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쟁과 베스트팔렌 조약의 최대 수혜국이자 나폴레옹 제국이 존재했던 프랑스의 중세시절 영향은 지금보다 훨씬 컸다; 영국 왕실이 썼던 프랑스어; 유럽 왕실이 썼던 프랑스어; 국제외교에서 위상이 높았던 프랑스어; 옥스브리드보다 위상이 높았던 파리대학교에서 보듯, 중세시대의 문화적 갑은 프랑스였다
1970년에 68 운동으로 해체되기 전까지 파리 대학교는 유럽의 초일류 대학이었으며 특히 중세에는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최고의 대학이었다. 가령 13세기 말까지 정식 신학부는 파리 대학이 독점했는데 이를 유지하기 위해 교황들은 다른 대학들의 정식 신학부 개설을 반대했다. 파리 대학교의 박사 학위는 볼로냐 대학교와 함께 ius ubique docendi(보편적인 박사 권리)라고 하여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으며 심지어 옥스브리지조차도 이 권리는 가지지 못했다.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