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삼한, 백제, 신라, 발해를 자국의 역사로 기록하였지만, 고구려, 고려, 조선은 제외했던 만주족들; 고대에는 지금과는 역사인식이 많이 달랐다; 만주인과 일본인, 한국인의 유전자가 세계에서 가장 비슷하다

 

2. 상세[편집]

흠정만주원류고는 '만주원류고'라는 말마따나 만주족의 원류를 고찰해보는 책이다.

당시 건륭제는 한족 역사가들이 만주에 대한 이해가 얕아서 고증[1] 제대로 못하는 현실에 불만을 품었다. 그리하여 여러 명성 있는 대학사들을 모아 문헌들을 모으게 하고, 수집한 문헌들을 근거로 만주족들이 옛부터 생각해오던 자신들의 뿌리에 대한 주장들을 대학사들이 평가하게 하였다. 건륭제는 만주인의 뿌리 의식을 최대한 고증하여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만주인의 유산을 입증하여 청나라 통치의 정통성을 강조하기를 희망했다.

내용은 기본적으로 여진, 만주인이 시대별로 숙신부여읍루삼한물길백제신라말갈발해여진(건주, 완안)으로 그 계통이 이어지고, 청나라의 건국은 1천여 년 동안 이어져온 계통의 고유한 정치, 문화적 발전과 진보의 결과로 설명한다. 물론 고고학 등이 발전하지 못한 당대 시대상 몇몇 설은 오늘날 신뢰받지 못하는 한계도 있지만, 당시 피지배층이던 한족중심사관에서 벗어나 만주인 지배층의 시각에서 편찬한 사서라는 점은 의의가 있다.
 

4. 한국사 관련[편집]

특이하게도 이 책에선 신라백제까지 만주족의 기원과 연결짓는 반면[2], 거란이나 선비·몽고몽골계 부족이나 고조선·고구려에 대한 내용은 있지 않다. 청나라가 시작된 만주 한복판에 자리잡았던 고조선과 고구려가 안나온다는 점은 좀 특이하다. 물론 그 이유는 따져보면 단순한데, 전통적으로 중국 지역에서 한반도 왕국은 '고려•조선'이라고 관습적으로 불러왔기 때문에, 만주원류고에 이 두 나라를 다뤘다간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엔 실제로 조선이 존재했다. 조선이라는 이름의 유래였던 고조선은 단지 시대를 구분짓기 위해 고조선이라 부른 것 뿐이며 원래 고조선의 이름은 조선이다. 후대 사람들이 시대를 구분하기 위해 고조선, 단군조선, 위만조선 등의 표현을 만들어 낸 것이다. 또 바로 전 왕조는 고려이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으로 바뀐 뒤에도 이웃나라들은 계속 고려라고 부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3] 그래서 조선의 전신이 고려라는 건 명백하게 인지되고 있었다.

그러니 그 고려의 유래인 고구려를 다루기가 껄끄러웠을 것이다. 고구려는 광개토대왕이나 장수왕 시기에 국호가 '고려'로 바뀌었다는 게 정설이다. 장수왕 때부터 중국 사서에 고구려가 아닌 고려로 기재되고 충주 고구려비처럼 당대 고구려인이 세운 비석에도 국호가 떡 하니 고려로 기재돼 있다. 그래서 당대 중국인들은 고주몽이 세운 고구려와 왕건이 세운 고려[4]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진 한 나라인데 단지 왕의 성씨가 고씨에서 왕씨로 교체된 걸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려에 사신으로 왔던 송나라 사람 서긍(徐兢)이 쓴 고려도경, 청나라 때 편찬된 명사에도 조선의 전신인 고려가 고씨에서 왕씨 왕조로 교체되었다고 잘못 적어 놨을 정도로 이 관념은 매우 뿌리가 깊었다. 따라서 청나라가 고구려를 만주족의 원류로 거론하면 자연히 당대에 조선을 연상시키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 중국인들이 이웃나라 역사에 대한 무지로 인해 조선과 역사적으로 이어진다는 걸 잘 몰랐던 백제나 신라를 거론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즉 고조선과 고구려를 책 내용에 적어버리면 조선과 청나라 자신들의 서열이 뒤집히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다만 고조선의 경우 선비족 모용외조선공이 된 기록이 있어[5] 고조선을 선비족의 뿌리로 봤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한편, 여진족의 조상격인 말갈족이 고구려에게 복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는 설도 있다. 즉, 고조선과 고구려를 포함시켰다가는 문제가 생기고, 만주사를 청 왕조 입맛대로 풀어나갈 수 없기 때문에 배제했다는 것이 논리적으론 그럴듯해 보인다.
 
 
일단 《고려도경》에서 고려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이런 구절들이 있다.
  •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가 아니라 정말로 고구려에서 그대로 이어져내려온 같은 나라라고 착각했다. 그래서 고려의 역사와 관직에 대한 설명이 고구려의 것과 혼재되어 오류가 많다. 현대에는 고구려와 고려를 구분해 부르지만, 사실 고구려는 장수왕 때 국호를 '고구려'에서 '고려'로 바꿨다는 것이 정설이다. 태조 왕건은 그 국호를 그대로 가져다 고려를 건국한 것이다. 그러니 정보의 유통이 원활하지 않았던 고대와 중세에는 착각할 만도 하다. 그리고 통일신라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여 백제와 신라는 고려의 지방정권이었다는 식으로 기술했다.
    이런 혼동은 중국이나 일본의 여러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전근대에는 외국인이 고려가 고씨에서 왕씨로 바뀌었다는 정도만 알아도 한국사를 비교적 많이 아는 것이었다. 나중에 몽골 관리인 사천택이 '너희 나라에서는 재상을 막리지라 부른다지?' 라고 물어봐서 고려 사신 이장용(李藏用)이 뻘쭘해한 일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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