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똥군기가 불러온 폴란드 대통령 전용기 추락 사건 (2010) 교신내용; 폴란드 대통령, 공군 총사령관의 죽음은 자업자득이나 그 외 인물들은 불쌍하게 되었다; 국가 수뇌부가 이 사고로 한 방에 쓸려나갔다. 특히 폴란드군은 이 사고로 육해공 3군의 사령관과 총참모장을 한 번에 잃고 말았다. 이런 사례는 세계사에서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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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설명) 카틴 학살 70주년을 맞아 폴란드 대통령 및 주요 정부요인들이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스몰렌스크 공항으로 가던 도중이었음.
그날 착륙할 공항의 상황은 가시거리 500미터, 안개 탓에 착륙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
기장은 민스크 공항으로 회항을 권유하나
이전에 대통령 전용기를 회항시켰다 대통령에게 면박을 받은바 있었던 공군사령관은 조종실 내까지 들어와 간섭하기 시작하는데...
기장 : 사령관님. 안개가 꼈습니다. 지금 상황에 착륙은 불가합니다. 접근시도는 하겠지만 의미가 없을 겁니다.
결정을 해주십시오.
공군사령관 : 계속 시도해.
기장 : 계속 시도하기에는 연료가 부족합니다. 예비 연료는 30분 이내입니다.
공군사령관 : 이거 문제구만!
기장 : 대체 공항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고위공직자 : 대체 공항은 어디죠?
기장 : 비쳅스크나 민스크가 있습니다.
고위공직자 : 그럼 민스크로 가면 되겠네. 사령관님 돌아가죠.
[잠깐 나감]
부기장 : 얼마나 하강할까? 600?
기장 : 아뇨. 745
부기장 : 얼마?
기장 : 745. 공군기에게 다시 물어보죠. 구름이 아직 많은지.
부기장 : 다시 연락해 볼께.
[동행한 공군기에게 상황을 체크함]
폴란드101 항법사 : 아르투르. 아직 주파수에 있습니까?
폴란드공군 044 : 네. 있습니다.
부기장 : 아르투르에게 구름이 얼마나 짙은지 물어봐.
폴란드공군 044 : 한 400, 500정도 됩니다.
항법사 : 이 방향 계속 유지합니까?
기장 : 아니.
항법사 : 400에서 500이래요.
부기장 : 구름 두께도 물어봐.
폴란드공군 044 : 주파수에 있습니까?
폴란드101 부기장 : 구름 두께가 4~500미터나 된다는 거야?
폴란드공군 044 : 500미터 높이에서도 구름 위 였어요.
폴란드101 부기장 : 아. 500미터 위에도 구름이라. 좋아. 좋아. 고마워.
기장 : 러시아 쪽이 착륙했는지도 물어봐요.
폴란드101 부기장 : 러시아 비행기는 착륙했어?
폴란드공군 044 : 일류신기가 착륙 두 번 시도하다가 회항한 것 같습니다.
폴란드101 부기장 : 그럴만 하지. 고마워.
부기장 : 들었지?
기장 : 끝내주네요.
항법사 : 불행히도 공항에 계기 착륙 설비가 없어요. 259방향. ARK 준비 완료. 오토스로틀.
폴란드101 기장 : 코르사즈. 폴란드 101입니다. 1500 유지하고 있습니다.
코르사즈 관제 : 폴란드 101. 기압은 745. 500미터로 하강하세요.
폴란드101 기장 : 기압 745. 500으로 하강.
[공군 사령관이 다시 조종석으로 들어와 한 마디 하고 나간다.]
공군사령관 : 아직 어떻게 할지 대통령님의 결정이 없네.
부기장 : 이 부분이 최악인데, 여긴 구름, 여긴 안개...
항법사 : 이런 썅. 어떻게 할지 말을 안해줬어. 왜 승객들이 제 자리에 안 있는거야?
기장 : 자, 이제 방법이 없으니 망하러 가 볼까요.
항공기관사 : 방법이 없다...
부기장 : 고문할 준비 되셨겠다?
기장 : 바로 그겁니다.
스몰렌스크 관제 : 폴란드 101. 고 어라운드 한계 고도는 백 미터입니다.
[공군사령관 다시 입갤]
공군사령관 : 중요한 건 계속 시도해야 한단 거야.
기장 : 갑시다!!
부기장 : 이런 씨발...
항법사 : 썅. 제발 그만 좀...
기장 : 300.
공군 사령관 : 예를 들어!
항법사 : 그러니까 제발!
[공군 사령관이 항법사 자리에서 직접 기체 조작을 한다.]
항법사 : 스태빌라이저!!! 으으... (울먹인다.)
