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이전까지 유럽의 중심이 프랑스였다는 걸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 - 파리 대학교

 

1. 개요[편집]

파리 대학교(Université de Paris)는 프랑스 파리에 소재했던 종합대학이었다. 가장 유명한 콜레주의 이름을 따 '소르본(Sorbonne)'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콜레주의 의미에 대해서는 해당 문단 참고.

1970년 68운동으로 해체되기 전까지는 유럽의 초일류 대학이었으며, 특히 중세에는 그 누구도 부정 못하는 최고의 대학이었다.[1]
[1] 가령 13세기 말까지 정식 신학부는 파리 대학이 독점했으며, 이 독점을 유지하기 위해 교황들은 다른 대학들의 정식 신학부 개설을 반대했다. 또한 파리 대학교의 박사 학위는 볼로냐 대학교와 함께 ius ubique docendi(보편적인 박사 권리)라 하여 국제적으로 인정 받았으며, 심지어 옥스브리지조차도 이 권리는 가지지 못했다.

2. 역사[편집]

1150년 노트르담 대성당 신학교의 교육 협력체로 출발해 1200년 프랑스 왕국의 국왕 필리프 2세로부터 정식 대학 승인을 받았다. 해체 전까지는 1088년에 설립된 이탈리아[2] 볼로냐 대학교, 1096년에 설립된 영국[3] 옥스퍼드 대학교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서구식 대학이었으며,[4] 옥스퍼드 대학교의 본격적인 성장 계기가 1167년 잉글랜드 국왕 헨리 2세 잉글랜드 왕국 학생들의 파리 대학교 진학을 금지한 사건이었을 정도로 영향력이 매우 큰 대학이었다. 이후 중세 시대 때부터 유럽 전역에 인문학 신학으로 널리 명성을 떨쳤던 초일류 교육 기관으로 자리를 잡았으나 1793년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강제 폐교를 당하고 건물은 매매되었다. 이후 1806년 파리 대학교는 나폴레옹 1세의 주도로 세워진 '프랑스 대학교'로 대체되었으나 1896년 대학이 해체된 후 다시 파리 대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1970년이 되자 68운동에 따라 13개의 대학으로 해체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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