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록펠러와 일본

https://ja.wikipedia.org/wiki/%E3%83%87%E3%82%A4%E3%83%B4%E3%82%A3%E3%83%83%E3%83%89%E3%83%BB%E3%83%AD%E3%83%83%E3%82%AF%E3%83%95%E3%82%A7%E3%83%A9%E3%83%BC

 

 日本との関係

親日家として知られる[9]。

1972年(昭和47年)、デイビッド・ロックフェラーはオランダ王室にビルダーバーグ会議への日本の参加を打診したが断られたため、ズビグネフ・ブレジンスキーに日本が加わる会議の創設を提案した。宮沢喜一、大来佐武郎らを招待した勉強会が開催され、翌年の1973年10月に「三極委員会」が誕生した[13]。

1978年(昭和53年)に日本文化を伝える非営利団体「ジャパン・ソサエティー」の名誉会長に就任[10]。

1988年(昭和63年)の創設時から1990年(平成2年)まで高松宮殿下記念世界文化賞の国際顧問を務め、その後名誉顧問に転じた[10]。

1989年にロックフェラー家がロックフェラーセンターを三菱地所に売却した際、米国民から批判が巻き起こったが、デイヴィッドがその矢面に立った[9]。

1991年(平成3年)には勲一等瑞宝章を受勲した[10]。

1994年(平成6年)に明仁天皇(現明仁上皇)がニューヨークを訪問した際には自邸に招待した[9]。

2007年(平成19年)に11月に来日、回想録(日本語版)の出版記念会が都内のホテルで催され、出版記念サイン会がMoMA Design Storeにて催された[14]。デイビッド・ロックフェラーの来日はシティグループがサブプライム問題で大きな損失を被ったことと関係があるとする報道が見られた[15]。

新生銀行の社外取締役を勤めた[16]。 




일본과의 관계

친일가로 알려지다[9].

1972년(쇼와 47년), 데이비드 록펠러는 네덜란드 왕실에 빌더버그 회의에 일본의 참가를 타진했지만 거절당하자 즈비그네프 브레진스키에게 일본이 참가하는 회의의 창설을 제안했다. 미야자와 기이치, 다이키 사타케로등을 초대한 스터디 그룹이 개최되어, 다음 해인 1973년 10월에 「삼극 위원회」가 탄생했다[13].

1978년(쇼와 53년)에 일본 문화를 전하는 비영리 단체 「재팬·소사이어티」의 명예 회장에 취임[10].

1988년(쇼와 63년)의 창설시부터 1990년(헤이세이 2년)까지 타카마츠노미야 전하 기념 세계 문화상의 국제 고문을 맡아, 그 후 명예 고문으로 바뀌었다[10].

1989년에 록펠러 가문이 록펠러 센터를 미츠비시 토지에 매각했을 때, 미국민으로부터 비판이 일어났지만, 데이비드가 그 정면에 섰다[9].

1991년(헤이세이 3년)에는 훈1등 서보장을 수훈했다[10].

1994년(헤이세이 6년)에 아키히토 천황(현 아키히토 상황)이 뉴욕을 방문했을 때는 자택에 초대했다[9].

2007년(헤세이 19년)에 11월에 일본 방문, 회상록(일본어판)의 출판 기념회가 도내의 호텔에서 개최되어 출판 기념 사인회가 MoMA Design Store에서 개최되었다[14]. 데이비드·록펠러의 일본 방문은 시티 그룹이 서브프라임 문제로 큰 손실을 입은 것과 관계가 있다는 보도가 보였다[15].

신생 은행의 사외 이사를 지냈다[16].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