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평론가 Yoshihiro Yonezawa; 만화계의 다치바나 다카시였던거야?
https://en.wikipedia.org/wiki/Yoshihiro_Yonezawa
Yoshihiro Yonezawa
Yoshihiro Yonezawa | |
---|---|
Born | March 21, 1953 Kumamoto, Kumamoto, Japan |
Died | October 1, 2006 (aged 53) Shibuya, Tokyo, Japan |
Occupation | manga critic & Comiket co-founder and president |
Nationality | Japanese |
Subject | Manga |
Spouse | Eiko Yonezawa |
Yoshihiro Yonezawa (米澤 嘉博, Yonezawa Yoshihiro, March 21, 1953 – October 1, 2006) was a Japanese manga critic and author. He is also known for being Comiket's co-founder and president. He died of lung cancer at 53. He won the 2007 Seiun Award in the special category and 2010 Tezuka Osamu Cultural Prize Special Award.
Biography
Born in Kumamoto, Japan, on March 21, 1953,[1] Yoshihiro Yonezawa began drawing parodies of his favourite manga characters with the encouragement of his father when he was a child.[2] As a fan of Osamu Tezuka and Shigeru Mizuki he would start dōjin activities in middle school, releasing several works under the circle "Azu Manga Research Club." In 1969, Yonezawa joined the staff of Kyukon and met SF writer Shinji Kajio at age 16.[3] Yonezawa would go on to attend Kumamoto Prefectural Kumamoto High School where he participated in anti-war student activism, throwing molotov cocktails while protesting the stationing of American nuclear aircraft carriers at USFA Sasebo and getting detained by the police. He began criticizing manga while he was studying engineering at Meiji University,[1] as part of the group Meikyu.[4] Yonezawa has said that in the early 1970s, mostly mainstream manga were published, as there were few manga magazines at that time.[5] COM, a manga magazine with a reputation for publishing experimental manga had closed in 1972, and Yonezawa believed that by 1973 and 1974, it was very difficult to publish "unusual" works in anything other than "underground" zines devoted to dōjinshi.[6] To explore the potential of the medium,[5] he co-founded Comiket (The Comic Market) in 1975 with Harada Teruo (chairman) and Aniwa Jun, who were university students.[6][7] Comiket is a bi-annual, 3-day event where dōjinshi manga is brought and traded. Yonezawa's publication of The History of Post War Manga Trilogy in 1980 showed his devotion to reviewing and chronicling manga.[8] He was a judge for the Tezuka Osamu Cultural Prize.[9] In 1999, he received the 21st Japan Society of Publishing Studies Award for Bessatsu Taiyo: Hakkinbon.[4] Since 1999, he regularly reviewed manga on his column, "Yoshihiro Yonezawa's Commentary on Contemporary Mangas [sic]", in Media Factory's Monthly Comic Flapper until October 2006.[10] He was posthumously awarded the 2007 Seiun Award in the special category,[11][12] and the special Tezuka Osamu Cultural Prize in 2010.[13]
He was hospitalised on September 30, 2006,[9] and on October 1, 2006, Yonezawa died of lung cancer at age 53.[8] On the last day of Comiket 71 which was held from December 29 to 31, 2006, as announced in the event's catalogue, a thirty seconds of silence was held on 15:59 just before the announcement of closing.
Yoshihiro Yonezawa Memorial Library
In 2009, Meiji University opened a library housing dōjinshi, manga- and anime-related circle newsletters, as well as commercially published manga and manga magazines. The collection, which at present largely consists of Yonezawa's personal collection, donated by his widow, has been named “Yoshihiro Yonezawa Memorial Library of Manga and Subcultures.” The library is located at the university's Surugadai campus. The core collection comprises Yonezawa's dōjinshi collection, consisting of 4,137 boxes,[14] or over 140,000 items.[15] The library will also incorporate the collection of Tsuguo Iwata.[14] The construction of the new library complex is expected to be complete in 2015.[16]
