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파키스탄, 샤리프 가문, 테러리즘, 탈레반, 오사마 빈 라덴, 파나마 페이퍼스 커넥션 / 샤리프 가문과 파키스탄 부유층의 해외자금세탁, 미국 CIA의 파키스탄 영토 이용에 대항하다가 축출되고 암살위협을 받은 전직 총리 임란 칸
https://www.youtube.com/watch?v=z8FDPU-tDBU&list=PL2A3F490CAC8D9DF5
셰바즈 샤리프
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1988년에 펀자브 주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고, 1990년에는 파키스탄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1993년에 다시 펀자브 주의회에 입성했고 주의회에서 파키스탄 무슬림 연맹을 이끌었다. 1997년 2월 20일에는 펀자브의 주총리로 임명되어 승승장구하는 듯 보였지만 1999년 군부 쿠데타로 인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망명 생활을 해야만 했다.
2007년에 상황이 가라앉자 다시 파키스탄으로 돌아와 펀자브 주의회 선거를 승리로 이끌며 다시 주총리로 임명되었고 2013년 총선까지 무려 세 번에 걸쳐 주총리직을 연임했다.
그의 주총리 생활은 2018년 주의회 선거에서 정의 파키스탄 운동에게 무슬림 동맹이 패배하며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워낙 셰바즈 샤리프가 오랫동안 주총리직을 지내면서 적극적인 인프라 공사와 행정 효율화 정책을 펼치면서 뛰어난 행정 능력을 인정받은 덕에 유망한 정치인으로 급부상했다.
이후 파나마 페이퍼즈 사건으로 총리직에서 쫒겨난 그의 형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의 뒤를 이어 무슬림 동맹의 당수로 취임했고, 이후 임란 칸 총리가 경제 파탄에 대한 책임을 안고 총리직에서 쫒겨나면서 마침내 파키스탄의 23대 총리에 취임했다.#
그러나 집권 이후 상황도 쉽지는 않은데, 임란 칸 전 총리 지지자들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을뿐더러 범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불러오고 있는 인플레이션 문제가 파키스탄에도 찾아왔기 때문. 셰바즈 샤리프 총리는 정권 출범 후 국제통화기금과 구제금융 지원 재개 협상을 벌이는 등 경제난 타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022년 6월 발생한 폭우로 인해 1,717명이 사망하고 3,300만 명이 수재민이 되는 참사가 발생하자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폭우의 원인이 된 기후위기를 야기한 선진국들을 규탄했다.#
2022년 11월 3일에는 임란 칸 전 총리가 피격 당하는 일이 발생하자, 칸 전 총리는 사건의 배후로 샤리프의 연루 의혹을 제기했다. 샤리프 현 총리는 조금도 관련된 게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2023년 8월, 의회를 해산하기로 하면서 안와아르 울하크 카카르를 과도 내각 총리로 정했다.#
3.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3.1. 부패 및 돈세탁 논란[편집]
2019년 12월, 파키스탄 국가책임국[1]에서 셰바즈 샤리프와 그 아들에 대하여 돈 세탁 혐의로 23개의 자산을 동결했고 2020년 9월 28일에는 체포되기까지 했다. 결국 대법원이 최종 유죄를 선고했지만 셰바즈 샤리프는 2021년 4월 14일 보석금을 내고 석방되어 정치 활동을 재개했다.
게다가 애초에 유명한 파나마 페이퍼즈
스캔들에 연관된 인물이 그의 형과 가족들인 나와즈 샤리프 총리인데 명색이 친동생인 셰바즈 샤리프도 아예 연관이 없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파키스탄에서는 가문 단위로 정치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똑같은 샤리프 가문에 속한 셰바즈 샤리프가 형의 돈세탁
작업을 몰랐을 가능성은 적다.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 빈라덴 자금 수수설 또 제기…논란 가열
송고시간2017-05-10 16:07
(뉴델리=연합뉴스) 나확진 특파원 = 해외 자산은닉 의혹으로 궁지에 몰린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가 국제테러단체 알카에다의 수장이었던 오사마 빈라덴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았다는 주장이 다시 제기됐다.