공군 사령관 : 움직이지 마!!! 빨리!
항법사 : 감사합니다.
항공기관사 : 누군가 실수하는거야.
부기장 : 고 어라운드(회항) 하라네요.
기장 : 안돼요. 책임지게 될 걸요.
공군 사령관 : 생각해!!!!!!!
부기장 : 380미터.
항법사 : 300입니다.
신원불상 음성 : 정확할 필요 없어.
공군 사령관 : 과감하게 해.
항법사 : 고도 200
항공기관사 : 안될거야. 멍청이.
부기장 : 서두르지 마. 고 어라운드 합시다.
항법사 : 고도 90, 80... 70, 60
신원불상 음성 : 좋아.
코르사즈 관제 : 폴란드 101. 비행계기 확인하세요.
항법사 : 30
코르사즈 관제 : 폴란드 101. 고 어라운드 하세요.
이후 추락.
이날 폴란드 대통령, 영부인은 물론 육해공 사령관, 참모총장 및 정게의 유력인사들이 일시에 사망했다.
(조종사들의 마지막 비명소리를 담은 영상, 2분 53초부터.)
당시 폴란드 대통령 레흐 카친스키와 그의 영부인, 전 폴란드 대통령이자 최후의 폴란드 망명정부 대통령인 리샤르트 카초로프스키, 각 육해공군의 사령관들과 위원장들 등 폴란드 정부 각료 대부분이 사망한 사고다.
101 | |
![]() | |
사고 1일 전 체코 프라하 바츨라프 하벨 공항에서 촬영된 101 | |
등록번호 | 101 |
제조사 | |
기종 | |
기령 | 19.9년 |
생산지 | |
최초 비행일 | |
최초 인도 항공사 | |
폴란드 공군 도입일 |
해당 사고 기체의 정보는 Planspotter에서 참조.
해당 비행기는 기령 19년의 오래된 기체로 2009년 12월 러시아 사마라 주 아비아코르 항공정비공장에서 점검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때 비행기 엔진을 수리하고 전자항법장비와 실내 장식을 교체해 더 대통령 전용기다운 모습을 갖추었고 콜사인은 PLF 101이었다.
한국어 CVR |
레흐 카친스키 당시 폴란드 대통령은 카틴 학살 70주기 추모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투폴레프제 Tu-154에 탑승해 폴란드 바르샤바 쇼팽 공항을 떠나 러시아의 스몰렌스크로 가는 중이었다. 비행기에는 대통령 외에도 영부인과 비서실장, 폴란드 중앙은행 총재, 폴란드군 총참모장 및 각 군의 총사령관, 외무차관, 야당 대선 후보 2명 등 고위 관계자 다수가 탑승했다.
Będziemy próbować do skutku.
계속 시도하게.지상 충돌 14분 36초 전, 안제이 브와시크(폴란드 공군사령관)[2]
비행기가 기지에 착륙을 준비할 당시 주위엔 안개가 자욱해 시야가 500m밖에 안 되었다. 기지에는 계기착륙장치가 없어서 아침부터 폐쇄된 상태였고 러시아 공군 관계자는 지상관제탑에서 하강속도를 줄이고 모스크바나 민스크로 회항하도록 계속해서 요구했으나[3] 조종사는 무시하고 대통령이라는 높으신 분이 탑승한 만큼 제대로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과 책임감[4] 때문에 4번이나 착륙을 억지로 시도했다.[5]
더군다나 카친스키 대통령은 과거 조지아를 방문할 때도 공항의 기상상태가 나쁨에도 불구하고 회항하려던 조종사에게 착륙 명령을 내린 적이 있었다. 이때 조종사는 안전을 위해 다른 공항으로 회항했고 카친스키 대통령은 자동차로 조지아를 방문해야 했는데, 이후 인터뷰에서 은근히 조종사를 비판했으며 아예 조종사를 명령불복종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도록 했다.# 선례가 있는 만큼 조종사가 느낄 중압감이 더했을 것이다. 게다가 추락 10여 분 전부터 공군 사령관이 조종석에 들어와서 착륙을 시도하라고 조종사들을 갈구며 몰아붙이고 있었다. 잘 들어 보면 사고 몇 분 전부터 계속 압박에 시달리는 조종사들이 조종석에 오면 안 되는 사람들이 왜 자꾸 오는 거냐고 말하기도 하고 나중에는 울먹이는 소리나 욕설 등도 들린다. 심지어 추락 몇 분 전에는 조종사가 자신보다 훨씬 높은 사령관과 언쟁 수준의 대화를 하기도 했다.[6] 그래서 무조건적으로 조종사의 과실이라고는 하기 힘들다. 실제로 조종사들이 압력을 받는 꼴을 듣다 못한 러시아 공군 관제사가 폴란드 공군 사령관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교신 내용