Works
- Yonezawa, Yoshihiro (1980) Sengō SF Mangashi (戦後SFマンガ史, lit. "A History of Postwar SF Manga") Tokyo: Shinpyōsha
- Yonezawa, Yoshihiro (1980) Sengō Shōjo Mangashi (戦後少女マンガ史, lit. "A History of Postwar Girls' Manga") Tokyo : Shinpyōsha
- Yonezawa, Yoshihiro (1981) Sengō Gyaggu Mangashi (戦後ギャグマンガ史, lit. "A History of Postwar Gag Manga") Tokyo: Shinpyōsha
- Yonezawa, Yoshihiro, ed. (1991) Kodomo no Shōwa-shi: Shōjo manga no sekai I, Shōwa 20 nen – 37 nen (子供の昭和史──少女マンガの世界 I 昭和20年〜37年 "A Children's History of Showa-Era Japan: The World of Shōjo Manga I, 1945–1962") Bessatsu Taiyō series. Tokyo: Heibonsha
- Yonezawa, Yoshihiro, ed. (1991) Kodomo no Shōwa-shi: Shōjo manga no sekai II, Shōwa 38 nen – 64 nen (子供の昭和史──少女マンガの世界 II 昭和38年〜64年 "A Children's History of Showa-Era Japan: The World of Shōjo Manga II, 1963–1989") Bessatsu Taiyō series. Tokyo: Heibonsha
- Yonezawa, Yoshihiro (1997) Tezuka Osamu manga taizen : kodomo no shōwashi (手塚治虫マンガ大全: 子どもの昭和史) Tokyo : Heibonsha ISBN 4-582-94291-1
- Yonezawa, Yoshihiro (1999) アメリカB級グッズ道 "The World of Collection B-Class American Memorabilia"
- Yonezawa, Yoshihiro (2001) Sengō ero manga-shi (戦後エロマンガ史, lit. "A History of Postwar ero manga") Tokio: Seirinkogeisha ISBN 978-4883792580
- Yonezawa, Yoshihiro (2002) 戦後野球マンガ史 "The History of Post War Baseball Manga" Heibonsha
- Yonezawa, Yoshihiro (2002) 藤子不二雄論―Fと(A)の方程式 "On Fujiko Fujio ~ The Formula of F and (A)"
- Yonezawa, Yoshihiro (2003) The Worldwide Phenomenon of Anime: Past and Present Nipponia 27
- Yonezawa, Yoshihiro (2004) マンガで読む「涙」の構造 "The Formalism of "Tears" As Depicted In Manga" NHK
- Yonezawa, Yoshihiro (2007) Tezuka Osamu mangaron (手塚治虫マンガ論) Tokyo : Kawade Shobō Shinsha ISBN 978-4-309-26959-7
https://ko.wikipedia.org/wiki/%EC%BD%94%EB%AF%B9%EB%A7%88%EC%BC%93
코믹마켓(일본어: コミックマーケット, 영어: Comic Market), 일명 코미케(コミケ) 또는 코미켓(コミケット)은 일본 도쿄도 아리아케에서 매년 두 번 개최되는 세계 최대의 동인지 즉매회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만화·애니메이션 행사 중 하나이다.[2] 1975년 12월 21일 32개 참가 서클과 600여 명의 참가자들로 시작되어,[3] 이후 참가자들이 50만 명 이상으로 증가했다.[2]
코믹마켓
코믹마켓 | |
---|---|
상태 | 진행 중 |
장소 | 도쿄 빅 사이트 |
지역 | 도쿄도 고토구 아리아케 |
국가 | 일본 |
주최자 | 코믹마켓 준비회(コミックマーケット準備会) |
참석자수 | 55만여 명(C91)[1] |
공식 웹사이트 | http://www.comiket.co.jp/ |
동인 |
---|
동인 |
동인 - 동인지 |
동인 용어 |
동인활동 |
동인지 즉매회 |
동인 서클 |
동인 상점 - 데지 동인 |
자비출판 - 동인지 인쇄소 |
동인 창작 |
자유 제작 애니메이션 - 일본의 웹 애니메이션 - 웹 만화 (웹툰) |
동인 소프트웨어 - 동인 게임 |
동인 음악 - 음악계 동인 |
매드 무비 |
동인 문화 |
2차적저작물 - 아마추어 - 동인의 동인 |
패러디 - 오마주 |
커플링 - 백합 - 야오이 |
오타쿠 - 아키바계 - 부녀자 |
모에 - 코스프레 |
코믹마켓(일본어: コミックマーケット, 영어: Comic Market), 일명 코미케(コミケ) 또는 코미켓(コミケット)은 일본 도쿄도 아리아케에서 매년 두 번 개최되는 세계 최대의 동인지 즉매회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만화·애니메이션 행사 중 하나이다.[2] 1975년 12월 21일 32개 참가 서클과 600여 명의 참가자들로 시작되어,[3] 이후 참가자들이 50만 명 이상으로 증가했다.[2]
개요
코믹마켓은 1975년 요네자와 요시히로(米澤嘉博)가 메이지 대학 재학 중 친구들과 함께 만들었다. 그들은 COM 폐간 이후 상업적 수요가 만화계의 주류가 된 상황에서, 만화와 그 잠재력을 탐구해 보기를 원했다.[4][5][6] 코믹마켓이 일본SF대회(日本SF大会)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기도 한다.[7] 코믹마켓의 운영은 코믹마켓 준비회(コミックマーケット準備会)에서 담당하고 있다.
다른 동인행사와 구별되는 코믹마켓 최대의 특징은 장르의 폭이 넓다는 데에 있다. 일반적인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동인지는 물론, 아이돌 그룹이나 고스로리, 코스튬, 자작 액세서리 등을 포함한 대부분의 오타쿠 매체에 폭넓게 반응하고 있다. 단 피규어는 등장하지 않는 편이 많다.
코믹마켓에서 판매되는 상품들은 재발매되지 않아 매우 희귀하기 때문에, 코믹마켓에서 찾을 수 있는 몇몇 상품들은 상점이나 인터넷에서 원가의 10배, 심지어 100배 이상의 가격으로 거래되기도 한다. 행사 종료 후 행사에서 판매된 일부 유명 서클의 물품을 일본 야후! 옥션 등에 올리면 수 배 이상의 프리미엄이 붙어 팔리기도 한다. 코믹마켓 행사장에서 팔 수 있는 동인지의 수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지만, 동인지를 요구하는 고객의 수가 그 판매량을 뛰어넘기 때문에, 이런 프리미엄을 노려 특정 인기 상품을 대량 구매해, 행사 종료 후 가게에서 판매하는 경우 및 그런 동인 물품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인 전매 숍이 등장하기도 한다. 1인당 판매량을 일정 수 이하로 규제하는 방법으로 전매 숍에 대한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다.
