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 그 자체였던, 고종
고종은 왜 세 번이나 내정에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였나, 이웃나라는 위기의 구원자가 될 수 있는가? 민족 역사상 최대의 반외세 반봉건 민중항쟁으로 꼽히는 동학농민운동. 그들은 결국 일본군에 의해 학살된다. 여기까지는 많은 한국인들이 알고 있지만 그 살육의 진압군이 한일연합군이었다는 사실은 잘 잊고 있는 게 한국 사회의 주된 역사인식이다. 고종은 친정(親政) 후 내정에 큰 사건이 발생했을 때마다 외세를 습관적으로 불러들였다. EBS 다큐프라임 '한국사 오천년, 생존의 길' 제5부 ‘고종, 열강의 덫에 빠지다’ 편은 외세를 활용하고자 했던 고종의 발자취를 추적하고 그 결과를 통해 이웃나라과 과연 위기의 구원자가 될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1894년 2월 15일(양력), 전라북도 고부. 가혹한 수탈을 이기지 못한 농민들이 봉기한다. 밭을 갈던 곡괭이는 탐관오리들을 향했고 분노한 민심은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번져가 관군에 연전연승하고 호남지역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전주성에서 농민군과 관군이 대치하던 1894년 6월 8일, 청(淸)의 군대가 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참전한다.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종이 청에 원군을 요청했던 것이다. 문제는 고종이 청나라를 끌어들인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1882년 7월 23일 발생한 임오군란 때도 고종은 청에 구원군을 요청했고 청은 즉각 출진해 난을 하루아침에 평정해줬다. 1884년 12월 4일에 벌어진 갑신정변 때도 고종은 자신의 2년 전 성공전략을 따른다. 갑신정변의 진압을 위해 청군을 부르자 역시 이번에도 청군은 하루아침에 정변을 진압해줬고 고종은 다시 왕좌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앞서 1894년 농민봉기라는 세 번째 위기가 닥치자마자 고종은 다시 청을 부른다. 그러나 이번에는 앞의 두 차례와는 상황이 다르게 전개된다. 청군이 조선에 들어오자 난데없이 일본군 역시 조선 땅에 군대를 보냈다. 10년 전 갑신정변 때 청-일 간에 맺은 톈진조약이 그 근거였다. 일본군이 인천항에 상륙한지 한 달 보름만인 7월 23일, 일본은 드디어 그들의 야욕을 드러냈다. 경복궁을 기습한 것이다. 조선 호위병들의 별다른 저항 없이 경복궁은 일본군 단 2개 대대의 습격으로 일본군의 수중으로 넘어간다. 당시 지휘관은 일본군 제9여단장 오시마 요시마사(大島義昌). 현 일본 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의 외할아버지였다. 조선 땅에서의 외세 간의 전쟁을 직감한 동학농민군은 조선정부와 화약을 맺고 전쟁을 중단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조선정부는 이제 청일 양국의 군대에게 조선 땅에서 나가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약소국이 외세를 끌어 들이는 건 마음대로 될지 몰라도, 내보내는 건 절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전쟁은 벌어졌고 고종의 뜻과는 달리 일본이 청군을 압도합니다. 내정에 이웃나라를 끌어들이는 것은 ‘독’을 쓰는 것이다. 독을 쓸 때는 훗날 이 독을 몰아낼 항체를 함께 키워야했지만 고종은 항체 없이 독을 썼다. 결과적으로 조선은 망했고 고종은 망국의 군주라는 오욕의 주인공이 됐다. ‘독자적인 힘’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는 외교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EBS 다큐프라임 한국사 오천년, 생존의 길 제5부 ‘고종, 열강의 덫에 빠지다’ 편은 여실히 보여준다. ✔ 프로그램명 : 다큐프라임 - 한국사 오천년, 생존의 길 5부 고종, 열강의 덫에 빠지다 ✔ 방송 일자 : 2018년 02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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