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미대생 이야기: 고통의 길을 선택하는 것 또한 중요한 자유이다

 

고통의 길을 선택하는 것 또한 중요한 자유이다.  

 

 

작년 상담을 할 때의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해본다.

 

미대생이었다. 고민인 즉 어려서부터 방면에 소질이 좀 있다 보니 미대에 진학했고 또 대학원까지 다니고는 있지만 앞길이 막막하다는 것이었다. 운세를 척 보니 소위 ‘좋은 날’ 오려면 한창 걸릴 판국이었다.

 

자넨 무엇이 고민인가 한 번 편히 털어놓아보시게나, 했다. 그랬더니 그림 그리는 일 자체는 너무 좋은데 먹고 살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었다. 예상한 바였다.

 

얘기했다. 그림에 대해 전망이 있든 없든 세상에 자유로운 이는 없어, 하지만 뭘 해도 먹고 살 순 있는 세상이란 건 자네도 알겠지, 다만 고생을 좀 해야 하겠지, 그림을 통해 돈을 잘 벌고 유명해진다? 참 어려운 얘기이지.

 

그런데 자네 운의 흐름을 딱 보니 그림을 계속 하든 딴 길을 찾든 어차피 주어진 ‘고생의 시간적 분량’을 피할 순 없다네, 그럴 바엔 차라리 좋아하는 그림을 하면서 고생을 제대로 해보는 것도 나빠 보이진 않는데, 내 생각이지만 말이야. 물론 딴 길을 찾아도 그 또한 괜찮아.

 

문제는 어떤 것을 택하든 모두 나쁘지 않다는 점이야. 우리가 무서운 것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사실 그 자체야. 뭘 해도 자네가 주어진 분량만큼의 고생을 소화해야 할 터인데 그렇다면 이제 와서 새롭게 선택할 필요 자체가 없잖아! 그냥 좋은 것 하면서 고생을 지속하는 게 좋지 않을까?

 

사람들은 흔히 ‘빼박’을 무서워하지만 실은 빼박이야말로 선택이 없잖아, 오히려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면에서 그게 바로 길게 보면 성공의 지름길이거든. 살다 보면 알게 되지. 성공하려면 사실 빼박의 외길을 가야만 해.

 

자네가 하는 고민, 이 세상 거의 모든 미대생들이 하는 공통된 고민이잖아. 집안에 돈이 많아서 나중에 갤러리 하나 우아하게 운영할 정도가 아니라면 그렇잖아.

 

사실은 다 괜찮아.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네의 自由(자유)란 거지. 망해도 내가 선택해서 망할 것이고 적당히 살아도 그 또한 자신의 선택이니 나쁠 게 없어. 중요한 것은 칼날을 쥘 것이 아니라 칼자루를 쥐어야 한다는 얘기야.

 

다시 말해서 선택을 강요당하지 말라는 얘기일세, 자네가 선택할 것이지 선택을 강요당하지는 말라는 얘기, 무슨 말인지 감이 가시는가? 그런데 사람들은 고생할 것이 무서워서 선택을 강요당해, 그건 폭력이야, 그게 진짜 문제야.

 

괴로움으로부터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기꺼이 괴로운 길을 선택할 자유 또한 어쩌면 그게 더 중요할 수도 있는 게 인생이야, 난 그렇게 생각하네.

 

그렇게 말했더니 그 학생은 그림의 길을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진짜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요? 하는 걱정이 든다고 했다. 이에 답하길 자네가 선택한 길이니 감당할 수 있을 거야, 적어도 강요당한 것은 아니잖아!

 

그 이후 그 미대생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나 호호당은 알지 못한다. 그저 한동안 어려운 길을 갈 것이란 점만 알고 있다.

 

상담이 끝나서 되돌아 나가는 그 친구의 모습을 보다가 문득 작고한 시인 오규원의 시 구절이 스쳐갔다. “詩(시)는 敗北(패배)이니 승리는 오해 말라”는 구절. 내가 시를 쓸 땐 이미 승리에 대한 미련, 인생의 부귀영화 따윈 다 저버리고 시작했으니 쓸데없이 나더러 패배한 글쟁이라고 보진 말라는 얘기이다. 너희들이 패배자라고 낙인을 찍기 전에 내 스스로 패배의 길을 선택했다는 말이다. 얼마나 당당한가, 적극적 포기의 길을 택한 시인이었다.

 

삶을 망쳐도 좋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또 선택을 하다 보면 그 결과 참으로 어렵게 될 때가 있다. 그럴 경우 내가 아니라 주변 사람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지만 그런다고 한들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결국 결과는 스스로의 몫이다.

 

출처: https://hohodang.tistory.com/1398 [희희락락호호당: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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