 무의식은 '언어'가 아니라 '이미지'로서 정보를 받아들인다. 따라서 잘못된 습관(과식, 흡연, 게임중독, 자기비하, 시간낭비 등)을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반대되는 이미지를 꾸준히 상상하는 것이다. 무의식에 어떤 정보를 입력하는 것은 겉으로 들어나지만 않지만 그 효과만큼은 충분히 실제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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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점은 콜린 윌슨이 그동안 까뮈나 사르트르, 하이데거 등의 실존주의자들이 주장했던 삶의 무의미함을 거부하고, '긍정적 실존주의(positive existentialism)'라고 부를만한 역동적인 실존주의 사상을 정립했다는 것이다. 퀘이커교를 만든 조지 폭스, 신비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 은둔의 성자 라마 크리슈나를 예로, 그는 적절한 훈련을 통해 누구나 상위의 '영적 단계'에 도달할 수 있으며, 새로운 의식 상태에 진입하게 되면 더 이상 과거에 자신을 구속했던 문제들로 괴로워하지 않게 된다고 주장했다. 생기주의(vitalism)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새로운 의식 상태에서 생명의 에너지는 영원해 보이며, 활기를 띄게 된다. 다른 책들에서 그는 의식의 단계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서술한 바 있는데, 그가 저술한 <풀리지 않는 세계의 불가사의(Unsolved Mysteries)>라는 책에도 그런 내용이 나온다.
이 책에서 그는 최면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인간의 무의식 속에 여러가지 층이 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누구든지 전문을 읽어보기를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간결하면서도 인간의 의식에 대한 매우 중요한 사실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1890년 5월 15일 토머스 재이 허드슨이라는 미국의 한 신문편집자는 자기가 계속 약 500명의 사람들을 치료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단지 두 경우에 실패했는데, 이 환자들은 이상하게도 그가 치료를 해주겠다고 미리 알린 사람들이었다. 이 사실은 허드슨이 믿기에 주관적 정신의 또 다른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주관적 정신의 힘은 자의식 없이 자연발생적으로 작용을 했어야 했다. 그것에 자의식이 가해지면, 마치 선생이 어깨 너머로 글을 쓰는 것을 볼 때의 어린 학생들의 손처럼, 당장 얼어붙는다. 이것은 또한 회의론자들에게 시험을 받을 때 '영매들'이 힘을 바휘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것은 마치 군중이 운집한 광장에서 성행위를 하는 것과 같다.
우리에게 두가지 정신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힘은 서로의 방해를 받는 경향이 있다. 1870년대에 칼 핸슨이라는 무대 최면술사는 극적인 트릭을 보여주기를 좋아했다. 그는 최면에 걸린 사람에게 판자처럼 딱딱해질 것이라 말했다. 그 사람은 머리는 한쪽의자, 발목은 다른 의자에 두고 누웠다. 그런데 몇사람이 그의 배 위에 앚거나 서 있어도 몸의 중앙이 조금도 굽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객관적 정신은 잠이 들어, 최면술사가 '객관적 정신의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보통 '당신'이라는 당신의 몸에게 일어서거나 앉도록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당신'이라는 사람은 흔히 소극적이거나 피로하거라 자신이 없기 때문에, 당신의 명령이 망설이는 목소리로 내려진다. 이럴 때 우리는 자기회의에 의해 허약해진다. 최면술사는 특무상사와 같은 명령을 내리는데, 여기에는 주관적 정신의 힘을 얻어주는 효과가 담겨있다. 분명히 이것은 만약 당신이 똑같은 자신을 가지고 명령을 내릴 수 있다면, 당신도 또한 기적적인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경우 어찌하여 자신 있는 사람들이 기적을 이룰 수 없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이 주관적 정신보다 현실에 대처하는 의식적인 자신, 즉 객관적인 정신을 보다 개발했기 때문이었다. 천재 ㅡ 그리고 기적은 거의 두 정신의 중간접점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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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실존주의 창시자 중 한명인 사르트르의 인간존재에 대한 전체적인 철학은 '구역질'이 인간의 실재 ㅡ 머리를 손질한 아름다운 여인의 근본적인 진리라는 잘못된 생각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철학은 어니스트 허밍웨이에서부터 알베르트 카뮈, 그레이엄 그린, 그리고 새뮤엘 베커트에 이르는 현대문학의 가장 훌륭한 작가들에 의해 공감을 받고 있다. 그것은 현대철학과 현대문명을 지배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오해임을 알 수 있다. 