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빅터 로스차일드 통제 하의 미국이 칼텍의 일류 과학자이자, 로켓과학 기술 분야의 권위자였던 천쉐썬을 중국으로 추방한 것은, 오히려 공산권으로 하여금 핵개발과 인공위성을 만들게 도와주기 위함인가?
민주화 운동가들은 천쉐썬을 "과학자라기보다는 정치인"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정작 그를 미국에서 내쫓아 중국에 도움을 주게 한 것은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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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정보 당국이 칼텍의 마르크스 레닌주의 조직을 발견했는데, 이 조직의 우두머리인 S 웨인바움이라는 화학자가
첸쉐썬의 추천으로 칼텍 연구소에 들어온 사람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웨인바움은 심문 과정에서 첸쉐썬과 함께 엥겔스의 저작물을 읽고
그에 대해 토론했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첸쉐썬은 그 모임은 사교모임에 불과했고, 자신은 공산당에 가입한 적이 없다고
항변했으나, 설상가상으로 미 정보 당국이 입수한 미국 공산당(American Communist Party) 명부에서 첸쉐썬의
이름이 발견되었다. 게다가 1950년 10월 가을 중화인민공화국이 북한을 돕기 위해 한국전쟁에 참전하면서 미국과 중국은 전쟁 중인
적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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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스푸트니크를 부러워하던 마오쩌둥 주석이 '우리도 인공위성 쏠 수 있냐'고 하자, 15년에 걸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투자를 요구했다. 대충 부연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처음 5년은 공교육을 정비하여 기초학문을 가르친다 → 그 다음 5년간 응용학문을 가르친다 → 그 다음 기계 설계와 제작에 들어가서 5년 내로 발사. 단, 돈이고 인민이고 있는 대로 다 퍼부어 주셔야겠고, 이 15년 동안 성과가 있냐고 중간에 물어보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다.
그는 마오쩌둥의 승낙을 받고 같이 귀국한 과학자들과 함께 프로젝트 착수에 들어갔다. 위에 언급된 미래 과학기술 인력의 양성에도 힘을 썼고, 중소결별 이후 소련의 기술자들이 중국에 기술을 전수해 주다가 그냥 가버리고 남겨진 R-2 로켓을 손 봐서 탄도미사일 둥펑을 제작한다. 또한 핵개발 총괄책임자까지 맡았다. 비록 핵물리학에는 문외한인 그였지만, 국가 단위의 과학기술 발전 프로젝트를 미국에서 체험했던 그의 경험으로 중국은 성공적으로 원자폭탄 개발을 완료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소폭탄도 만들어냈다.
1970년 중국은 마침내 창정 로켓으로 동방홍 인공위성의 발사에 성공했다. 이는 소련, 미국, 프랑스, 일본에 이은 다섯번째 스페이스 클럽 가입이었다. 이렇게 인공위성까지 발사하자 그는 비로소 대외에 존재가 공개되었다. 중국에서는 양탄일성 (兩彈一星)을 쏘아올렸다며 그의 업적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칭송[11]했으며 수많은 젊은 인재들이 그를 따르겠다며 이공계에 투신하여 중국의 발전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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