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등장한 이유: 1933년 3살 짜리 굴뚝 청소부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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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 청소부 아이들 이른 새벽, 5살도 안 된 아이들이 "Soot-O! / Sweep-O!" 를 외치며 일거리를 받는다. 보통 한 아이가 하루에 4~5개 굴뚝을 맡아 작업했다. 1666년 일어난 "런던 대화재" 이후, 건축 규정과 난방 연료가 석탄 중심으로 바뀌면서 굴뚝이 좁고 굴곡이 많은 구조로 설계되었다. 때문에 성인은 굴뚝 안으로 못 들어가서 작고 마른 아이가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굴뚝이 너무 좁아 헐벗은 채 무릎과 팔꿈치, 등으로 몸을 비집으며 올라갔다. 손엔 쇠 스크레이퍼와 소형 브러시를 들고 굴뚝 안의 그을은 부분을 긁어냈다. 진짜 나쁜 고용인들은 아이가 일을 잘 못하면 아래서 짚불을 피워 연기와 열기가 올라가게 하는 가혹행위를 하기도 했다. 꼭대기까지 작업을 마치면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려왔고, 고용인은 그을음을 자루에 담아 회수했다. 이걸 농가나 정원에 비료로 팔아 부수입을 얻기도 했다. 이 시절 아이들은 대개 고아나 못사는 집이 많았고, 성인 업주들이 아이들을 돈으로 매입하여 데려와 키우기도 했다. 업주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최소한의 의식주를 제공하는 대신 아이들은 노동을 했던 것이다. 또한, 굴뚝 청소를 하기 위한 막대와 브러시식 기계 청소 도구가 늦게 보급되기 시작하며, 그전까지 아이들이 직접 위험한 굴뚝 청소를 해야만 했다. 아이들의 직업병과 위험 어린 아이들이 굴뚝에 끼어 질식해 죽거나, 가열된 굴뚝 안에서 화상으로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경우에 따라 두 번째 아이가 먼저 들어간 아이를 구조하려다 함께 희생된 기록도 있다. 또한, 굴뚝 청소에 어릴 때부터 노출된 청년과 성인들에겐 "음낭 편평상피암"이 다수 발생했다. 이후, 그을음 추출물의 발암성도 확인되었다. 그래서 얼마 주는데? 충격적이게도 돈을 거의 못 받았다고 전해진다. 18~19세기 실태조사(Henry Mayhew)에 따르면 아이들이 노동비를 받지 않고, 숙식과 의복만 제공받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임금은 성인 직원(저니맨)에게 주어졌고, 아이는 여주인에게 음식을 받거나 부스러기와 술같은 남은 찌끄래기만 받았다는 증언이 있다. 1930년대 이후 변화 1930년대 이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아동 노동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되기 시작했지만, 가난과 느슨한 법 집행 탓에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해야만 했다. 이는 인간을 생명이나 인격이 아닌 그저 "도구"로 취급한 첫 산업사회적 사고의 전형이다. 작고 약한 존재일수록 법과 사회가 먼저 보호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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