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반도체 경쟁력을 완전히 죽여버린 미일 반도체 협정 - 경제에서는 보호무역이 지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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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까지만 해도 미국은 모토로라, 인텔, 마이크론 등을 앞세워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을 주도하고 있었고 레이건 행정부의 경제 성적도 좋았지만 1985년을 변곡점으로 상황이 대반전됐다. 이전까지 세계 반도체 시장을 각각 44% 점유율로 양분하던 미국과 일본 사이에 균형이 깨진 것이다. 제2의 진주만 공습에 비유될 정도의 일본산 반도체 수출이 미국 반도체 산업에 치명타를 입혔고 심지어 미국산 전자기기의 일본산 메모리 사용도 급증했다. 같은 시기에 빠른 기간에 우후죽순 늘어난 일본 업체들의 영향으로 세계적으로 반도체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이상 현상도 발생하면서 메모리 가격이 폭락했는데 이걸 견디지 못한 인텔 등 미국의 반도체 업체 대부분이 메모리 시장에서 철수했다. 반면 일본 기업들은 공격적인 덤핑공세로 더욱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게다가 미국 주력 반도체 기업의 제품 품질이 일본 하위권 기업 제품보다 떨어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도 일본 반도체 산업의 강세가 꺾이지 않자 미국 반도체 산업은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섰고 결국 미국은 일본에 대한 통상압박을 준비했다. 1985년 6월 14일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의 무역대표부(USTR) 청원3은 그 시작이었다. 미국 반도체 업계는 일본 시장 진입 장벽, 외국산 반도체 차별, 일본 정부의 보조금 지원, 정부 주도의 반도체 투자 및 생산설비 확대 등을 문제삼았다. 이로부터 정확히 열흘 뒤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일본 반도체 기업 히타치 제작소, 미쓰비시전기, 도시바, NEC 등 7곳을 덤핑 혐의로 USTR에 제소했다. 이어 9월까지 인텔, AMD, 내셔널세미컨덕터 등 미국 반도체 업체들의 일본 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덤핑 관련 제소가 이어졌다. 미국의 대일본 통상압박의 정점은 상무부가 찍었다. 당시 말콤 볼드리지 미 상무부 장관은 일본 반도체의 덤핑혐의에 대한 직권조사로 압박 강도를 한층 끌어올렸다. 직권조사란 기업들의 제소 없이도 상무부 직권으로 특정국 수출품의 덤핑 여부 등을 조사하고 이에 대해 높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무역제재 수단이다.

일본 정부의 로비 등 그 어떤 외교도 양국 간 무역역조 심화와 통상갈등 최고조로 한껏 예민해진 미국을 상대로는 통하지 않았다. 결국 일본은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아 양자협정문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일본은 당시 10% 수준이던 일본 내 외국산 반도체 점유율[2]을 1992년까지 20%로 높이고 반도체 덤핑수출을 중단하기로 합의했으며 미국의 대일본 반도체 직접 투자 금지도 철폐해야 했고 협정 체결 후에도 미국은 일본의 미준수를 거론하여 보복관세 부과압박, 일본 반도체 산업 감시 등 압박을 이어갔다.

일본으로서는 미국의 부당한 통상 압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일본도 일본 기업을 보호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일본 정부가 반도체 국산화를 위해 미국 반도체 업계의 일본 투자를 의도적으로 방해한 반면, 반대로 일본 기업들은 미국 내에 공장을 건설하고 위기에 빠진 미국 반도체 기업을 매수하려는 시도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특히 1986년 후지쯔페어차일드 반도체 인수 시도는 미국 정가에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즉, 대놓고 미국을 상대로 보호 무역을 펼쳤으니 미국으로서는 일본의 일본 기업에 일방적인 보호를 부당하게 여길 여지가 충분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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