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중국 공산당은 과거 자기들과 싸웠던 국민당을 밀고 있음. 38. 중국 공산당과 대만 국민당 모두 자기가 중국을 통일시키겠다고 하고 있으니, 하나의 중국이라는 모토는 동일한것임. 39. 국민당이 정권을 잡았을때는 중국과 큰 마찰이 없고, 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이 정권을 잡으면 중국과 문제가 생기는 이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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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중국이 대만문제로 강하게 충돌하고 있어서, 상황을 정리해 봅니다.
1. 대만의 원주민은 중국인이 아니었음.
2. 대만에는 이스터섬의 모아이로 유명한 태평양 원주민인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이 살고 있었음.
3. 대만을 처음 식민지로 삼은 곳은 네덜란드 였음.
4. 1624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명나라가 교역을 허락하지 않자, 현재 타이난지역(아래쪽)에 요새를 세우게 됨.
5.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타이완에 본거지를 두고 중국으로부터 비단,도자기등을 수입해서 일본 및 유럽으로 수출을 하게 됨.
6. 1626년에는 스페인이 대만에 들어와 단수이 지역(위쪽)에 정착하게 됨.
7. 대만을 점령한 네덜란드와 스페인간 전쟁이 일어났고, 네덜란드가 승리해서 스페인은 대만을 떠나게 됨.
8. 1644년 3월, 중국 명나라가 청나라에게 멸망을 함.
9. 명나라 잔존세력들은 남경(난징)을 중심으로 명나라를 이어 나갔는데, 이들의 중심에는 중국 해적의 우두머리인 정지룡이 있었음.
10. 정지룡은 무역상에 고용되어 일본에 갔는데, 큐슈의 사무라이 시치자에몬의 접대를 받았고, 그의 딸인 마쓰를 임신시킴.
11. 시치자에몬 집안은 왜구라고 부르던 해적집안이었음.
12. 정지룡을 고용한 무역상은 정지룡에게 부하의 딸과 결혼을 요구했고, 정지룡은 임신한 마쓰를 두고 무역상 부하의 딸과 결혼을 함.
13. 마쓰는 일본에서 정성공을 혼자 키웠고, 정성공이 7세가 되자 정지룡이 정성공을 중국으로 데리고 감.
14. 정성공이 10세가 되자, 정지룡은 마쓰와 정식 결혼을 했고, 마쓰는 중국으로 건너가 정착하게 됨.
15. 정지룡과 아들 정성공은 반청복명이라는 구호로 명나라 부흥운동을 벌였는데, 한때는 수도권까지 위협하며 강한 세력을 자랑함.
16. 청은 해금령을 실시하며, 정지룡 부자의 힘을 뺐는데, 해금령은 중국 해안을 내륙 50km까지 완전히 비우는 전략이었음.
17. 청나라 정부는 중국 해안 50km안에 있는 사람을 내륙으로 내쫒고,선박,주택,논밭등 모든 것을 불태우고, 파괴해 버림.
18. 해적이었던 정지룡 부자는 해금령으로 내륙의 물자공급을 못받다 보니 세력이 위축되기 시작함.
19, 정지룡은 청에 사로잡혀 죽었고, 마쓰는 성루에 올라 싸우다가, 단도로 자기 목을 찌르고 해자로 몸을 던졌다고 함.
20. 정지룡의 아들 정성공과 잔존병력들은 대만에서 힘을 키운뒤 본토를 다시 공격한다는 생각으로 대만으로 이동함.
21. 1662년, 정성공은 대만 남부 젤란디아 요새에서 네덜란드군과 전쟁을 시작함.
22. 청나라에 밀려 대만으로 넘어왔지만, 정성공에게는 수백척의 배와 2만 5천 명의 병력이 있었음.
23. 네덜란드군은 정성공에게 항복을 한 후 대만에서 철수를 했고, 대만은 정성공이 접수를 하게 됨.
24. 대만에는 정성공이 만든 2만5천명의 군대만 들어온 것이 아니라 군인가족, 명나라 난민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주를 하게 됨.
25. 이때, 정성공을 따라 대만으로 넘어온 군인, 군인가족, 난민등을 본성인 이라고 부르게 됨.
