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개전을 앞둔 1940년 9월 일본 정부는 “국가총력전의 방책을 연구해 국책에 기여”한다는 목적으로 ‘총력전연구소’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모인 이들은 육해군과 내무성·대장성·상공성 등 정부 부처, 일본제철·일본우선·도메이통신(현 교도통신의 전신) 등 주요 국책 기업에서 활약하던 30대 초중반의 엘리트들이었다. 이들은 개전을 코앞에 둔 1941년 7월부터 전쟁 모의시험(시뮬레이션)을 진행해 “초반엔 일본이 우위를 점하겠지만, 서서히 미국의 산업생산력 등이 발휘되고 소련도 참전해 3~4년 뒤엔 패배할 것”이란 결론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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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간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란 심란한 뉴스를 지켜보며 마음이 너덜너덜해졌다. 그동안 한반도를 둘러싸고 적잖은 ‘위기설'이 나돌았지만, 이번만큼 진짜 전쟁이 터질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에 시달린 적은 없었다. 숨이라도 돌릴 겸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 8월 초 펴낸 정책 구상집(‘보수정치가 이시바 시게루―나의 정책, 나의 천명’)을 꺼내 읽다, 그가 강연 때마다 청중들에게 소개한다고 강조한 ‘쇼와 16년(1941) 여름의 패전’ 책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

이 책은 80여년 전 일본이 저질렀던 뼈아픈 ‘판단 미스’에 대해 다루고 있다. 미-일 개전을 앞둔 1940년 9월 일본 정부는 “국가총력전의 방책을 연구해 국책에 기여”한다는 목적으로 ‘총력전연구소’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모인 이들은 육해군과 내무성·대장성·상공성 등 정부 부처, 일본제철·일본우선·도메이통신(현 교도통신의 전신) 등 주요 국책 기업에서 활약하던 30대 초중반의 엘리트들이었다. 이들은 개전을 코앞에 둔 1941년 7월부터 전쟁 모의시험(시뮬레이션)을 진행해 “초반엔 일본이 우위를 점하겠지만, 서서히 미국의 산업생산력 등이 발휘되고 소련도 참전해 3~4년 뒤엔 패배할 것”이란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런 결론이 나왔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쟁을 피해야 했다. 그러자 도조 히데키 육군대신이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자네들 얘기도 알겠네만, 일-러 전쟁 때도 그랬듯이 전쟁은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네.” 결국 12월8일 진주만 공습이 이뤄졌고, 젊은 엘리트들의 예측대로 3년8개월 만에 일본은 항복했다. 책 제목이 암시하듯 일본은 ‘개전’하기 전부터 ‘패전’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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