개최 일정 및 장소
제1회 코믹마켓을 제외한 이후의 코믹마켓은 제xx회 코믹마켓이라고 부르지 않고, 각각 코믹마켓 xx라고 부르며 이것을 더욱 축약해 Cxx라고 부른다.
매년 나츠코미(일본어: 夏コミ), 후유코미(일본어: 冬コミ)로 나뉘어, 각각 여름인 8월과 겨울인 12월에 개최된다. 나츠코미는 3일 기간으로, 보통 8월 15일 전후의 주말에 개최된다. 후유코미는 2, 3일 정도의 기간으로, 보통 12월 28일에서 31일 사이에 개최된다. 주요 행사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루어지며, 기업 부스는 오후 5시까지 운영된다. 개최 마지막 날에는 1시간 일찍 폐장하여 각각 오후 3시와 4시까지로 앞당겨진다.[8] 행사의 규모로 인해, 코믹마켓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참가자들에게 줄에 서 있는 것을 피하려면 오후에 입장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9] 첫차로 도착한 참가자들은 10시 또는 10시 반에 입장할 때까지 5시간여를 기다려야 한다. 오전 10시에 맞추어 도착한 이들은 입장까지 1시간여를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8]
현재 코믹마켓의 개최 장소는 도쿄도 고토구 오다이바의 아리아케에 있는 컨벤션 센터인 도쿄 빅 사이트이다.
참가자
코믹마켓에서는 판매자와 구매자의 구분이 없이 모두 참가자라고 부른다. 참가자들은 모두 대등하기에 "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념으로부터의 명칭이다.
1982년에는 코믹마켓의 참가자들이 1만 명을 넘지 않았다. 하지만, 1989년에는 10만 명 이상이 참가했다.[10] 2004년 8월의 C66에서는 최초로 참가자들이 50만 명을 넘었다.[11] 2007년의 C72 이후, 참가자들은 나츠코미의 56만 명, 후유코미의 50만 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12][13] 판매를 하지 않는 일반 참가자들은 등록 절차가 없기 때문에, 인원은 행사 당일 도쿄 빅 사이트에 입장한 인원을 어림한 것이다. 많은 참가자들이 하루 동안 참가하지만, 개최 기간 동안 한 번이나 두 번 재입장하는 참가자들도 있다. 한 장소에 극도로 많은 인원이 몰리기 때문에, 여러 통신 회사들이 안테나 시설이 폭주할 것을 대비해 임시 안테나를 설치한다. 인근 호텔, 철도, 버스 회사들도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협조하고 있다.
코믹마켓의 공식 조사에 의하면, 연령별로는 고교생에서 30대 정도가 가장 많고, 보호자를 동반한 미취학 아동부터 70대의 노년층도 참가하고 있다. 서클 참가자는 제1회 코믹마켓부터 지금까지 여성 참가자 쪽이 많았다. 예를 들어, C84에서는 서클 참가자들 중 여성이 57%, 남성이 43%를 점했다. 여성 참가자의 우위가 뒤집어진 적은 없었으나, 최근에는 그 비율이 변하고 있다. 일반 참가자들은 남성의 비율이 높다. C66에서 규슈 대학 조교수 스기야마 아카시(杉山あかし) 주도의 코믹마켓 문화 연구회와 코믹마켓 준비회가 공동으로 조사한 내용에서는 남성이 약간 많을지도 모른다는 결과를 얻었다. C78에서는 일반 참가자들 중 남성이 64.4%, 여성이 35.6%를 점했다. 성별의 비율은 년도에 따라 변화가 크다.[14]
C50부터 개최 장소를 도쿄 빅 사이트로 옮긴 이후 외국인, 특히 중국, 대만, 한국, 프랑스 등 비영어권 참가자가 늘어나, 일부 서클은 줄을 세울 만큼 많은 참가자를 모으기도 한다.
https://www.meiji.ac.jp/manga/korean/yonezawa_lib/message/
메이지 대학장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은 오로지 어린이와 젊은이들만을 위한 새로운 미디어라고 인식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실태는 일본 국내의 폭넓은 세대로부터 지지를 받으면서 이미 역사적인 두께를 쌓아 올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다양성과 함께, 시시때때로 일본의 사회와 세태를 선명하게 비추는 거울로서도 기능해 왔습니다.