10일 현지 일간 파키스탄투데이 등에 따르면 파키스탄 제2야당인 테흐리크-에-인사프(PTI)는 샤리프 총리가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과 카슈미르 지역에서 이슬람 전사들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빈라덴의 자금을 받았다며 이번 주 내에 제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파와드 차우드리 PTI 대변인은 그러면서 샤리프 총리가 파키스탄의 민주주의를 불안정하게 하고자 외국 자금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샤리프 총리의 빈라덴 자금 수수설은 파키스탄 정보기구 ISI의 수장으로 2010년 파키스탄 탈레반에 살해된 칼리드 카와자의 부인 샤마마 칼리드가 지난해 쓴 책에서 처음 제기된 바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Donald_Lu
Donald Lu (born 1966)[1] is a United States diplomat serving as Assistant Secretary of State for South and Central Asian Affairs since 2021. He previously served as both the United States Ambassador to Kyrgyzstan from 2018 to 2021 and the United States Ambassador to Albania from 2015 to 2018.
He is accused by the then Pakistani Prime Minister Imran Khan of threatening to overthrow Khan's government through a no-confidence vote and having sent a cryptic message to him through Pakistan's ambassador to the US Asad Majeed.[2] [3][4][5] According to an alleged leaked Pakistani diplomatic cable obtained by The Intercept covering a March 7, 2022 meeting between Lu and Majeed, Lu stated that relations between the U.S. and Pakistan were already cooling because of Khan's "aggressively neutral" stance on the Russian invasion of Ukraine and a recent visit of his to Moscow; Lu allegedly related that if there was no change in the Pakistani government's stance on Ukraine, it would likely become "isolated" from the U.S. and Western Europe, but that if Khan was removed in an upcoming no-confidence vote, the rift would be likely to heal quickly.[6][7][8]
Early life and education[edit]
Lu was born in Huntington Beach, California and is of Chinese heritage.[9] He graduated with an A.B. from the Princeton School of Public and International Affairs at Princeton University in 1988 after completing a 158-page long senior thesis titled "The Involvement of International Peacekeeping in Providing Humanitarian Assistance."[10] He later received an M.P.A. from the Woodrow Wilson School in 1991. Lu was a Peace Corps volunteer in Sierra Leone, West Africa in 1988-1990 helping restore hand-dug water wells, and teach health education and latrine construction.[11]
임란 칸
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2.1. 정계 입문 이전[편집]
거기다 크리켓에도 재능이 있어서 16살에 처음으로 프로 데뷔를 했고 왕년에는 파키스탄 크리켓 국가대표로써 이른바 국민적인 영웅으로서 활약하였다. 1983년과 1992년에 상을 받기도 했다. 1982년부터 파키스탄 크리켓팀 주장으로 선임되었고, 특히 1992년에는 예선 리그전에서는 인도에 패했지만, 4위로 결선에 진출해 결승에서 잉글랜드를 꺾고 (2022년 기준으로) 파키스탄 처음이자 마지막의 크리켓 월드컵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1992년 크리켓 월드컵 vs 잉글랜드 파이널 하이라이트. 인도를 누르고 83년 인도처럼 식민지 지배국이었던 잉글랜드를 꺾고 우승했으니 그야말로 국민적 영웅이 되기에 충분한 인물이었다. 특히 일반적인 크리켓 스타들은 30대 중반이면 국제경기 은퇴를 하고, 30대 후반에서 40세가 되면 대부분 선수 커리어를 마감하는데, 선수 커리어의 마감시기에 딱 월드컵 우승하고 은퇴했으니 더욱 스토리가 만들어지기 좋은 것이다.
1992년 크리켓 월드컵 우승 직후의 임란 칸 |
크리켓 월드컵 우승 직후 은퇴를 선언하였으며, 1994년 파키스탄 최초의 암 전문 병원을 라호르에 짓는 등 사회활동에 전념하다가 1996년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대학 시절 여성편력이 굉장했다고 한다. 수많은 여성들과 사귀거나 관계를 맺었으며, 그들 중에는 유력 집안의 딸들도 많았다고 한다. 플레이보이로 명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키도 크고 잘생겼고 파키스탄 국가대표 크리켓 선수에다 집안도 괜찮고 학벌까지 엄청나니 그럴 만도 하다. 젊은 시절의 임란 칸. 서양에서는 히스 레저를 닮았다는 평이 많다.
