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계 (야마구치 구미 야쿠자) 재일교포 자금으로 설립된 오사카 총영사관과 신한은행 / 싸움은 실력이 아닌 근성으로 하는 것이라는 한록춘 회장 일대기 / 야마구미구미 실세 No.2~5는 전부 재일

 


  “일본에 오자마자 일본음식을 어떻게 만들겠어요? 제가 만든 음식에 불만을 품은 일본 선원 한 명이 저를 때렸습니다. 그래서 대들었더니, 다른 선원들이 가세해서 죽을 때까지 때리더군요. 끝까지 대들었더니, 욕을 하면서 배에서 쫓아내더군요. 아마 ‘저놈, 아주 악질, 독종’이라고 말했겠죠. 하하하. 그런데 그때 배에서 얌전히 있었으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저를 내려놓고 간 그 배가 난파돼서 선원들이 모두 죽었거든요.”
 
  ―천운(天運)이었군요.
 
  “예. 저는 천운을 타고났다고 생각합니다.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그때가 처음이었죠.”


  자신이 탄 배가 침몰한 것을 보고 난 한 회장은 가고시마에 정나미가 떨어졌다고 한다. 그는 동포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던 오사카로 다시 길을 떠났다. 오갈 곳 없는 그는 오사카 항구 근처를 배회했다. 일본에 와서 그나마 뱃일을 했으니 뱃일을 구해 볼까 하는 심산이었다.
 
  “뱃일을 찾으러 항구에 갔는데, 텃세가 엄청 심했어요. 가고시마에서처럼 죽기살기로 싸움을 했죠. 매일 싸움을 하다시피 하니까, 저처럼 텃세에 눌려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붙더군요. 그래서 같이 싸웠죠.”
 
  ―체구가 작으신데 싸움을 어떻게 잘하셨습니까.
 
  “체구는 작았지만 빠르고 힘이 있었어요. 무엇보다 싸움은 ‘곤조(根性·근성, 마음보, 성질)’입니다. ‘곤조’. 저는 항상 제가 당한 만큼 상대에게 갚아줬습니다. 무조건 복수는 한다는 게 제 신조였습니다. 아마, 여기 있는 당신들은 당해도 복수 같은 건 못 하겠지만… 하하하.”


  “아니오. 손가락도 안 잘랐고, 사죄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족을 피신시키고, 저는 100일 동안 다시 도망을 다녔어요. 제가 계속 일본 야쿠자들과 싸우니까, 다른 한국 출신 조직들이 도와줬습니다. 호남출신이 만든 난도카이(남도회), 간다히치로(강신옥)파 등이 저희 조직과 뜻을 같이했죠. 네 번째 전쟁부터는 고베의 다카야마가 합세를 했습니다. 다카야마도 한국 사람이죠.”

“총영사관이 있는 미도쓰지 거리는 오사카의 심장부예요. 이 거리에 총영사관이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습니다. 이 거리에 건물을 올리려고 저희 민단 소속 재일동포들이 1971년부터 1년간 돈을 모았습니다. 일본사람들에게 차별받고 먹고살기 힘들었지만, 본국에 총영사관을 지어줘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모은 돈이 16억 엔이었습니다. 그때 우리 영감이 기성회장이 돼서 1억 엔을 내고 모금을 독려해 줬어요. 그 돈을 들고 땅을 사려고 갔는데 일본사람들이 땅을 안 판다고 하는 겁니다.”
 
  ―왜 안 판다는 거죠.
 
  “오사카 심장부에 조센징(조선인)들이 들어오게 할 수 없다는 거죠. 우리 모두가 억울하고 실망해서 울고 있는데 우리 영감이 ‘걱정 마라. 내가 해결한다’고 하더군요. 영감의 부인이 일본분인데, 그분 이름으로 땅을 샀습니다. 그렇게 해서 건물을 올린 다음, 땅의 등기를 영감 부인 이름에서 대한민국으로 바꿨습니다. 우리가 이 건물을 올리고 얼마나 울었는지 아세요.”


 
  ―한 회장님이 아니었다면 신한은행도 설립되지 못했을 거라고 들었습니다.
 
  “1960년도에 오사카에 동포 은행이 두 개 있었어요. 오사카 흥은(興銀)과 상은(商銀)입니다. 원래는 상은이 먼저 생겼고 제가 상은의 이사였어요. 나중에 흥은이 생겼는데 저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동포 은행이 하나보다는 두세 개 정도 있으면 서로 더 잘할 거라고 생각했죠. 어느 날 이희건씨가 제게 와서 오사카 흥은의 2대 이사장 선거에 나갈 테니 도와달라고 했어요. 내가 돕기도 했지만 이희건씨는 체격과 언변, 수완이 좋아요. 이사장에 당선됐죠. 그런데 얼마 있다가 이희건씨가 제게 와서 ‘은행에 돈이 없어서 망하게 될 지경’이라고 사정을 하더군요. ‘우리 은행이 하나라도 망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서 후지카바레에 들어오는 수입금 전부를 흥은에 입금했습니다. 오사카 흥은이 망했더라면 신한은행은 아예 만들지도 못했겠죠.”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1002100047




짤의 주인공 야마구치 구미 6대 쿠미쵸 츠카사 시노부는

한참 때 사람 목을 직접 닛폰도로 참수해 화제가 된 적 있었음.  근데 그 일로 몇 년 밖에 안 살다 나왔음, 걸린 게 한 번일 뿐이란거지

우리가 모르는, 직접 참수질 한 것은 수두룩빽빽하게 많았겄지

또 보스 중에 보스 라 불리는  지금에 야마구치 구미를 실질적으로 만든  3대 쿠미쵸 타오카 카즈오는 인자한 외모와는 정반대로 항쟁 때 상대 조직원의 눈을  산 채로  직접 뽑아내는 걸로 유명해서 별명이 ''눈알을 뽑아내는 곰'' 이었음. 야쿠쟈에 대해 환상을 가지면 안 됨

이제 곧 야마구치구미 부두목 애꾸눈, 다카야마 키요시의 심복이며 현 고도카이 두목에게  (60세 정도)   쿠미쵸를 위임한다 카더라

이 짤의 두목은 80세가 넘고 부두목 애꾸눈 키요시는 70대 중반이니, 젊은층에 조직을 넘기려 하는 거임

그리고 야마구치구미 5대, 6대, 조직에 실세들은 전부 부두목이었음. 특히 5대 때는 부두목이, 두목에게  큰소리로 호통을 친 적이 많았다 카더라 결국 5대 두목에 의해  부두목은 호텔 커피숍에서 암살 당함.

그걸 보고 6대 두목인 츠카사가 5대 두목을 협박.  6대 쿠미쵸를 강제적으로 쟁취한 것임

그리고 6대 때도 부두목 애꾸가 모든 일을 저지르며, 야마구치 구미, 고베 야마구치구미 이렇게 2개로 분열  된 것도 애 땜에 그렇게 된 것임

애꾸가 파워가 더 쎔, 별명도 깡패 중에 깡패, 애가 재일이란 썰이 있음, 야쿠자 검색하다 보면 눈 한짝이 거의 감긴 사람이 나올끼야 걔가 애임.




시리즈알아도 쓸모는 없는 게임잡학이야기
야쿠자는 정말로 일본의 절반을 지배하고 있나?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8084584&memberNo=11878364


일본 야쿠자 조직21개중 5개 재일교포가 두목
https://theqoo.net/square/157749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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