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회의 (High Table)
영화 존 윅 시리즈를 보면,
범죄의 세계를 총괄하는
'최고회의' (High Table)라는 단체가 나온다.
배후에서 세계의 정치와 경제를 움직이는 최고회의와 같은 조직들이
오랫동안 존재해왔다.
그 최초의 범지구적 협의체는 영국에서 시작되었는데,
어느 단체를 최초로 볼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1600년에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뿌리를 둔, 영국 동인도회사(The East India Company)의 이사회를 그 시초로 볼 수도 있는데, 실제로 마약 이권을 중심으로 아주 오랫동안 영국과 유럽, 나아가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조직이 동인도회사였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국제적인 단체라고 하기에는 그 구성원들의 면면이 영국인에 국한되어 있었고, 영국과 영연방의 이익에만 국한되어 있었기에 무리가 있다.
다음 후보는 1727년에 영국에서 발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300인 위원회 (Committee of 300)다.
독일의 외무장관이었던 Walther Rathenau가 1909년에 한 투고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고대 로마의 원로원에서 따온 영국의 '300인 위원회' (Committee of 300)는
영국을 넘어 당대 유럽의 정세를 좌지우지하는 단체였다.
이 단체가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매우 불명확하다.
설립년도도 불확실하다.
영국 출신의 2류 음모론 작가이자, 진위여부가 불분명한 MI6 이력을 주장하는,
미국인 존 콜먼은 300인 위원회는 1727년이 아닌 1897년에 창립되었다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기는 스위스에서 제1회 시오니즘 세계대회가 개최된 시점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 설이 맞다면, 1870~80년대 이래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을 장악했던 로스차일드 가문의 유태인 네트워크에 대항해서 영국 귀족들이 만든 단체가 300인 위원회라고 볼 수 있으며, 1874년에 해체된 영국 동인도회사 이사회를 계승 및 발전시킨 조직으로 볼 수 있다. 1884년에 설립된 노동당 계열의 페이비언 협회도 300인 위원회의 설립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300인위원회와 다르게
좀 더 뚜렷한 실체를 갖고서
근대사에 영향을 끼쳤던 최고회의로는
1909년에 발족된 원탁회의 (Round Table)와
1920년에 발족된 채텀하우스 (Chatham House)를 거론할 수 있다.
특히 채텀하우스가 중요하다.
채텀하우스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일으킨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유럽 각국의 왕정제가 폐지되자(대표적으로 오스만투르크와 합스부르크 왕가가 있었다), 그 자리를 대신해서 꼭두각시 정권들을 내세워 세워 세계 각 국의 정치, 경제를 조종하기 위한 모임의 성격이 강했다. 물론 모든 지배구조의 정점에는 영국의 지배층이 있었다. 채텀하우스가 국제연맹과 같은 1920년에 설립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채텀하우스의 미국 내 하부조직이 바로 채텀하우스 설립 1년 뒤 만들어진 미국외교협회 (CFR, Council on Foreign Relations)였다. 오랫동안 CFR의 수장은 데이비드 록펠러가 맡았다.
채텀하우스가 총괄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UN을 필두로 IMF,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들이 만들어졌는데, 그 경제적 실무를 담당한 사람들이 존 메이너드 케인스나 해리 덱스터 화이트 같은 채텀하우스 관련 인물들이었다. 뉴욕에 있는 UN 본사의 부지 역시 로스차일드 가문의 오랜 협력자였던 록펠러 2세가 기증했다.
1954년에는 빅터 로스차일드가 한국전쟁을 통해 냉전 체제를 확립한 뒤 만든 빌더버그 (Bilderberg)가 최고회의에 등극했고(* 회의 내용을 절대 외부에 유출하지 않는다는 빌더버그 회의의 규칙은 채텀하우스의 룰에서 유래한 것이다),
1973년부터는 데이비드 록펠러가 세운 삼극위원회(TC, the Trilateral Commission)가 최고회의에 등극한다. (* 록펠러는 1968년부터 로마클럽 등 유럽 내 귀족들을 회유하여 마침내 1973년에 로스차일드 가문과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하게 된다.)
1993년에는 지구상 최초의 경제통합체인 EU가 만들어졌고,
WTO, FTA와 더불어 세계화의 흐름도 가속화된다.