26. 현재 대만의 집권당인 민진당의 뿌리가 이들 본성인임.
27. 본성인의 시조격인 정성공의 어머니가 일본인 마쓰라는 사실이 일본이 대만을 점령할때 일본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줌.
28. 대만에는 네덜란드, 스페인, 정성공등 여러 지배자가 교체되었기 때문에, 일본도 또 다른 지배자로 생각하는 경향도 강했음.
29. 한국과 달리 대만은 한족 이주민과 원주민, 해적등이 섞여사는 사회로 민족주의적 성향도 강하지 않았던 것임.
30. 1900년대, 대만에 중국인들의 2차 웨이브가 일어 남.
31.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의 내전에서 국민당이 패하고, 국민당의 정부인사, 군인과 가족, 난민들이 대만으로 들어 온 것임.
32.이들을 외성인이라고 부르고, 현재 대만의 야당인 국민당의 뿌리임.
33. 대만은 본성인의 민주진보당(민진당)과 외성인의 중국국민당(국민당) 양당체제임.
34. 대만인구중 본성인 비중이 70%정도라 민진당이 집권하는 경우가 많음.
35. 민진당은 본성인들이 주력이라 중국에 관심도 없고, "원래부터 대만은 중국과 무관하다"며 대만 독립을 주장하고 있음.
36. 국민당은 "중국 공산당에게 져서 대만에 와있지만, 언젠가 돌아가서 중국을 다시 통일할 것"이라며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고 있음.
37. 중국 공산당은 과거 자기들과 싸웠던 국민당을 밀고 있음.
38. 중국 공산당과 대만 국민당 모두 자기가 중국을 통일시키겠다고 하고 있으니, 하나의 중국이라는 모토는 동일한것임.
39. 국민당이 정권을 잡았을때는 중국과 큰 마찰이 없고, 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이 정권을 잡으면 중국과 문제가 생기는 이유임.
40. 1945년 일본이 패전하면서, 대만은 국민당 정부에게 반환이 됨.
41. 일본은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대만을 돌려줬지만, 대만과의 끈끈한 관계는 이어가고 있음.
42. 1972년, 중국과 수교로 공식 외교관계는 없어졌지만, 타이베이 경제문화대표처를 만들어 사실상 대사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
43. 대만도 일본에 주일 타이베이 경제문화대표처를 설치해서 대사관 역할을 수행시키고 있음.
44. 대만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때 국민적인 모금운동으로 3천억원(2.5억달러)의 성금을 일본에 전달하였음.
45. 한국도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445억원의 성금을 모금했지만, 대만은 모금액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금액을 전달한 것임.
46. 총금액으로는 미국이 정부차원에서 7억달러라는 가장 큰 지원금액을 보냈지만, 국민들의 성금으로만 보면 대만이 1위 였음.
47. 2025년 4월, 아사히 신문의 조사에 따르면, 대만인의 76%가 가장 좋아하는 국가로 일본을 꼽고 있음.
48. 일본인도 77%가 대만에 호감을 느끼고, 46%가 아시아에서 가장 친근한 국가를 대만을 꼽고 있음.
49. 일본인이 가장 비호감으로 생각하는 국가는 중국으로 일본인의 89%가 중국에 비호감이고, 이것도 23년 92%에서 개선된 숫자임.
50. 대만에 대한 일본인들의 호감도가 높기 때문에 정치인들도 이에 호응하고 있음.
51. 10월 31일과 11월 1일, 이틀 연속으로 다카이치 총리는 경주에서 APEC 대만대표를 만난 사실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게시를 함.
52. 중국 외교부는 즉각 "하나의 중국 원칙 위반'이라고 강하게 반발했고, 왕이 외교부장도 중일정상회담에 '잉웨'라는 표현을 사용함.
53. '잉웨"는 상대의 요청에 응해줬다는 의미로, 일본이 간곡한 요청을 해서 중국이 경주에서 중일정상회담을 응해줬다는 의미임.
54. 중국주석이 일본총리를 만나줬는데, 중일정상회담 다음날에 일본총리가 대만대표를 만난 사실에 불쾌감을 표현한 것임.
