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내각의 역대 전쟁 범죄 인정 사례: 고노 담화 (1993), 무라야마 담화 (1995), 김대중 오부치 게이조 공동선언 (1998), 고이즈미 담화 (2005), 간 담화 (2010)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
今世紀の日韓両国関係を回顧し、我が国が過去の一時期韓国国民に対し植民地支配により多大の損害と苦痛を与えたという歴史的事実を謙虚に受けとめ、これに対し、痛切な反省と心からのお詫びを述べた。
기존까지는 구두로만 언급되었던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사죄가 한일간 공식 합의 문서에 명시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일본은 1995년 8월 15일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의 '전후 50주년 특별담화'를 기초로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에서의 사죄'를 문서화했다.[1]
무라야마 담화는 사회당의 무라야마 전 총리가 ‘아시아 제국(여러 나라)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사과했고,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자민당의 오부치 전 총리가 대한민국을 지칭해 ‘한국 국민’을 대상으로 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공동선언문 부속문서로 ▲정상회담 연 1회 이상 실시 ▲대북정책 공조 ▲민관투자촉진협의회 개최 ▲청소년 교류 확대 등 5개 분야 43개 항목의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위한 행동계획'도 채택했다. 아울러 한일안보협력, 일본 수출입은행의 차관 제공, 일본 대중문화 개방, 한국 공과대학 학부 유학생의 일본 파견 등을 약속했다.
이것을 근거로 1999년부터 '한일공동이공계학부유학' 장학생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2007년 한일 양국 합의에 따라 2019년부터 '한일 공동 고등교육 유학생 교류사업'으로 개편되었다.
무라야마 담화는 사회당의 무라야마 전 총리가 ‘아시아 제국(여러 나라)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사과했고,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자민당의 오부치 전 총리가 대한민국을 지칭해 ‘한국 국민’을 대상으로 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공동선언문 부속문서로 ▲정상회담 연 1회 이상 실시 ▲대북정책 공조 ▲민관투자촉진협의회 개최 ▲청소년 교류 확대 등 5개 분야 43개 항목의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위한 행동계획'도 채택했다. 아울러 한일안보협력, 일본 수출입은행의 차관 제공, 일본 대중문화 개방, 한국 공과대학 학부 유학생의 일본 파견 등을 약속했다.
이것을 근거로 1999년부터 '한일공동이공계학부유학' 장학생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2007년 한일 양국 합의에 따라 2019년부터 '한일 공동 고등교육 유학생 교류사업'으로 개편되었다.
공동선언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이종찬 광복회 회장은 2023년 3월 할아버지인 독립운동가 우당(友堂) 이회영 선생의 기념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할아버지가 일본의 손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도 고초를 당하는 등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 일본에 본능적인 적대감 같은 것이 있다"면서도, 한국과 일본이 견원지간을 풀지 않으면 동북아의 지속적 불안 요소가 된다며 한일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후임자들이 발전시켰어야 했는데 다 헝클어 놓았다고 말했다. 일본의 과거사 사과에 대해서는 "우리는 계속 사과를 하라고 한다. 그러니 일본에선 '불가역적인 사과', '이번이 마지막 사과' 이런 얘기가 나온다. 이런 사과는 안 받는 게 낫지 않나. 옆구리 찔러 자꾸 받으면 뭐하나. 가해자의 사과도 중요하지만 피해자의 용서도 중요하다고 본다.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박물관엔 '용서한다, 그러나 결코 잊지는 않는다(forgive but never forget)'라고 쓰여 있다. 가장 무서운 말이다. 그 말을 일본에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종찬이 윤석열 정부의 대일인식에 대해 쓴소리도 여러차례 한 것을 고려하면 ##, 양국이 서로 끌려다니거나 양보해주기만 바라지 말고 진짜 원한다면 감정적 싸움을 넘어 화합할 의지부터 갖춰야 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1993년 |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인정과 사죄 | |
1995년 | 일본의 전쟁범죄 인정과 식민지 지배 사죄 | |
1998년 | 식민지 지배의 가해책임 인정과 식민지 지배 사죄 | |
2005년 | 무라야마 담화 재확인 및 계승의지 천명 | |
2010년 | 한일병합의 강제성, 식민지 지배의 폭력성에 대해 인정과 사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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