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철: 일제강점기를 로스차일드가 도왔다? / 이 영상의 좀 부족한 점은 러일전쟁 때 단순히 일본이 영국으로부터 항공모함 기술을 전수받은 게 아니라, 로스차일드가 제이콥 쉬프를 통해 일본 국채의 50%나 사줬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은 점 + 로스차일드와 동양척식주식회사, 남만주철도회사, 미쓰비시, 미쓰이 등의 관계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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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를 로스차일드가 도왔다?ㅣ이효석아카데미 오리지날, 소현철 상지대학교 교수
영일 동맹의 체결과 일본의 부상
영일 동맹의 배경: 의화단 운동 이후 러시아의 만주 파병에 자극받은 영국은 일본과 동맹을 맺었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영광스러운 고립' 정책을 유지하며 동맹을 맺지 않았으나, 러시아 견제를 위해 일본과의 동맹을 결정하였다.
제1차 영일 동맹 (1902년 1월): 영국은 청나라에 대한 특수 이익을, 일본은 조선에 대한 특수 이익을 상호 확인하였다.
제2차 영일 동맹 (1904년 8월): 러일 전쟁 중 일본이 동해 해전에서 러시아 발트 함대를 격파한 후 체결되었다.
영국은 인도에 대한 지배권을, 일본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이는 제국주의 시대 강대국들이 약소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제3차 영일 동맹 (1911년 7월): 10년간 연장되었으며, 이 동맹으로 일본은 제1차 세계 대전 때 연합국 편에 참전하였다.
일본 경제의 폭발적 성장: 일본은 1차 세계 대전 중 영국과 프랑스에 막대한 군수 물자를 지원하여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
전쟁 전 채무국이었던 일본은 1차 대전 이후 채권국으로 전환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전쟁의 주요 전장이 유럽이었기 때문에 일본은 파괴를 피하고 군수 물자 수출로 벼락부자가 많이 나왔다.
영일 동맹의 결과:
일본은 아시아의 신흥 강대국이 되었고,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였다.
영국의 도움으로 일본의 해군력이 업그레이드되었고, 영국으로부터 항공모함 기술을 전수받아 2차 세계 대전 진주만 기습에 활용하였다.
러일 전쟁 당시 영국으로부터 구매한 최신 함정으로 러시아 발트 함대를 격파하였다.
2차 세계 대전 초기 일본의 항공모함 숫자는 미국보다 많았다.
4. 러일 전쟁의 전개와 결과
러일 전쟁의 주요 전투
인천 부두 기습: 1904년 2월, 일본군이 인천 부두에 있던 러시아 함대를 기습 공격하여 격파하였다.
뤼순 및 봉천 전투: 육군 전투로, 일본군이 러시아군에 비해 고전하였다.
러시아군은 시베리아 횡단 철도 미완공으로 보급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일본군도 봉천 전투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러시아 발트 함대의 이동: 보급 문제에 직면한 러시아 니콜라이 2세는 발트 함대를 파견하였다.
1904년 10월 출발하여 약 8개월 만에 대마도에 도착하였다.
영국이 수에즈 운하 통과를 막아 발트 함대는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오는 먼 길을 택해야 했다.
장거리 항해로 지친 발트 함대는 영국으로부터 구매한 함정과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의 정보력을 바탕으로 한 일본 해군에 의해 격파되었다.
전쟁의 전환점: 뤼순과 봉천 전투에서 일본군이 고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발트 함대 격파는 영국의 도움을 받은 일본의 승리로 이어졌다.
포츠머스 강화 조약 (1905년)
중재자: 미국 뉴햄프셔주 포츠머스에서 미국이 중재하여 러시아와 일본이 강화 조약을 맺었다.
배상금: 러시아는 일본에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았다.
이는 청일 전쟁 때 청나라가 막대한 배상금과 영토를 할양한 것과 대조적이며, 일본이 러일 전쟁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주요 내용:
러시아는 일본의 조선 지배권을 인정하였다.
남사할린을 일본에 할양하였다.
장춘과 뤼순 철도를 일본에 양도하였다.
가쓰라-태프트 밀약: 포츠머스 강화 조약 직전 미국과 일본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미국은 필리핀 지배권을, 일본은 조선 지배권을 상호 묵인하였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이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강대국의 외교 방식: 강대국은 도덕보다는 힘과 실용주의에 기반한 외교를 펼치며, 약소국은 언제든지 희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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