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남 - 옛 노트에서 / 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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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 품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있었던가
바람이 풀밭을 스치면
풀밭의 그 수런댐으로 나는
이 세계 바깥까지
얼마나 길게 투명한 개울을
만들 수 있었던가
물 위에 뜨던 그 많은 빛들,
좇아서
긴 시간을 견디어 여기까지 내려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그때는 내 품에 또한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모서리들이
옹색하게 살았던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래 그 옆에서 숨죽일 무렵
이 시는 그때(과거)/지금(현재), 거기(과거)/ 여기(현재)가 대비되어 있다. 옛 노트를 보며 과거를 회상한다. 과거 '나'는 어땠는지 살펴 보자.
내 품에는 많은 빛들이 있었다.
바람이 풀밭을 스치면 그 수런댐으로 이 세계 바깥까지 길게 투명한 개울을 만들 수 있었다
많은 그리움의 모서리들이 옹색하게 살았다. 이런 내용을 설의법의 형식을 빌어 영탄법으로 쓰고 있다. 과거의 자신에 대해 놀라기도 하고, 회한에 젖기도 하는 것이다.
먼저 1번의 빛과 2번의 개울은 별개의 사물이 아니다. '물 위에 뜨던 그 많은 빛'으로 보아 강물에 쏟아지던 빛으로 보면 되겠다. 개울이 넓고 깊은 만큼 반짝이는 빛도 많을 것이다. 빛은 꿈과 이상, 희망, 아름다움, 설렘을 뜻한다. 그것은 내가 가야할 길을 비추는 것이다. 그만큼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윤동주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고 서시에 썼다. 이 시에서는 풀밭에 이는 바람이다. 잎새에 이는 바람처럼 작고 여린 바람이다. 그 정도의 자극만 있어도 이 세상, 아니 우주를 채울만큼 웅대한 개울을 만들수 있다. 젊은 시절의
무모함과 열정을 드러낸 시구이다. 세번 째 그리움의 모서리들의 의미는 그리움을 시각화한 것으로 그리움이 모가 난 것처럼 가슴을 찔러 가슴앓이했다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과거가 밝고 깨끗하고 투명하고 아름다웠던 것만은 아니고 여러 아픔으로 힘들기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움을 반드시 사람으로만 한정시킬 필요는 없겠다. 미지에 대한 동경, 선망도 포함된다.
그 결과가 '지금'의 '나'다. 이제 그것을 볼 차례다. 서술적으로는 앵두가 익을 무렵,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그 옆에서 숨죽일 무렵이라고 했다. 이제 내 안에 빛은 사라지고, 길고 투명한 개울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1연으로 알 수 있다. 속세의 때가 묻고, 가슴에 찬란한 빛도 그리워하는 사람과 사물, 장소도 없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거치면서 모서리가 닳아져 둥근 '앵두가 익는' 성숙의 단계에 이르렀다. 앵두처럼 작고 소박한 것이나마 이루었고, 그것이 잘 이루어지도록 조심하고 감사한다. '그 옆에서 숨죽일 무렵'은 원대하고 무모했던 청춘의 모습이 아니다. 하지만 화자는 지금의 모습에 충분히 감사하고 있다. 이 시의 장점을 과거나 현재 어느 한쪽이 더 낫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는 그때대로, 지금은 지금대로 삶을 긍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순수하고 열정이 넘쳤던 젊은 날, 세상의 쓴 맛을 알지만 소박한 삶에 만족하는 지금의 대비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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