덧붙여 최근에는, 일본으로부터 세계로 수출되는 문화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각국에서 일본인과 일본이라는 국가의 이미지 형성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정부 또한 일본의 소프트 파워의 중요한 일익으로서, 그 진흥과 활용을 구가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문화・산업・학술에 걸친 다면적인 중요성을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의 역사와 발전을 명확히
알아보기 위해 필요한 체계적이고 복합적인 자료 수집은 현재 공공 기관에서도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학술적 연구의 대상으로서, 또 문화적 자료로서 차세대에 걸쳐 다면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보존・정리가 시급하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메이지 대학은 국제 일본 학부를 중심으로 이 분야의 연구・교육을 추진하는 것과 동시에, 2009년에는 대학 전체 레벨의
대처로서 세계 최대급의 만화・애니메이션・게임의 아카이브 시설을 설치할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 「메이지대학 도쿄 국제 만화
뮤지엄」(가칭)의 계획은 지금까지 주로 지식층・뜻있는 분들의 개인적인 노력으로 수집・유지되어 온 자료를 각 계층의 협력을 받아
복합적으로 보존하고 연구와 문화적 활용을 위해 널리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동 2009년에는 고 요네자와 요시히로(米沢嘉博) 씨의 장서를 유족으로부터 기증받아, 이를 핵심으로 삼아 만화와 서브컬처
전문 도서관인 「요네자와 요시히로 기념도서관」을 선행시설로 개관하였으며, 2010년부터는 고(故) 나이키 도시오(内記稔夫) 씨가
지은 「현대 만화 도서관」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후, 두 시설을 거점으로 하여 만화・애니메이션・게임의 다양한 컬렉션
기증의 수락과 그 정리를 행하면서 이러한 보존・운용의 그릇이 되는 「메이지 대학 도쿄 국제 만화 뮤지엄」(가칭)의 설립 준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각계와의 사회적 제휴 아래, 그리고 국제적인 시야에 서서, 공공적 사명을 담당하는 시설로 실현해 나가겠습니다.
요네자와 에이코 (米沢 英子)
아직 요네자와와 알기 얼마 전 당시 친분이 있었던 만화 수집가 분들과 “옛날 만화 자료관이 있으면 좋겠다. 각자가 갖고 있는 책을 모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등 술자리에서인가 어디에선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일을 이 인사말을 쓰면서 떠올렸습니다. 그 후 요네자와와도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그는 “그건 안될 일이지. 다들 수집가들이니까.”라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1970 년대 중반의 헌책 세계는 만화의 버블 시대로 ‘누구 누구의 B6 판이 얼마에 나갔다’던지, ‘무슨 잡지가 묶음으로 얼마에 팔리고 있다’ 등과 같은 이야기도 오고 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편으로 ‘나잇살 먹어가지고 아직 만화나 보고 있냐’며 야단맞는 시대이기도 했고, 그런 만화에 놀랄만한 가격이 매겨질 만큼 높이 평가도 받는 시대이기도 하여, 저에게 놀라움과 동시에 작은 기쁨을 안겨주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요네자와는 “난 수집가가 아니거든.”이라고 한마디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만화도 많은 읽은 거리 중의 하나였던 것입니다. 그에게는 SF, 영화, 락, 팝송, 연극, 그림 등등 뭐든지 있었습니다. 그래도 역시 만화가 그에게는 가장 친숙한 것이 아니었냐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요네자와 요시히로 기념도서관의 오픈에 있어 먼저 그에게 가장 친숙했던 만화들을 여러분께 가능한 한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이후에는 그의 다른 책들도 순차적으로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대체 어떤 것들이 나올까? 사실 저도 그 전모는 모릅니다. 도서관 운영을 통해 저도 몰랐던 요네자와 요시히로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는 앞으로의 즐거움으로 남겨두겠습니다. “난 수집가가 아니거든”이라고 말했던 오빠(생전 저는 요네자와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그렇게 해도 괜찮죠?
끝으로 본 도서관 실현에 협력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코믹마켓준비회 공동대표 야스다 가호루(安田かほる), 후데타니 요시유키(筆谷芳行), 이치카와 고이치(市川孝一)
요네자와 요시히로라고 하면 세간에서는 코믹마켓준비회 대표 혹은 만화평론가의 인상이 강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의 관심 영역은 만화에 국한되지 않고 서브컬처 전반에 이릅니다. 음악, 영화, SF, 고서, 에로틱·그로테스크·난센스……. 다양한 장르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일을 해 왔습니다. 그러한 업무상의 필요성과 개인적인 취미가 혼연일체가 되어 사후 수천 상자에 이르는 방대한 장서가 남겨진 것입니다. 이번에 요네자와의 컬렉션을 요네자와의 모교이기도 한 메이지대학에 기탁, 기증함으로써 “요네자와 요시히로 기념도서관”이 탄생하였고, 연구자들을 비롯한 다양한 분들이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정립된 것은 요네자와가 길러낸 코믹마켓준비회로서도 매우 기쁠 뿐입니다.
코믹마켓은 동인지라고 하는 미디어에 특화되어 있기는 하나, 가능한 한 자유롭게 새로운 표현과 새로운 작품들을 어필하는 “장소”, 팬들의 활동에 있어 커뮤니케이션의 “장소”,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작품과 만날 수 있는 “장소”으로 삼고자 30 년 이상 지속적인 활동을 해 왔습니다. 한편으로 도서관은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보존하고, 제공하는 “장소”으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고, 또한 새로운 지식과의 만남과 발견의 “장소”이 되었습니다. 이 요네자와 요시히로 기념도서관이라고 하는 “장소”에서도 이러한 새로운 무언가가 탄생되기를 기대해 마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본 도서관 실현에 힘써주신 모리카와 가이치로선생님 외 메이지대학의 선생님들과 관계자 여러분, 그 외에도 협력해 주신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어 깊이 감사 드립니다.
https://ja.wikipedia.org/wiki/%E7%B1%B3%E6%BE%A4%E5%98%89%E5%8D%9A
요네자와 카히로
요네자와 요시히로 요네자와 카히로 | |
---|---|
탄생 | 1953년 3월 21일 일본・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 |
사망 | 2006년 10월 1일 (53세몰) 일본 · 도쿄도 시부야구 |
출신 학교 | 메이지 대학 공학부 (1979년 중퇴) |
직업 | 비평가 , 편집자 , 사업가 |
배우자 | 요네자와 히데코 |
요네자 와 요시히로, 1953년 3월 21일 - 2006년 10월 1일 )는 일본 의 만화 평론가 , 대중문화평론가, 편집자 .
