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필이 노자의 주석을 달았을 때의 나이가 16세 / 70대 이상의 노인들이 젊은이들에게 훈수를 두지만, 그것이 아로에게 가소로워 보이는 이유는, 천재는 나이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왕필이 노자의 주석을 달았을 때의 나이가 1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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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유명한 천재로 알려졌으며, 이를 들은 하안(何晏)이 그를 중용하고 학문에 대한 토론을 나눴다. 16~20세 사이에 노자의 《도덕경》과 《주역》의 주와 약례를 썼다. 그가 쓴 노자 주는 가장 긴 주가 달린 38장을 제외하면, 원문과 글자 수가 비슷할 정도로 분량이 적어서, 후대의 학자들로부터 왕필이 《도덕경》의 주를 단 것인지 그 반대인지 모를 정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대 이후부터는 도덕경이라 하면 대개 왕필본을 말한다.


철학사적으로 보면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조숙한 천재. 왕필 이외에 철학사에서 이름을 남긴 철학자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 40대 이후에 주저서와 사상을 완성했고, 몇몇 천재적 인물들도 20대 후반 이상은 되어야 유의미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예술이나 전쟁, 수학, 과학 분야의 경우 종종 십대부터 활약한 조숙한 천재들이 등장하곤 했지만 철학의 경우 왕필을 제외하면 십대 시절 족적을 남긴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요절한 것이 매우 안타까운 비운의 인물.

또한 왕필은 조위 후반 조상 일파의 집권을 정당화하는 내용의 논제(귀무론, 본무론)를 많이 저술하는 등 위진남북조 철학사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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