2.2. 정치 활동[편집]
다이애나빈이 이혼 후 만났던 애인 중 한 명이자 흔히 그녀의 마지막 진짜 사랑으로도 여겨지는 심장외과의 하스낫 칸은 임란 칸의 가까운 친척이었으며, 둘 사이를 소개해 준 사람이 다름아닌 제마이마라고 알려져 있다. 이런 사람이 국가대표 크리켓 영웅이기까지 하니, 어떻게 보면 그가 정치에 입문한 것은 상당히 자연스럽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1996년 PTI를 창당했으며, 1997년 총선에 도전했지만 당시에 PTI는 그야말로 듣보잡 정당이었으며 총선에서 단 1석도 못 건졌다. 당수인 본인부터가 낙선했다.
현재는 흑역사로 남아 있지만, 1999년 페르베즈 무샤라프 장군의 쿠데타를 지지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칸은 무샤라프를 "청렴하고 안전한 지도자"라며 지지를 보냈다.
2002년 국회의원으로 도전해 당선되었다. 이후로는 야권 인사로 활동하면서 무샤라프 독재정권에 항명했는데, 덕분에 정권의 탄압 대상 중 하나로 찍혔다. 급기야 2008년에는 총선 보이콧을 선언했다.
2013년 총선은 그의 인생의 한 가지 전환점이 되었는데, 비록 원내 3당에 그쳤지만 342석 중 35석을 얻으면서 정치적인 돌풍을 일으켰다. 그런데 더 주목해야 할 점은, 비록 의석수는 적어도, 득표율은 인민당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이 당시 칸은 "무능부패한 기득권"이라고 비난을 받아온 기존 주류 세력의 대항마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덕분에 졌지만 잘 싸웠다는 이미지가 굳어지기 시작했다.
2018년 총선이 다가오면서 PTI는 높은 지지를 얻기 시작했으나, 그간의 여론조사에서는 무슬림 동맹이 우위를 보이면서 PTI의 승리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막판에 양당의 격차가 급격하게 좁아지면서 판세가 바뀌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PTI가 앞서는 여론조사가 나오면서 상황이 반전되었다. 2018년 7월 25일 이루어진 선거 결과 최대 90석 정도를 받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110석을 넘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2018년의 이 선거는 파키스탄 역사에서도 중요한 사건이다. 파키스탄은 건국 이후 수십 년 동안 파키스탄 인민당, 파키스탄 무슬림 동맹, 그리고 파키스탄 군부가 돌아가면서 권력을 차지해왔는데, 파키스탄 정치의 순환 고리를 마침내 깨고 임란 칸이 파키스탄의 새로운 총리로 취임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핵무기 관리를 문제로 외교를 미국에 의존하던 군부에 대한 파키스탄 민중의 반발, 샤리프, 부토 등 유력 가문이 독점하던 정치판에 대한 피로가 폭발한 것도 크다. 임란 칸은 군부에 대해서는 군부의 부패를 규탄하며 핵무기를 정치에 이용한다는 비판을, 샤리프, 부토 등 기존 정치세력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에 자주외교도 못하는 벙어리들 이런식으로 도널드 트럼프식 모두까기 전술을 구사해 파키스탄 대중의 국가적 자존심을 건드리면서 지지도를 높였다. 그래서 해외의 전문가들 평가가 파키스탄판 트럼프이자 포퓰리스트라는 것이다.
2019년 2월에 "양국간의 오해가 핵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면서, 인도와의 갈등을 보이자 먼저 대화 제안을 하였다.# 파키스탄의 경제는 심각하게 허약한지라, 만약 전쟁이 벌어진다면 인도가 먼저 핵을 쏴서 전세계에 고립되거나 하지 않는 이상, 얻어터질 확률이 굉장히 높다.
