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 시절 아이티는 세계 설탕의 40%, 커피의 절반 이상 생산했다; 17세기 말 프랑스 식민지가 되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을 때 많은 프랑스인들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며 기뻐했으나, 1791년 카리브해의 흑인 노예들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며 아이티 혁명을 일으키자, 프랑스인들은 가차없이 탄압했다; 나폴레옹 왈: "아이티에 있는 12살 이상 흑인은 모두 죽일 것"; 아이티인들은 프랑스의 식민지배에 저항하며 결국 독립을 쟁취했으나, 1947년까지 무려 122년간 이자와 배상금을 프랑스에 지불하여 아프리카 최빈국이 된다; 프랑스가 군함을 이끌고 협박했기 때문에, 아이티는 각종 세계 기구로부터 돈을 빌려 이자와 배상금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2015년 프랑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왈: "아이티 식민지배는 도덕적 부채일 뿐"; 50년간 하락한 아이티의 GDP; 척박한 삶에서 위안을 얻고자 아이티인들은 카톨릭과 토속신앙이 결합된 주술적인 종교, 부두교를 신봉해왔고, 이것이 오늘날 전세계 좀비물의 뿌리가 된다

 



한편 아이티를 식민지배했던 프랑스는 1825년에야 아이티의 독립을 인정했지만 그 대가로 아이티 노예주들에 대한 거액의 배상금을 요구했다. 아이티는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인정받기 위해, 그리고 경제적 봉쇄를 풀기 위해 배상금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고[5] 이것이 100년 동안 아이티의 경제를 발목잡은 데다 국내 정치도 안정되지 못해서[6] 아이티는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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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는 1947년에야 이 배상금을 완납했다. 사실 프랑스는 계속 이 배상금을 연장하고 싶어했지만 프랑스가 아이티 몰래 이자를 늘려서 청구하려는 걸 미국이 전후복구계획인 마셜 플랜을 인질삼아 가로막았고 온 국토가 엉망이었던 프랑스는 이에 굴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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