코믹마켓 준비회의 제2대 대표이다. 유한회사 코미켓 이사 사장, 일본 만화학회 이사,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전형 위원, 일본 오타쿠 대상 심사위원 등도 맡았다. 「오타쿠 시텐왕」의 한 사람에게 꼽힌다. 애칭은 미얀 . 명자 에 대해서 호적상은 「요네자와」표기이지만, 평상시는 「요네자와」표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아내의 에이코는 서클 「미궁」이래의 동료. 코믹마켓 준비회 대표 보좌로서 남편과 함께 운영에 관여, 남편의 사후는 준비회 부대표·유한회사 코미켓 사장으로 취임했다. 영자와의 사이에는 1남2녀의 3명의 아이가 있다.
경력 [ 편집 ]
생생한 [ 편집 ]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 출신. 식청 에 근무하던 아버지 아래 남자 2명, 여자 1명의 형제 자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2, 3세 무렵, 처음에는 부모의 권고로 만화 를 읽기 시작하고 초등학생이 되기 전부터 스스로 이웃의 대본 가게 수채에 다니게 되었다. 데즈카 오사무 와 미즈키 시게루 작품의 팬으로, 중학교 시절에 동인 활동을 시작해 동인 서클「아즈 만화 연구회」에 자작의 만화를 다수 발표했다. 구마모토 현립 구마모토 고등학교 시절은 학생운동 에도 참가해, 사세보항 에서의 미군 원자력 항모 의 입항 반대 투쟁에 참가해, 화염병을 던지거나 경찰 에 보도된 적도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마츠자키 신지가 주최하는 SF 서클 ‘규슈 SF 팬 그룹’에 참가해 후 SF 작가 카 지오 마지 와의 교류가 시작된다.
만화 시장과 함께 [ 편집 ]
1972년 , 일랑을 거쳐 메이지 대학 공학부 에 입학해, 상경. 대학의 서클 은 만화연구회에는 속하지 않고, SF 연구회에 소속. 자작의 만화 동인지 를 뒤집어 만화 연구회에 싸움을 팔러 갔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명대 재학 중부터 만화 비평 집단 「미궁」에 참가. 미궁의 동인으로서, 1975년 부터의 코믹 마켓 개최에 참가해, 1980년 (C14)부터 2006년 여름(C70)까지 코믹 마켓 준비회 대표를 맡았다.
1979년부터 1980년에 걸쳐 ' 극화 앨리스 '의 편집장을 맡았다.
또한, 여명기의 코믹 마켓에서 활동하고 있던 만화가 아즈마 히데오 의 팬으로서 1980년대 전반경까지 활동을 실시해, 아시마 토나 미요시에서 「대일본 아즈마 만화 진흥회」를 주재해, 동인지 「아즈마 히데오니 꽃다발을』을 출판. 아즈마 팬에 의한 독립계 출판사 '토라마 서방'에도 참가했다. 또한 아즈마의 ' 부조리 일기 '에 등장하는 가상의 책, 크룸 헤트로장의 '헤로', '후루무마카를 메라'가 실제로 '치카사'에서 제작·간행되었을 때에는 집필 협력도 가 있습니다.
준비회가 독립된 조직이 된 것은 요네자와가 대표가 되고 나서라고 한다. 또한 준비회 자체는 임의단체 이므로 1985년 외부거래 등을 위해 주식회사 코미켓(나중에 유한회사 , 특례유한회사 )을 설립하고 요네자와가 사장을 겸무했다. 이 사이에 코믹마켓은 비약적으로 발전, 규모는 서클수로 100배가 되었다. 또한 매회 발행되는 카탈로그 , 서클 참가자들에게 호소하는 '코미켓 어필', 1994년 부터 시작한 홍보지 'COMIKET PRESS'에서는 반드시 요네자와의 인사가 처음에 오는 흔적이었다.
2006년 2월이 되어 정기검진 으로 폐 에 그림자가 있다고 진단을 받았지만, 정밀검사를 받은 것은 5월 말이 되고 나서였다. 7월에 폐암 의 고지를 받았지만, 신내 등 극소수 이외에는 이 사실은 엎어졌다. 그 8월의 코믹 마켓 70에는 입원처의 병원으로부터 참가해, 주위에는 꽉리 허리 (실은 암이 허리에 전이 하고 있던 것)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그 후, 귀향해 병의 어머니를 훔친 무리도 도와(어머니는 9월 10일 에 사망) 병상이 악화. 9월 30일 , 건강상의 문제를 이유로 준비회 대표의 퇴임을 발표했다. 후임은 공동대표제를 취해 야스다 카호루 · 이부야 요시유키 · 이치카와 타카이치 의 3명. 다음날 10월 1일 오전 4시 40분, 도쿄도 시부야구의 병원에서 폐암을 위해 체거. 향년 53세. 통야·장례는 도쿄도 미나토구의 젠후쿠지 에서 요네자와가와 코믹마켓 준비회 및 유한회사 코미켓의 합동장에서 집행되었다.
