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사회=아버지 없는 사회 -> 모든 종류의 권위에 대한 저항 -> 비트족, 제임스 딘, 태양족과 미유키족 (일본)의 등장 / 학생 운동, 석유 파동과 연합적군사건을 거친 뒤 나타난 오타쿠의 등장과 지배적 문화규범의 해체 (아즈마 히로키)
Alexander Mitscherich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사회=아버지 없는 사회
-> 모든 종류의 권위에 대한 저항
“오타쿠계 문화 같은 기묘한 서브컬처를 끌어안게 된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프랑스의
철학자 프랑수아 리오타르가 지적한 ‘커다란 이야기의 조락’이라는 개념을 들고 온다. “근대는 커다란 이야기가 지배한 시대였다.
그에 비해 포스트모던에서는 커다란 이야기가 여기저기에서 기능부전을 일으키고 사회 전체의 결속이 급속히 약화된다. 일본에서 그
약화는 고도경제성장과 ‘정치의 계절’이 끝나고 석유 파동과 연합적군사건을 거친 70년대에 가속화되었다. 오타쿠들이 출현한 것은
바로 그 시기이다.”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커다란 이야기’, 즉 ‘세계관’과 ‘사회적 가치규범’이 상실된 후 사람들은 한동안
그것을 날조하는 ‘이야기 소비’를 해왔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그마저도 더이상 욕망하지 않고 잘게 나눈 ‘데이터베이스’만을 소비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오타쿠들의 소비행태는 코제브가 전후의 미국형 소비사회를 지칭한 ‘동물적’이라는 표현과 상통하며, 욕구충족과
닫힌 사회성을 특징으로 하는 인간성의 새로운 단계로 이행하는 ‘동물화’의 방향과 ‘데이터베이스적 동물’이라는 새로운 인간상을
현대사회는 제시하였다는 것이다.
'동물화 하는 포스트모던'
제목만 들어봐선 어떤 책일지 도저히 감이 안온다.
이 책은 의외로,
일본의 서브컬처인 '오타쿠'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의문점이 따른다.
일단, 오타쿠란 무엇일까?
'동물화'란 무엇일까?
그리고 '포스트모던'이란 무엇일까?
먼저, '오타쿠'에 대해 알아보자.
오타쿠란,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PC, SF, 특수촬영, 피규어 등과 관련된 서브컬처에 탐닉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저자는 근대 이후의 일본 문화를 말하는 키워드로 '오타쿠'를 지목한다.
그가 오타쿠에 주목하는 이유는, 오타쿠계 문화의 구조에 우리 시대(포스트 모던)의 본질이 지극히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건담> <에반게리온> 등의 에니메이션을 보고 거기에 열광하는 세대.
그들이 바로 오타쿠이다.
저자는 이러한 오타쿠 중 제 3세대인, <에반게리온>을 보고 자란 80년대 출생 오타쿠에게 주목한다.
어라?
딱 저네요. 저... ㅎㅎ
이제 두 번째 질문에 앞서, 일본에게 '포스트모던'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포스트 모던이란 '근대의 뒤에 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60년대 혹은 70년대 이후 문화를 총칭하는 것이다.
일본은 '70년대 이후의 문화적 세계'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일본의 많은 사람들은 오타쿠의 기원을 '에도문화'로 생각한다.
오타쿠계 작품은 일본을 주제로 하는 경우가 많고,
일본적 표현을 많이 이용하며, 매우 일본적으로 소비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타쿠계 문화의 기원은 2차대전 후 50년대부터 70년대에 걸쳐 미국에서 수입된 서브컬처였다.
따라서 오타쿠계 문화의 역사란 미국 문화를 어떻게 '국산화'하느냐 하는 환골탈태의 역사다.
그 속에서 전통의 상실, 폐전의 아픔이 고스란히 감춰지게 된다.
즉, 오타쿠계 문화의 일본에 대한 집착은 전통을 바탕으로 성립한 것이 아니다.
오타쿠와 일본 사이에는 미국이 끼어 있는 것이다.
여기서 오타쿠 문화가 일본의 포스트모던을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이 발견된다.
일본 문화가 패전 후 미국화와 소비사회화 물결에 의해 뿌리째 변해버렸다는 것에 대한 강렬한 불안감이 바로 그것이다.
즉, 오타쿠에게 일본 사회의 본질이 발견되는 것이다.
그럼 여기서 '동물화'한다는 말은 무엇일까?
이 개념은 좀 복잡하다.
이는 '코제브'의 <헤겔 독해 입문>에서 파생된 단어다.