55. 중국의 불쾌한 감정은 2025년 11월 7일, 일본총리의 국회발언에서 폭발하게 됨.
56. 총리가 국회에서 "대만 유사시, 중국이 군함을 동원한 무력행사를 한다면 일본의 존립위기 사태에 해당할 수있다"는 발언을 한 것임.
57.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존립위기 사태"라는 단어임.
58. 일본이 직접 공격을 받지 않아도, 집단적 자위권을 발동할 수 있는 상황이 일본의 존립 위기 사태인 것임.
59. 이 발언은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침공하면, 일본은 미국과 함께 참전할 수 있다는 의미였음.
60. 일본 현직 총리가 '존립위기 사태'를 대만문제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있는 일임.
61. 총리의 존립위기 발언 초기에는 "일본 총리로서 너무 직설적인 발언을 한게 아니냐"는 여론이 높은 상황이었음.
62. 일본에 있는 중국 총영사가 소셜미디어에서 초강경 발언을 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함.
63. " 일본의 머리 나쁜 정치인이 죽음의 길을 선택했다.들이민 그 더러운 목을 주저없이 베어버릴 수 밖에 없다”라는 참수표현을 쓴것임.
64. 중국 대변인도 “대만 문제에서 불장난해서는 안 된다. 불장난을 하는 자는 스스로 불에 타 죽을 것이다”라고 초강경 발언을 이어감.
65. 중국 관영매체들도 "중국은 이미 실질적인 정면반격 준비를 마쳤다"며 보복을 예고하고 나서기 시작함.
66. 일본과 경제,외교교류를 중단하고, 무역보복, 경제 제재, 인적 교류 축소등의 보복수단을 나열하기 시작한 것임.
67. 중국의 항공모함 3척을 언급하면서 "정면반격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군사적 의미를 가진다"라는 위협발언도 추가됨.
68. 중국 외교부도 일본 대사를 불러서, "발언을 철회하지 않으면 모든 결과는 일본이 감수해야 한다”고 경고함.
69. 중국의 경고가 행동으로 하나씩 나오고 있음.
70. 11월 14일, 중국 외교부는 중국인들의 일본 여행 자제령을 발표함.
71. 중국 항공사들에서도 올해 연말까지 일본행 항공권을 취소하거나 변경할 경우 취소수수료를 받지 않는다는 발표가 나옴.
72. 중국 외교부는 이런 압박뒤에 총리의 발언철회를 요구했지만, 다카이치 총리는 '철회하지 않겠다"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음.
73. 11월 15~16일 교도통신 조사로는 총리의 발언이후 내각 지지율이 64.4%에서 69.9%로 상승한 결과가 나옴.
74. 내각 지지율 뿐만 아니라, 방위비 증액에 대해서도 찬성 60.4%, 반대 34.7%로 찬성이 높게 나오고 있음.
75. 중국의 강한 반응이 일본내 반중감정을 자극하기 시작한 것임.
76. 2025년 1~9월간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은 3,165만명이었고, 이중 749만명이 중국인 이었음.
77. 일본 관광업 종사자들은 중국인들 방문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부담을 밝히고 있지만, 일반 국민들은 반기는 분위기가 보이고 있음.
78. 중국 관광객들이 일본을 관광하는 과정에서 문화적인 차이등으로 다양한 문제를 일으켜왔기 때문임.
79.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도 다른 나라 관광객이 채워줄 것이고, 이미 외국인이 너무 많이 오고있다고 생각하는 일본인이 많은 상황임.
한줄 코멘트. 사드사태 이후에 한국이 겪었던 중국의 한한령 일본버젼이 나올것 같은 분위기임. 중국과 거래비중이 높은 일본기업이나 관광업계등이 양국간 충돌을 걱정하고 있지만, 중국의 너무 과격한 반응에 일본인들의 부정적인 여론이 높은 상황임. 일본 정치권도 여론에 영향을 받고 있어서, 양국간대치는 생각보다 길어질 가능성도 있는 상황임. 엔화만 좀 약하면, 조용하게 일본여행 가기 좋은 때가 될듯함. 중국과 일본인들도 한동안 한국관광이 대안이 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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