2006년 12월 29일 부터 31일 에 걸쳐 개최된 「코믹 마켓 71」에서는, 카탈로그등에서의 사전 고지를 실시한 뒤, 최종일의 종료 아나운스의 직전, 31일의 15시 59분에 장내 방송에 의한 호소에 의해 요네자와 전 대표에게 묵조가 바쳐졌다. 시간이 되면 30초 부족하지만, 시종 시끄러운 회장이 침묵에 싸여 있었다. 또 몰후인 2007년 에는 팬 활동에 의한 공적에 따라 제38회 성운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요네자와의 급속한 상황에서 현 공동 대표로의 체제 이행의 무대 뒤에 대해서는 코믹 마켓 40주년사 「40th COMIC MARKET CHRONICLE」에 게재된 마츠 토모요 에 의한 르포르타주「대표가 대신한 날」에 상세하다.
비평가로서 [ 편집 ]
대학 재학 중부터, 만화 잡지의 편집이나, 라이터 등으로서도 활동하고 있었다. 동인지 『만화신비평체계』의 활동으로 만화평론을 실시한다. 또, 당시 「삼류 극화」라고 칭해진 에로 만화 와의 관계도 깊고, 1979년 에는 편집장의 가메와다 다케 퇴직 후의 「극화 앨리스」잡지의 편집에 「미궁」으로서 더해지고 있다 [1 ] 다음 1980년 폐간 까지 ). 그 후는 『만화기상천외』의 편집자가 되었다.
주요 저서에는 『전후 소녀 만화사』 『전후 SF 만화사』 『전후 개그 만화사』로 구성된 전후 만화사 3부작 등이 있다. 이 3부작의 성공으로, 지금까지 세간적인 인지가 얇은 만화 평론이 주목받아, 요네자와는 만화 평론가로서도 활동하게 되었다. 만화사 관련 저작은 많아, 급작 직전까지 『전후 에로 만화사』를 『액스』지에 연재하고 있었다(미완).
이치카와에 따르면 한 시대 하나의 장르뿐만 아니라 만화 전체를 파악하고 있던 '백과사전 같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또, 코미켓에 참가하고 있던 프로 작가로서 교류가 있었던 만화가 미나모토 타로도, 「 요네자와는 만화의 백과사전이었다. "라고 말했다.
「후지코 후지오론 F와 A의 방정식」으로 2002년 에 제26회 일본 아동 문학 학회상 수상.
또, 만화(그 외)의 큰 콜렉터이면서, 컬렉터에 흔히 흔한 편굴이 없고, 사람에게 좋아해 신용되는 성격이었다. 「별책 태양」으로 구성을 담당한, 일련의 시리즈는, 많은 콜렉터로부터, 책이나 만화의 제공을 아오이지만, 요네자와가 의뢰하면, 평상시는 편굴한 컬렉터에서도, 부담없이 자료를 대출해 주었다고 한다 .
2008년 모교 메이지대학이 요네자와의 장서 일부를 받아들여 만화자료의 기록 보존소로 ‘요네자와 가히로 기념도서관’을 개설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2007년도 사업보고서 「II 사업의 개요」참조), 2009년 10월 31일에 개관했다. 18세 이상이면 학외자도 열람이 가능(유료).
그 기법 [ 편집 ]
요네자와는 자기 주장을 별로 하지 않고, 다른 의견의 소유자도 배제하지 않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코믹마켓에서는 표현에 대한 자유성을 이념으로 내세워 비판자를 배제하지 않는 자세를 강조했다. 또한 표현규제에 대해 일관되게 비판을 하고 있었다. 송문관 재판 에서도 피고인을 유죄로 한 1심의 도쿄지 재판결을 「논리도 없고, 묵직한 것」 「판결문을 잘 읽으면, 3권 분립 은 부정되어 현행의 사법 시스템에 준거해 하지만 헌법 이나 형법 조차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마녀재판」이다」(「팔리는 만화, 기억에 남는 만화」128~129페이지) 등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 그러나 전면 대결의 자세는 취하지 않고, 코믹 마켓의 실무에서는, 성기 의 수정에 대해서, 오히려 솔선해 엄격하게 자주 규제 를 깔게 하는 일면도 있었다. 이것은 만화 시장이라는 '장'의 존속을 중시하고 무리를 피한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1981년 의 코믹 마켓 분열 소동 에서는, 「퓨쟈프로다쿠토」(후의 「COMIC BOX」) 잡지의 취재에 온 사람으로부터 메모 작성 원고를 보여주고, 사실 관계의 정정 외, 미묘하게 자기 친밀한 내용으로 하여 편집부에 보낸다는 대담한 행위에도 나와 있다. 요네자와는 취재측에 무리 강하지 않고, 잡담의 몸으로 자연스럽게 행동했기 때문에 그대로 다녔다고 한다.