2019년 9월 3일에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11월 1일에 이슬라마바드에서 급진 이슬람주의 정당 지지자 수천 명이 경제난을 이유로 임란 칸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는 천막 농성 시위를 벌였다.#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해 "순교했다"고 발언했다가, 뭇매를 맞고 "실언했다"고 해명했다. #
성범죄자에 대해 사형, 화학적 거세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1년 3월 상원 선거에서 고전하자, 총리 신임안을 표결한다.# 과반으로 통과했다.#
중국산 시노팜 백신을 접종했지만, 코로나 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인터뷰에서 "모든 사람이 의지력이 있는 게 아니므로, 여성들은 유혹을 없애기 위해 옷을 얌전하게 입어야 한다(dress modestly)"는 발언을 하여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얼마 안 지나서 비슷한 발언을 하였다는 점에서 더 욕을 먹었다.#
인도에서 코로나 19 2차 감염 웨이브가 크게 번지자 이를 우려하며, "방역에 철저하지 않으면 파키스탄까지 코로나가 대재앙처럼 번질 것"이라고 걱정하였다.영상
2021년까지 파키스탄 탈레반-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정치적 동맹이라도 있는 건지, 탈레반을 옹호하는 행보를 하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문제 때문에 "ISI가 지금까지도 탈레반을 지원하는 것이 이 사람 덕 아니냐"라는 의혹이 존재하며 실제로 파키스탄 공군의 탈레반 지원에 의한 NRF에 대한 공습 사건들도 무관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칸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는 아니며, 그가 속한 정당 역시 이슬람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근본주의 정당은 아니다. 칸이 탈레반을 싸고 도는 것은, "현재 파키스탄 경제가 엉망인지라 국민들의 시선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있다. 또한 부계가 파슈툰족이라 파슈툰 민족주의를 추종하는 탈레반과 혈연적으로 연이 있다는 점도 탈레반 지지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는 관점도 있다. 그와 별개로 파키스탄은 군부가 나라의 실세이기 때문에 총리의 권한이 작다.
2022년 4월에 불신임안을 가졌으나, 무산되었다.# 정치적 돌파 위해 조기총선을 가지자는 것이다.
4월 8일 파키스탄 대법원이 칸 총리의 의회 해산 조치가 위헌이라면서 의회 복원을 지시했으며 동시에 불신임 투표를 진행할 것을 명령하였다. 법원 명령 전 야당은 과반의 표가 이미 확보되었다고 밝혔고 이에 따라 쫒겨나는 것이 확실시되었다 #
4월 10일, 경제 파탄의 주요 책임자로 지목되어 불신임안이 통과되면서 총리직에서 쫒겨났다.# 임란 칸은 반발하며 지지자들에게 항의 시위를 독려하고 있다.#
5월 7일, 파키스탄 정보부에서 임란 칸을 고소했다. 죄목은 신성모독죄.# 문제는 파키스탄에서 신성모독죄의 처벌 규정은 사형이라는 것. 이게 가능한 이유는 파키스탄이 이슬람 극단주의가 보편적 정서가 되었을 만큼 종교적으로 민감하기 때문이다. 정치판에선 이 정서를 악용해 트집잡아 신성모독으로 뒤집어 씌우는 일이 잦다.
2022년 9월엔 재판 중에 여성 판사가 나온 것을 트집잡았다가 사과하는 일이 있었다.# 거기다 UN에 파슈툰족과 탈레반을 민족주의자라고 옹호하는 서한을 보냈다가 파키스탄 하원이 임란 칸의 개인 생각일 뿐, 파키스탄의 공식 입장은 절대로 저렇지 않다고 공식 성명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10월 21일. 파키스탄 선거관리위원회가 임란 칸 전 총리에 대해 5년간 공직 박탈 결정을 내렸다.#
2022년 11월 3일 오후3시(현지시간) 임란 칸이 유세차량을 타고 펀자브주 동부 와지라바드에서 수도 이슬라마바드로 향하던 중 괴한의 총기공격을 받았다. 칸 전 총리는 바로 차에 타서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1명이 사망하고 9명이 부상을 입었다. 11월 4일 총상 이후 첫 연설에서 자신이 넘어져서 죽은 줄 알고, 다른 암살자는 떠났다고 밝혔다.# 한편 임란 칸 전 총리는 사건의 배후로 샤리프 현 총리와 라나 사나울라 내무부 장관, 파키스탄 정보부 등을 지목했다. 경찰은 용의자의 단독범행을 발표했으며, 샤리프 총리는 전혀 연루된 것이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3주 만에 다시 나섰다.# 임란칸은 이번 총격의 배후에 셰바즈 샤리프 현 총리와 정보 당국이 있다고 주장했다.
