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면과 인간 무의식의 무한한 신비에 대한 단상 (feat. 설기문)
최면은 주작이 아니다.
다만, 최면을 통해 이야기하는 전생은 무의식이 만들어낸 착각이 대부분일 것이다. 진짜 전생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을 못 움직이게 할 정도로 강력한 최면의 힘은 인간 무의식 깊은 곳에 감춰진 존재의 신비를 드러낸다.
노홍철은 최면에 잘 걸리는 반면,
김구라는 씨알도 안 먹히는 이유는,
전자는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사고흐름이 우세한 반면,
후자는 분석적이고 현실적인 사고흐름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즉, 순수의식 (아카샤 레코드)이나 자신의 개인 무의식과 감응하여 그로부터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블레이크의 표현대로라면, '지각의 문'이 정화되어야 한다. 논리나 분석에서 한발 발을 뺀 다음, 대상 그 자체와 동화되어야 한다.
좌뇌가 아닌 우뇌적 접근방식, 표현방식이야말로 무의식을 활성화시킬 것이다.
절차기억으로서의 꾸준한 '습관'과 자신의 감정이 실린 일관된 '심상화'(이미지 트레이닝)야말로 무의식 속에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프로그래밍하는 방법일 것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인간의 무의식 속에 저장된 감정과 생각의 나이테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며, 인생에 다양한 사건들을 펼쳐지게 만드는 진정한 동인이라 생각하였다.
무의식에 대한 칼 융과 콜린 윌슨의 강조는 백번, 천번, 만번 되새김질해도 부족함이 없다.
다스칼로스가 전생의 어느 순간 이탈리아의 인쇄공으로 일하고 인쇄기술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가져, 결국 현생에서는 키프로스의 인쇄국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게 되었다는 일화를 생각해본다.
이와 별개로, 최면에 대한 비용으로 2시간에 100만원을 받는다는 설기문 박사의 장사치같은 마인드에는 질렸다. 나는 설기문이나 전현수 박사나 이런 유형의 인간들을 결코 신뢰하지 않는다. 다스칼로스의 사례가 너무 거룩한 것이긴 해도, 영성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돈을 받고 일하면 안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자발적 후원료로 충당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종교인, 의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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