취미와 사생활 [ 편집 ]
취미 는 낚시 와 헌책 수집. 좋아하는 것은 담배 와 커피 와 콜라 .
또, 미국의 펄프 매거진 , 미국 만화 , 장난감, SF나 영화 관계 상품등도 수집하고 있어, 「미국 B급 상품도」라고 하는 저서가 있다.
담배에 대해서는 폐암의 고지를 받더라도 입원한 후에도 흡연을 멈추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Dr. 모로 의 만화 등, 코믹 마켓의 카탈로그나 「COMIKET PRESS」에서는, 항상 담배를 부드럽게 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만화 캐릭터 디자인은 아즈마 히데오이다 . 가사나 요리는 스스로 만들지만, 뒷정리는 하지 않았다.
반대로 싫어하는 것이 당근 . 22년간 요네자와가에서는 당근을 샀던 적이 없고, 우연히 사온 것을 보자마자 버렸다. 또 외식으로 당근이 들어가면 어떤 고급점이라도 "이 가게는 속품이다!!"라고 비난했다고 한다.
또, 자신의 외모에 자신을 가지고 있어, 몸 안에 대해서는 「나의 아름다운 얼굴」이 입버릇의 나르시스트 이기도 했다.
아내와 여행을 떠나자 오랜 후각으로 반드시 그 땅의 옛 책방을 찾아 들렀다.
묘소는 2개 있어, 그 중 1개는 가나가와현 가와사키 시 다마구 의 춘추원 . 다른 하나는 현지 구마모토에 존재하지만, 장소는 비공표이다 [2] .
다른 필명 [ 편집 ]
다른 펜네임으로 아시마 슌을 사용하기도 한다(미궁 동인의 ' 아정준 '의 패러디. 원래는 아즈마 히데오 를 평론할 때의 이름 [3] 이었다). 이 필명에 의한 주요 저서, 편서는 「만화 동인지 에트세트라」, 「만화&애니메이션 동인지 핸드북」 등. 그 밖에 사용한 명의는 「아이다다 (전 NHK 의 동명의 인물 과는 무관 [4] )」「쿠보 나카바」「사와히로시」 등.
수상 등 [ 편집 ]
- 제21회(1999 년도 ) 일본 출판 학회 상
- 제26회(2002년) 일본 아동 문학 학회 상 - '후지코 후지오 론 -F와(A)의 방정식'
- 제38회(2007년) 성운상 특별부문
- 제14회(2010년)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특별상 - 만화 연구의 기초 자료의 수집과 평론 활동 등의 폭넓은 업적에 대해
- 제24회(2011년) 대중문학연구상 ( 사오토메 공공 기금) 대중문화부문 - 『전후 에로 만화사』( 아오바야시 공예사 )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에 대해 [ 편집 ]
요네자와가 사망한 이듬해인 2007년도의 데즈카 오사무 문화 상에서, 종래 「큰 공적이 있던 고인」에게 주는 것이 많았던 「특별상」을 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심사위원 중에서 많았다 . 그러나 아사히신문 사내에서 검토한 결과 시상은 배웅되었다. 심사위원의 이시카와 쥰 에 의하면, 「코미케의 판권 ( 저작권 ) 문제가 역시 넥이 되었다」라고 [5] . 대신 2007년 성운상 특별부문을 수상했다.
그 후, 상기의 「요네자와 카히로 기념 도서관」의 개관을 받고, 그 업적이 재검토되게 되어, 2010년에 「만화 연구의 기초 자료의 수집과 평론 활동 등의 폭넓은 업적에 대해서」로서 제14회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특별상을 수상하고 있다 [6] .
