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차일드를 비판하고 나치즘을 지지했던 인도의 독립운동가 수바스 찬드라 보스는 일본군 예하에서 인도국민군 이끌며 미얀마에서 영국/인도와 대립 (임팔작전); 일본이 인도 동북부 투자하는 이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장기적 포석으로 패권 확장 + 중국견제; 방글라데시 일본 차관으로 수도 다카에 지하철; 미얀마에도 투자; 아무래도 제국을 운영한 경험이 있으며, 경제대국인 일본은 한국보다는 훨씬 더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외교전략을 구사한다

 


추축국 옹호자였기 때문에 반유대주의자로 비판받기도 한다. 그는 종종 유대인들이 영국을 도와 인도를 착취했다며 '유대인'과 '유대자본'을 비난했는데 이에 대해 보스 지지자들은 로스차일드 가문 등 영국 후원 유대계 자본을 비난한 것이지 반유대주의라고 볼 수 없다고 두둔하기도 하지만 그러면 애초에 유대인, 유대교라는 민족적 정체성으로 비난할 게 아니라 단순히 '친영 자본' 혹은 유대교와 연관짓지 않고 않고 로스차일드 가문을 비난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보스는 유대인이라는 점으로도 그들을 비난했다. 비록 보스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비판한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이조차도 정작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부터 나치 독일에 박해를 피해 온 유대인 난민들의 인도 망명을 강하게 반대한 행적 등을 보았을 때 보스가 반유대주의자가 아니라고 보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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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음모론[편집]

갑작스런 폭사 때문에 그의 죽음에 대한 음모론이 몇 가지 있다. 찬드라 보스가 사고를 당한 비행기에는 군자금으로 쓰던 막대한 금괴와 일본인 고문들이 함께 타고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찬드라 보스는 행방불명되고 금괴의 행방도 묘연한데 왠지 그 고문들은 그 뒤에 어디서 얻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자금으로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건 그냥 음모론에 불과하다.

그리고 다른 하나로는 보스는 사실 죽지 않았고 지금 타이완에 있는 유골은 DNA 검사 결과 가짜라는 것이다. 즉 무사히 일본 고문들의 도움으로 러시아로 갔지만 아직 연합국과의 친교가 필요했던 이오시프 스탈린이 보스를 시베리아로 보냈고 거기서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소-인 외교 관련 회의 때 니키타 흐루쇼프가 인도에서 원한다면 48시간 내에 보스를 귀국시키겠다거나 생존 확인을 해 주겠다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이야기도 1956년 이후에는 사라졌다. 인도 정부에서 수차례 이 설을 조사했지만 아직도 명확한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인도인들사이에 퍼져 있는 또 다른 음모론에 따르면 보스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자와할랄 네루가 손을 써서 보스를 암살(혹은 시베리아에 있는 걸 알고 모른 체)하여 경쟁자를 제거했다는 주장도 있다. 독립운동의 세 거두 중 마하트마 간디는 세속적 권력에는 관심이 없는 구름 위에 있는 사람이니 경쟁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고 최대 경쟁자였던 네루와 보스의 대립이 암살이라는 형태로 드러났다고 하지만 이 설도 증거는 없는 음모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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