2023년 5월 9일, 재임 시절 받은 선물을 불법으로 판매하거나 은닉한 혐의로 이슬라마바드 고등법원 청사 밖에서 부패방지기구인 국가책임국(NAB) 관련 요원들에게 체포됐다.[1]# 그러자 임란 칸이 이끄는 정의 파키스탄 운동(PTI) 등 지지자들이 항의시위에 나서는 등 파키스탄 정국이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한편 11일 파키스탄 대법원은 이번 체포가 무효이며 2주간의 경찰 보호 하에 보석을 허가했다.# 그는 당국에 의해서 풀려났지만 측근과 지지자 등 약 5천여명은 체포되어 구금되어 있다고 한다. 그는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체포의 배후에는 군이 있으며 파키스탄은 현재 육군참모총장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군이 칸 전 총리 측을 압박하는 가운데 칸 전 총리를 지지하는 야권 성향의 언론인들이 잇다라 실종되고 있다고 한다.#
파키스탄 선거관리위원회가 자산은닉죄로 수감된 임란 칸 전 총리에 대해 5년간 선출직 출마 자격을 박탈했다.#
2024년 1월. 국가기밀 유출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또, '불법 결혼' 혐의가 인정돼 징역 7년 형을 선고받았다.#
2.3. 사생활[편집]
두번째 아내는 파키스탄의 방송인이자 저널리스트인 리함 칸이다. 리함 칸과의 결혼생활은 불과 9개월 만에 끝났는데, 보수적인 파키스탄 사회에서 미니스커트나 딱 붙는 상의 등을 입고 방송하던 리함의 이미지가 워낙 안 좋아서 "왜 칸이 저런 여자랑 결혼하냐"는 여론이 많았기에, 이 2번째 결혼은 시작부터 삐걱였다. 둘 사이도 안 맞는 게 많았는지, 결과적으로 둘의 관계는 1년도 채 지속되지 못했다. 그리고 칸은 리함과 이혼할 때 이슬람권의 악습인 '트리플 탈라크'를 사용해 이혼하는 바람에 진보파나 세속주의자, 서방으로부터 욕을 먹었다. 트리플 탈라크(Triple Talaq)란 탈라크(뜻은 이혼)를 3번 말하면 아무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이혼이 법적으로 허가되는 이슬람권의 악습으로, 파키스탄뿐만 아니라 이슬람권에서 널리 악용된다. 그리고 이슬람권이 다 그렇다시피 남성만 사용할 수 있고 여성은 해당사항이 없다. 칸은 아내에게 문자로 그냥 Talaq를 3번 쳐서 보냈고,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혼이 됐다. 이렇게 이혼한 것에 대해 악감정이 단단히 생겼는지, 리함은 이혼 후 선거철에 칸과 그의 정당을 씹어대는 자서전을 발표했다. 그러나 리함 본인이 파키스탄에서 비호감 이미지가 강해서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4]
세번째 아내는 수피학자 부쉬라 비비. 임란 칸은 개인적으로 수피즘에 심취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부쉬라 비비로 널리 알려진 3번째 부인은 펀자브 지방의 유력 가문의 딸로, 본래 성은 Wattoo이며 첫 번째 결혼으로 얻은 성이 Maneka이다. 둘은 수피즘 사원에서 만나서 알게 되었으며, 당시에 그녀는 첫번째 남편 카와르 마네카와 살고 있었지만 2017년 이혼했다. 이 때문에 불륜 루머가 잠시 돌았으나 전남편이 단호하게 부정하여 일단락 되었다. 앞의 두 전처와는 달리 독실한 무슬림인지라 히잡을 상시 쓸 것을 공식적으로 밝힌 최초의 파키스탄 총리 부인이 되게 되었다. 파키스탄은 보수적인 이슬람교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탈레반 점령 구역이 아니라면 히잡은 쓰다 벗었다 해도 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이전 총리 부인들이나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경우 히잡을 벗은 적도 매우 많다. 또한, 임란 칸 본인도 3번째 결혼 즈음을 계기로, 영국 귀족에 가까웠던 모습에서 일신해 무슬림 영성에 눈을 떴다는 종교적인 선언과 동시에, 아내가 쳐주는 점성술과 종교적 의식을 정치에 이용하기 시작한다. 어느날 갑자기 열성 무슬림이 되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그 뒷배경 논란이 있지만, 이것이 수피즘에 익숙한 파키스탄의 대중들에게는 알라의 가호처럼 보이면서 대중의 지지도를 높이게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세속주의자라 그런건지 수염을 면도하였다. 원래 이슬람 율법상 남성에게 면도는 금하는 사항이다.
파키스탄이 영어를 공용어로 쓰긴 하지만 그의 영어 연설을 들어보면 알아듣기 힘든 경우가 있다. 이유는 그가 사용하는 영어의 파키스탄식 방언이기 때문. 자세한건 파키스탄 영어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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