구역질은 현실의 모습이 아니며, 두통처럼 하찮은 것이고 또 그것다 이상하게도 비슷하다. 만약 사르트르가 오른쪽과 왼쪽의 뇌(* 역주: 언어와 논리영역인좌뇌와 이미지와 감성영역인 우뇌를 지칭)에 대해 알았더라면, 그는 구역질의 중요성을 너무나 과장하고 있었음을 인정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어디까지나 왼쪽 뇌의 의식 속에 있는 '소외감'이 인간 조건의 현실적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을 납득할 수가 있다면, 즉갖거으로 엄청나게 증대된 낙천주의와 생명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에서 또 다른 중요한 추론을 할 수 있다. 최면은 우리가 보아왔듯이, 근본적으로 암시이다. 최면술사의 암시(눈꺼풀이 무거워진다...)는 왼쪽 뇌의 의식 속에 사로잡히게 하는 효력을 지니고 있다. 권태와 비관주의는 이와 같은 효력의 결과이다. 그러나 사르트르처럼 인생은 무의미하고 '인간은 쓸모없는 열정'이라 믿는다면, 영원히 부정적인 자기 암시 상태에 있게 되며, 왼쪽 뇌의 인식 속에 빠져 있다는 것이 정상적인 인식방식이 될 것이다. 따라서 '구역질'은 일종의 자기 성취의 예언이 된다. 왼쪽 뇌의 의식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매우 나쁜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규범이라고 받아들인다면 열 배나 더 나쁜 것이 된다. 반면에 모든 뇌의 의식이 규범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왼쪽 뇌의 의식에 사로잡힌 상태는 우발적인 두통과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퓌세기르가 발견한 최면에 대한 참다운 중요성이 있다. 그것은 인간 정신에 관한 문제점을 야기시킨 이상한 예외적인 사실에 대한 인식이었다. 19세기에 있어서의 최면에 대한 전적인 무시는 이런 문제를 직면하기에는 너무나 불안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문제를 무시하고, 인간의 인식에 대한 낡은 상식적 견해에 집착하는 편이 보다 편안했다. 이제 우리는 최면의 실체는 인정하고(아직도 최면을 속임수라고 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그러면서도 그것의 관련성을 파악하지 못한 재미있는 갈림길에 서 있다. 이런 것들이 모든 고등학교 학생에 의해 마침내 파악되고 당연한 것으로 인정될 때, 오늘날 무의식적 정신이나 어린시절의 에로티시즘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듯이, 인간은 규명하지 못한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코자 하는 항해를 시작할 준비가 갖추어질 것이다.
결국 콜린 윌슨이 제창한 신실존주의(Neo Existentialism)는 서구적 버전의 자아찾기이며, 그 궁극적 결론은 신비주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불교나 힌두교와 같은 동양 종교를 서구 철학과 결합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아웃사이더들의 비일상적 의식상태를 연구한 <아웃사이더>가 세계적인 호평을 받은 반면, 초자연현상이나 연쇄살인마의 심리 등 또 다른 의미의 비일상적인 인간의 의식상태를 연구한 그의 다른 저작들이 평론가들의 악평을 받은 것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윌슨은 1950년대부터 그가 죽을 때까지 언제나 동일한 문제를 다뤄왔을 뿐이다. 그것은 바로 "삶은 의미는 무엇인가?" 라는 심오한 질문이며, 이와 함께 따라오는 "아웃사이더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인 것이다.
윌슨에게 있어 초자연현상, 오컬트, 불가사의, 폴터가이스트, 연쇄살인, 프리메이슨 등은 그 자체로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들이 아니라, 실존에 접근하기 위해 끼얹을 수 있는 양념에 불과했다. 그는 오히려 이런 주제들에 흥미조로 귀를 기울이는 가벼운 사람들을 경멸하는 편이었다. 타블로이드 잡지나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모론자들이 단지 재미를 위해서 이런 주제들에 접근하곤 한다. 반면, 아웃사이더들에 있어 이런 주제들이 유의미한 것은 어디까지나 "미스테리 속에 진실이 있다"는 확고한 신념 때문이다.
따라서 심령과학의 옹호자라는 그릇된 비난을 받으면서도, 지난 50년동안 이 분야에 관련된 책을 150권 넘게 써온 콜린 윌슨은 진실로 대단한 일을 해온 것이었다. 그는 아직 개척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을 답사하는 과학자였으며, 철학자였고, 시대를 앞서가는 선구자였다. 윤회 현상을 연구한 버지니아 대학의 이안 스티븐슨 교수가 자신의 생애에는 연구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리란 것을 직감했듯이, 윌슨도 다른 천재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연구가 후세에나 알려질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2006년도에 그가 영국의 <가디언>지와 한 인터뷰를 보면 이런 생각이 여실히 들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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