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2024년 11월 25일 - 치매노인과의 만남

신요코하마에서 주오구로 걸어가는 대장정에서

새벽 3시 즈음, 엄동설한의 인적도 드문 길거리에서,

왠 70대 중후반에서 80대로 보이는 치매 할머니가 나를 불러 도움을 요청했다.


어디 사냐고 물어보니 키타센주에 산다고 하는데,

택시를 잡아드릴까요 하고 물어보니 이상한 얘기를 하면서 택시가 오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을 한다. 대화 도중에도 택시가 계속 눈에 띄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물어봤던 질문을 하고 또 하고...

곧 치매노인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새벽 5시에 첫차가 있으니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가장 가까운 역까지 데려다드릴까요, 물어보니 또 중언부언한다.

자기가 사는 곳도 정확히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전화번호가 되지 않아 경찰에 연락할 수도 없고,

하는 수 없이 바로 앞에 있는 맨션 1층이 따뜻해서 거기에 데려다주고,

사람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나중에 택시타면 쓰라고 1000엔도 손에 쥐어주었다. 

보통 현금을 안 가지고 다니는데 이날은 마침 1000엔이 주머니에 있었다.

나중에 맨션에서 나오는 사람이 알아서 경찰이든 어디든 인계해주겠지...


연신 고맙다고 말을 하는 모습에서

역시 일본할매는 일본할매구나 싶고,

이 새벽에 엄동설한에 다리도 불편한 양반이 어떻게 인적이 드문 여기까지 왔는지 의아해서

가족이 버린 건가 싶기도 하고 

(치매노인이 혼자서 새벽에 몽유병 환자처럼 외출을 하는 경우는 흔하긴 하지만... 사는 곳과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노인네가 추운 겨울의 새벽에 혼자서 걸어다녔다고 볼 수는 없는 거리였다.)

마음이 좀 찡하였다.

 

이 날은 새벽에 너무 춥고, 또 개인적인 사건으로 수심이 깊었던 날이라,

말을 계속 걸고 싶어하는 이 할매에게 이성적으로 도와주질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택시를 태워서 기사한테 1000엔을 주고 가장 가까운 경찰서까지 가주라고 말을 할 걸 그랬다.

그게 가장 깔끔한 방법이었는데, 어쨌든 치매노인을 제외하고 낯선 사람들과 말을 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고, 머릿 속에 이런 생각도 퍼뜩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컨대, 어린 아이나 다 늙은 노인들 (정신 멀쩡하고, 다리 멀쩡한 젊은(?) 노인네들 말고), 그리고 작은 동물들은 어딘가 귀엽고 작고, 나약하고,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해서, 내게 불교에서 말하는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한참 생산활동 연령대인 10대~70대까지의 사람들은 탐욕심과 이기주의, 그리고 어리석음이 그득하여 꼴보기 싫을 때가 많다.

 

인간 본래의 순수한 본성을 표상하는 것은 인생 늙으막의 노인들과 인생 초반기의 어린아이들인가, 아니면 혈기왕성하고 탐욕에 찌든 젊은 시절인가? 만약 전자가 인간본성과 더 비슷하다면 나는 인간을, 생명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나, 후자가 더 비슷하다면, 나는 (최소 한동안은) 인간혐오자로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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