코제브에게 헤겔적 역사, 즉 근대 역사 이후 사람들에겐 두 가지 생존 양식만 남았다.
그 하나는 미국적 생활양식의 추구로 그가 말하는 '동물로의 회귀',
또 하나는 일본적인 '스노비즘'이다
여기서 '동물'의 특징은 항상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굶주림도 투쟁도 없는 대신 철학도 없다.
한편 '스노비즘'은 자연과 대립하고 투쟁하지만, 역사를 움직일 수는 없다.
이 예로 할복자살이 있는데, 할복자살을 한다고 해서 혁명을, 역사를 움직일 수는 없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부분인 '근대 vs 포스트모던' 이야기를 한다.
그는 근대를 '트리형 세계'
포스트 모던을 '데이터베이스 세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트리형 세계'는 표층이 심층에 의해 결정된다.
여기서 심층이란 세계관이나 설정 같은 '커다란 이야기'를 의미하고
표층이란 같은 세계관을 반영하는 작품군인 '작은 이야기들'을 의미한다.
근대의 소비자들은 커다란 이야기를 구매했다.
그들은 이데올로기, 세계관 같은 것이 지배하는 세상을 살았던 것이다.
반면 '데이터베이스 세계'란 무엇일까?
이 세계에선 심층에 '커다란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포스트모던의 세계에서는 세계관이나 이데올로기가 상실된다.
그 자리엔 설정의 집적, 즉 '커다란 비이야기'가 생긴다.
이 세계의 표층엔 같은 '작은 이야기들'이 생기지만 근대와 형태가 다르다.
이 이야기들은 같은 데이터베이스에서 무한하게 파생되는 작품들, 즉 '시뮬라크르'가 존재한다.
시뮬라크르는 쉽게 생각하면 '복제물', '2차창작' 이다.
예를 들면, 인기 만화 캐릭터가 있다.
오타쿠들은 이 캐릭터를 복제하고 새롭게 창작하여 즐기고 소비한다.
결론적으로 포스트모던의 세계에서는 세계관이 사라진다.
이 '데이터베이스 세계'의 심층엔 주로 '모에'요소가 존재하게 된다.
'모에요소'란 쉽게 말하면 매우 귀여운 것을 말한다.
일본 만화를 보면 무척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나오는데 이걸 모에하다고 생각하면 쉽다.
오타쿠들은 만화나 게임의 스토리나 세계관을 즐기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 '모에요소'를 즐기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데이터베이스 소비'라고 부른다.
근대의 인간은 이야기적 동물이었다.
그들은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갈망을 인간 고유의 사교성을 통해 충족할 수 있었다.
바꾸어 말하면 작은 이야기와 커다란 이야기를 서로 비슷하게 묶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포스트모던의 인간은 '의미'에 대한 갈망을 사교성을 통해 충족할 수 없으며
오히려 동물적인 욕구로 환원함으로써 고독하게 채우고 있다.
거기서는 작은 이야기와 커다란 비이야기 사이에 어떠한 연계도 없고,
세계 전체는 누구의 삶에도 의미를 주지 않은 채 표류하고 있다.
의미의 동물성으로의 환원,
인간성의 무의미화,
그리고 시뮬라크르 수준에서의 동물성,
데이터베이스 수준에서의 인간성의 해리적인 공존.
이것이 저자가 생각하는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다.
저자는 마지막 부분에서, 이러한 일본의 포스트모던 현상을 인터넷 공간과 게임에 확장시켜 설명하고 끝맺는다.
이렇게 보면 어려워 보이지만
책을 직접 보면서 그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쉽게 이해된다.
철학책을 쓰는 저자가 쓴 책이지만 (그리고 철학 분야에서 꽤 유명한 작가다)
이 책은 일반인을 겨냥해서 씌여졌고, 일반인들에게 많이 읽혔다고 한다.
오타쿠, 만화와 게임 요소를 가지고 사회를 설명하다니.
정말 흥미로운 책이었다.
우리 사회도 어떤 것을 가지고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는데,
아직 우리 사회는 우리 사회만의 특정한 색깔이 부족한 것 같다.
만화도 일본거고, 케이팝도 미국건데.
뭘 가지고 설명해야 되려나...
만화와 에니메이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는게 좋다.
개인적으로는 얼마전에 읽었던 <애니메이션에 빠진 인문학>과 엮어 읽어도 좋을 것 같았다.
반면에, 만화를 잘 보지 않은 사람이 읽기엔 좀 버거울 수도 있겠다.
나도 일본 연예 게임은 몰라서, 그 부분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나저나 갑자기 오랜만에 <에반게리온>이 무척 보고싶어지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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