관제사가 조종사에게 "기상조건이 나빠서 비행기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마지막으로 말하자 조종사는 "접근 시도 후 기상조건이 안 되면 2번째 선회 비행을 하겠다."고 답신했다. 문제는 기상조건이 굉장히 나쁜 데다 활주로 주변의 나무가 무선교신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이미 관제사가 비행기가 정상 항로보다 왼쪽으로 125m나 벗어난 상태라고 통보했고 공항 활주로 표시등의 30%가 고장나 있는 등 여러모로 착륙하기엔 힘든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도 조종사는 지상 접근 경보장치의 경고음인 TERRAIN과 PULL UP까지 무시해 가면서 착륙을 시도했다.[7]
무리한 착륙 시도를 반복한 지 약 15분이 지난 오전 10시 56분경 비행기는 왼쪽 날개가 나무와 부딪히면서 크게 파손된 직후 공항으로부터 약 1.5km 떨어진 숲속에 그대로 추락하였다. 충돌 시점에서 러시아 관제사가 복행을 지시했는데 해당 지시를 받았을 때는 이미 항공기가 파손되던 상황이었다. 러시아 관제사가 폴란드 대통령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조금만 더 빨리 복행을 지시했다면 이것을 명분 삼아서 조종사들이 복행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결국 항공기는 추락하고 말았고 이후 구조대가 도착해 현장을 수색하였으나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정치적인 결론"이라고 비판했는데 실제로 사건 이후 폴란드에서 "러시아에서 정치적인 의도를 가장해 고의로 일으킨 사건"이라는 음모론이 적잖이 나와서 러시아도 이 사건에 대해 조금 민감하기 때문이다. 다만 CVR에서 들을 수 있는 격발성 산탄총 음성으로 의심되는 음모론성 의혹들은 밝혀진 게 없기도 하고 이 사건으로 사망한 당시 폴란드 대통령 레흐 카친스키의 형 야로스와프 카친스키가 PiS의 당수 자리에 오른 등 정치적인 요소도 많이 끼어서 이 사건은 폴란드의 오랜 떡밥이 되었다.
만약 테러였다면 굳이 착륙 시도 중 터지게 한다는 불확실한 방법을 사용하기란 비효율적이기에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8] 마침 폭탄 테러 직전에 조종실에서 군 최고위급을 상대로 욕설이 섞인 말다툼이 벌어질 정도로 비행 상황이 비정상적이었다는 우연도 테러설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결국 비행기 블랙박스 공개로 폴란드측의 무리한 시도가 드러나면서 폴란드가 주장한 음모론은 힘을 잃었다.(블랙박스의 일부 대화 내용)
심지어 2015년에는 카친스키 전 대통령의 당인 PiS가 집권하자 러시아 테러설을 소재로 한 "스몰렌스크(Smoleńsk)"[9]라는 영화가 개봉해 극장에서 장기 상영에 돌입했으나 2016년에 복원된 블랙박스가 공개되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결국 이 사건은 정치적 갈등이 치열한 상황에 예측 불가한 사고가 터졌을 때 음모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확산되며 프로파간다에 이용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벌어지자 우크라이나 지원과 반러 전선의 선봉에 나선 폴란드에서는 다시 한 번 이 사고가 러시아의 암살 테러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러시아와 이 사고의 관련성이 없으며 오히려 비행기 탑승자들 쪽의 자업자득이라는 결론이 도출된 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전쟁 상황을 이용하여 반러 감정을 더 자극하여 정치적으로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속내가 뻔히 보인다.
해외에는 "비행기 한 대 떨구는데 몇 명의 폴란드인들이 필요할까?(how many Poles does it take to crash an airplane?)"라는 조소가 있는데 아마 이 사건에서 유래한 듯하다.


기장과 부기장을 포함한 승무원 전원은 물론이고 카친스키 대통령과 영부인, 여야 정치인들, 육해공군 사령관과 총참모장을 비롯한 군 장성들 모두 사망했다. 한 마디로 대통령과 영부인, 그 수행원으로 동승한 폴란드 고위급 정부인사들이 한순간에 몰살당했다. 믿을 수 없는 비보에 큰 충격을 받은 폴란드 정부는 일주일의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이 사고로 사망한 주요 인물만 따져봐도 다음과 같다.