저서·편저(요네자와 카히로 명의) [ 편집 ]
단저 [ 편집 ]
- 『전후 소녀 만화사』 신평사 , 1980년 1월, 253페이지, 전국 서지 번호 : 81003669 . 문고판 치 쿠마 서방 치쿠마 문고, 2007년 8월 8일 , 400페이지, ISBN 9784480423580
- 『전후 SF 만화사』 신평사, 1980년 8월, 251페이지, 전국 서지 번호 : 81003668 . 문고판 치 쿠마 서방 치쿠마 문고, 2008년 8월 6일 , 409쪽, ISBN 9784480424198
- 『전후 개그 만화사』 신평사, 1981년 . 문고판 치 쿠마 서방 치쿠마 문고, 2009년 8월 10일
- 「만화 비평 선언」아키 서방 , 1987년 2월, 199쪽, ISBN 4-7505-8702-8
- 『미국 B급 굿즈도』아키라분사 1999년 12월, ISBN 4-7949-4722-4
- 「후지코 후지오 론 F와 A의 방정식」카와데 서방 신사 , 2002년 4월, 325페이지, ISBN
- 『 전후 야구 만화사 데즈카 오사무 가 없는 풍경』
- 「만화로 읽는 「눈물」의 구조」 일본 방송 출판 협회· 생활인 신서, 2004년 2월, 222페이지, ISBN 4-14-088097-X
- '팔리는 만화, 기억에 남는 만화' 미디어 팩토리 , 2007년 2월, 223페이지, ISBN 978-4-8401-1802-6
- 「데즈카 오사무 만화론」 가와데 서방 신사 2007년 7월, ISBN 978-4-309-26959-7
- 『전후 에로 만화사』 아오바야시 공예사 , 2010년 4월 23일, ISBN 978-4883792580
- 『전후 괴기 만화사』아카다 유이치 편집, 철인사, 2016년 7월
공저 [ 편집 ]
- 『2B탄・은옥 전쟁의 날들』( 식성 교타로 와의 공저) 신평사, 1982년 8월, 전국 서지 번호 82048138
- 「만화전―「거인의 별」에서 「맛있는 신보」까지」( 무라카미 치히코 , 타카토리 히데 와의 공저)
- 『스피치 풍선 퍼레이드-만화를 둘러싼 여자들의 모험』(여성 만화가들에 대한 인터뷰집) 카와데 서방 신사 1988년 9월, ISBN 4-309-71174-X
편저 외 [ 편집 ]
- 『아이의 쇼와사 소녀 만화의 세계 1 쇼와 20년~37년 별책 태양』(구성)
- 『아이의 쇼와사 소녀 만화의 세계 2 쇼와 38년~64년 별책 태양』(구성)
- “ 난보 의 시대 쇼와 에로·그로·난센스 별책 태양 ”(구성) 히라 범사 1995년
- 『아이의 쇼와사 소년 만화의 세계 1 쇼와 20년~35년 별책 태양』(구성)
- 『아이의 쇼와사 소년 만화의 세계 2 쇼와 36년~64년 별책 태양』(구성)
- “ 데즈카 오사무 만화 대전-아이의 쇼와사 별책 태양 ”(구성) 히라 범사 1997년 11월, ISBN
- “ 요코야마 미츠키 만화 대전-아이의 쇼와사 별책 태양 ”(구성) 히라 범사 1998년
- 「고서 유람―진본・기서・희패본・토모토 별책 태양」(구성) 평범사 1998년 7월
- 『발금본―메이지・다이쇼・쇼와・헤이세이 별책 태양 스페셜』(구성.자료 제공・시로시로 ) 히라 범사 , 1999년 , 296페이지, ISBN 4-582-94326-8
- 『지하본의 세계―발금본 2 별책 태양』(구성) 平凡社, 2001년 6월
- 『만화와 저작권 패러디와 인용과 동인지 와 』(감수)
- 『발금본 3 별책 태양』(구성) 평범사 , 2002년 1월
- 「로봇 만화는 실현할까―로봇 만화 명작 앤솔로지 로봇 개발 최전선 보고」(편집) 실업지 일본사 2002년 7월, ISBN 4-408-32147-8
- 『동인지 바보 일대―이와에몽이 남긴 것』이와타 지오 저・요네자와 카히로 편집, 쿠보 서점 2004년 12월
- 『코스미 코미케 VOL.1 패러디 고전 고전』 마츠 분관 (앤솔로지의 책임 감수·코믹 마켓 30주년 기획) 2005년 7월.
- 『코스미 코미케 VOL.2 레트로 로마네스크』 마츠분관 (책임 감수) 2005년 8월.
- 『코스미 코미케 VOL.3 밀리터리 매니악스』 마츠분관 (책임 감수) 2005년 8월.
- 『현대 만화 박물관』(편집 위원/ 다케우치 오삼 ·요네자와 카히로·야마다 다모코 , 쇼가쿠칸 만화상 사무국 편) 쇼가쿠칸 2006년 11월
아시마 슌 명의의 저서·편저 [ 편집 ]
- 「기상 천외 임시 증간호 아내 히데오 대전 집」(편저) 기상 천외사 1981년 5월
- 「만화&애니메이션 동인지 핸드북」(편) 쿠보 서점 1993년 1월
- 「만화&애니메이션 동인지 핸드북 1995년판」(편) 쿠보 서점 1994년 11월
- 「코스프레 핸드북」(편집 담당. 저자는 우시지마 에사이 ) 쿠보 서점 1995년 9월
- 『신편 만화&애니메이션 동인지 핸드북』(편) 쿠보 서점 1997년 1월
- 『미소녀 동인지 배틀(1)』(이와타 지오와 공편) 쿠보 서점 1998년 11월
- 『미소녀 동인지 배틀(2)』(오타 하루와 공편) 쿠보 서점 1998년 12월
- 「미소녀 동인지 배틀(3)」(오타 하루와 공편) 쿠보 서점 1999년 3월
- 『미소녀 동인지 배틀(4)』(이와타지오와 공편) 쿠보 서점 1999년 5월
- 『미소녀 동인지 배틀(5)』(오타 하루와 공편) 쿠보 서점 1999년 7월
- 『미소녀 동인지 배틀(6)』(오타 하루와 공편) 쿠보 서점 1999년 8월
- 『미소녀 동인지 배틀(7)』(오타 하루와 공편) 쿠보 서점 1999년 10월
- 『21세기 동인지 핸드북』(편) 쿠보 서점 2003년 7월
- 『만화 동인지 에트세트라 '82~'98 상황론과 검토에서 읽는 오타쿠 역사'(저) 쿠보 서점 2004년 9월
복각 만화 감수 [ 편집 ]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