삼극위원회는 1990년대까지는 세계 각 국에서 신자유주의 열풍을 일으키며 명실상부 세계정부의 역할을 했으나
2000년대 이후에는 뚜렷한 역할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국제적 영향력이 많이 사라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세계경제포럼이 삼극위원회의 역할을 대신하는가 싶다가도 그 역할이 제한적이었고, 2023년 현재 시점에서 세계정부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조직은 1921년 설립된 미국외교협회 (CFR)로 보여진다.
국제정치에 무지한 이들은 어떻게
로스차일드와 록펠러 가문 그리고 영국의 몇몇 귀족이
다양한 최고기구들을 통해
전세계를 140년 넘게 지배해왔는지
의구심을 표하지만,
가장 자본력과 군사력이 막강한 조직이 전체 하부조직들을 피라미드 구조로 총괄하게되는 동물행동학과 조직행동론적 특징들을 고려했을 때,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한번 중국 공산당의 피라미드 구조를 생각해보자.
중국 인구가 약 15억명이라면,
그 위에는 9,671만 2천명으로 구성된 중국공산당 당원들이 있고,
그 위에는 2,296명으로 구성된 전국대표대회 대표들이 있으며,
그 위에는 205명으로 구성된 중앙위원이 있고,
그 위에는 24명으로 구성된 중앙정치국 위원이 있으며,
그 위에는 7명으로 구성된 정치국 상무위원이 있고,
그 정점에는 1명의 총서기로 귀결되는 것이다.
(시진핑 집권 이전에는 전·현직 중국 지도부의 비밀회의인 베이다이허 회의가 중국 공산당의 최고 결정기구 같은 느낌이 있었다.)
구글이나 MS, 메타, 애플 같은 극소수 테크기업들이나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같은 투자회사들이
전세계 스타트업의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거나,
록펠러 재단(또는 록펠러 투자회사)이 뱅가드나 블랙록 같은 굴지의 자산운용사들을 통해 표춘500대 기업의 주식들을 장악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이치로 설명 가능하다.
이는 언더그라운드 세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미국의 마피아, 러시아의 레드마피아, 일본의 야쿠자, 그리고 중국의 삼합회도 겉보기에는
여러 조직들로 분열되어 있지만, 정점에서는 최상위 조직들이 독식하고 있다. 야쿠자를 예로 들면, 군소조직은 수 백개에 이르나, 실질적으로 이들을 통제하는 3대 단체는 야마구치구미, 이나가와카이, 그리고 스미요시카이다.
하여, H.G. 웰스나 올더스 헉슬리가 말했던 '세계정부' (the World Government)나
조지 H.W. 부시나 헨리 키신저가 자주 말했던 '세계질서' (the World Order)가 주는 범지구적 어감이 일반인들에게도 그렇게 낯설게 들리지 않고,
대중문화와 서브컬쳐에서도 심심찮게 세계를 막후에서 지배하는 초당적, 초국적 단체를 이야기하곤 하는 것이다 (존 윅 시리즈의 최고회의나 <원피스>의 오로성 등 이런 설정은 매우 흔하다).
예서 함 생각해본다.
장차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하게 될 배후의 최고회의는 어디가 될 것이며,
그 주재자는 누가 될까?
지나간 시기의 인류 역사와 더불어,
<트루먼 쇼>의 크리스토프,
<매트릭스>의 아키텍트,
<브루스 올마이티>의 신,
그리고 <레디 플레이어 원>의 제임스 도너번 홀리데이 같은
다양한 케릭터들을 생각해보며 공상을 더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p.s.
세계관 최강자 정리
* 15세기: 포르투갈 (약 100년간)
* 15세기 후반~17세기 중반: 스페인 (약 150년간)
* 17세기 중후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약 50년간)
*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 프랑스-나폴레옹 황제 (약 15년간)
* 18세기 후반~19세기 후반: 영국 동인도 회사, 베어링 가문 (약 90년간)
* 1880년대~1960년대: 로스차일드 가문 (약 80년간)
* 1970년대~현재: 록펠러 가문 (현재 53년 이상 지속중)
* 1897년~1919년: 300인 위원회 (약 22년간)
* 1920년~1953년: 채텀하우스 (약 33년간)
* 1954년~1972년: 빌더버그 (약 18년간)
* 1973년~1999년: 삼극위원회 (약 26년간)
* 2000년~2014년: 세계경제포럼 (약 14년간)
* 2015년~현재: 미국외교협회 (현재 8년 이상 지속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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