- 레흐 카친스키(Lech Kaczyński): 폴란드 대통령
- 마리아 카친스카(Maria Kaczyńska): 폴란드 대통령 영부인
- 리샤르트 카초로프스키(Ryszard Kaczorowski): 전 대통령(폴란드 망명 정부의 마지막 대통령)
- 크지시토프 푸트라(Krzysztof Jakub Putra): 폴란드 하원 부대변인
- 예지 슈마이진스키(Jerzy Andrzej Szmajdziński): 폴란드 하원 부의장
- 크리스티나 보헤네크(Krystyna Maria Bochenek): 폴란드 상원 부대변인
- 프셰미스와프 고시에프스키(Przemysław Gosiewski): 전 폴란드 부총리
- 마치에이 프와진스키(Maciej Płażyński): 전 폴란드 하원 의장
- 야누시 쿠르티카(Janusz Marek Kurtyka): 폴란드 국립기념원[10] 원장
- 스와보미르 스크시페크(Sławomir Stanisław Skrzypek): 폴란드국립은행 총재
- 그라지나 겡시츠카(Grażyna Gęsicka): 폴란드 지역개발부 장관
- 스타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Stanisław Jerzy Komorowski): 폴란드 국방부 차관
- 체스와프 치빈스키(Czesław Justyn Cywiński): 폴란드 국내군병사협회 회장
- 피오트르 누로프스키(Piotr Jan Nurowski): 폴란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 전 테니스 국가대표 선수
- 스테판 멜라크(Stefan Melak): 폴란드 카틴위원회 의장
- 안나 발렌티노비치(Anna Walentynowicz): 전 노동운동가(공산주의 정권 시절 독립자치노동조합 '연대' 공동창립자 중 한 명)
그야말로 국가 수뇌부가 이 사고로 한 방에 쓸려나갔다. 특히 폴란드군은 이 사고로 육해공 3군의 사령관과 총참모장을 한 번에 잃고 말았다. 이런 사례는 세계사에서 드물다.[13]
공교롭게도 카틴 숲에서 학살당한 폴란드인들도 폴란드의 고급 장교와 부사관, 지식인, 기술자 등 폴란드를 이끄는 엘리트층이었다. 방법과 시기, 규모가 다르지만 카틴의 비극이 70년 후에 그대로 재연되었다는 말은 틀린 말이 절대 아니다.
법과 정의(Prawo i Sprawiedliwość) 소속 카친스키 대통령이 사망하자 당시 최대 야당이자 하원 다수당이었던 시민 연단(Platforma Obywatelska) 소속의 브로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Bronisław Komorowski) 하원의장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으며 조기 대선을 거쳐 후임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2015년까지 국정을 운영했다.
카틴 학살의 역사적 배경도 그렇고 마침 사고가 일어난 시기가 미국의 동유럽 MD 배치를 둘러싸고 러시아-폴란드 관계가 상당히 불편해진 때라서 러시아가 폴란드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손을 썼다는 음모론이 등장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14]은 이례적으로 사고 수습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으며 무려 자국 방송으로 카틴 학살을 다룬 폴란드 영화 《카틴》의 방영을 지시할 정도였다. 러시아가 이렇게 전세계가 주목할 방식으로 대놓고 사고를 칠 이유는 없기도 하고 해서 음모론이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 2016년에 온전히 복구된 블랙박스 기록이 공개되자 폴란드 정부가 지원한 러시아 음모론을 다룬 프로파간다식 영화가 소리소문 없이 내려가는 등 사실상 음모론이 완전히 사장되었다.
이 사건을 통해 카틴 학살이라는 역사를 처음 알게 된 일반인도 많으며 유로 2012에서 러시아 훌리건들과 폴란드 훌리건들이 대립하면서 집단으로 난투극을 벌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16년 재조사를 명목으로 크라쿠프 바벨성 지하묘지에 안장된 대통령 부부와 사고 사망자들의 유해 발굴에 착수했다.
2017년 12월 17일에 방영된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이 사고를 다루었다.
2019년 7월 20일 방영된 차트를 달리는 남자[15] 141회 풀리지 않는 의혹 편에서 의문의 교통사고 랭킹 1위를 차지했다.
2025년 6월 1일 서프라이즈에서 한 번 더 다루었으며 위 차트를 달리는 남자처럼 러시아 책임론을 다시 주장했다.
전술한 대로 2018년 재조사 결과 폭발이었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발표 이후 러시아에 강경 항의를 하는 등 등 폴란드의 후속 조치가 거의 없었다. 재조사 결과가 다분히 정치적일 수 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갑작스럽게 러시아 배후설이라는 음모론을 꺼냈다.# 러시아는 이를 깔끔하게 무시했다.
현재로선 가장 확실한 증거는 당시의 기상상황과 블랙박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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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생일사건명1939년 8월 28일22
- 발생일사건명1926년 6월 29일411925년 4월 30일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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