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황실 출신의 모모야마 켄이치가 쓸모없는 한국 국적을 포기한 것은 응당 당연한 일이었다; '독립운동가'라는 의친왕이라는 놈은 둘째 아들을 그렇게 차별하고 서럽게 만들어 일본 국적으로 만든 주제에, 즉 자기 가정도 잘 못본 주제에, 독립운동을 했다고 '역사 속 위인'으로 남을 자격이나 되는가?

 

1. 개요[편집]

대한제국 초대 황제 고종의 손자이자 의친왕장남이다. 한국명은 이건(李鍵). 의친왕과 마찬가지로 왕공족으로 생활했으나 이건은 국가에 대한 정체성도 없었던 걸로 보인다.

국적이 복잡한데 1909년에 대한제국에서 태어났으나, 1910년 경술국치일본 국적이 되었고, 1945년 종전으로 반 무국적 상태에 놓였다가, 1952년에 최종적으로 일본 국적이 박탈되었다.(자세한 사항은 조선적 문서로.) 그러나 1955년에 일본으로 귀화하였다. 결론적으로 대한제국 황실 출신의 한국계 일본인이다.

고종의 손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대한제국 시기에 태어났다.
 
 
의친왕의 5녀이며 이건의 이복 여동생인 이해경 여사가 집필한 《나의 아버지 의친왕》에 기록된 이해원의 증언에 의하면, 의친왕과 이건 부자는 원만한 사이가 아니었다. 어째서인지 의친왕은 아들들이 어릴 때부터 둘째 아들 이우는 무척 총애하면서 큰아들 이건을 노골적으로 증오해서, 술을 마시고 취하면 이건에게 일본으로 가서 살라고 버럭버럭 화를 내곤 했다. 이우가 방학 때 일본에서 돌아오면 직접 서울역으로 마중나갔지만, 이건이 돌아오는 날에는 일부러 외출하며 이건을 피하곤 했다. 어느날은 이건이 일본에서 돌아왔는데, 또 의친왕이 일부러 집을 비웠다. 이것을 알고 참다 못한 이건이 웃통을 벗어부친 채 마당에서 장대비를 맞으며 울부짖는 것을 이해원 여사가 목격한 적도 있다. 이건이 이우와 다르게 일본의 식민 지배에 순종적인 태도를 취하고, 해방 후에 아예 일본에 귀화한 데는 아버지 의친왕의 미스터리한 미움과 구박이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
  • 이건의 친일 성향을 근거로 그래서 의친왕이 박대한 게 아니냐는 변호가 있으나 이는 전후관계를 완전히 뒤집은 억지다. 친일성향이라 차별한 게 아니라 차별 당해서 마음 둘 곳이 없어진 이건이 안정을 찾아 기댄 곳이 일본이었다. 이건을 향한 의친왕의 차별대우는 일본 옷과 일본 장난감만 주는 식으로 유년기부터 줄곧 이어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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