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자라야 그 뜻을 이루노니
내가 2024년 7월 말~9월 말, 이렇게 두달간 드라마/영화 감상에 미친듯이 몰입한 것은,
나 자신의 인생을 드라마로 설정하기 위한 일종의 준비 작업이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드라마를 많이 봐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새로운 세계의 창조주로서 나는 드라마 속 희곡작법에 익숙해져야 한다.
구태여 특정 기간에 수십편의 작품들을 몰아서 본 것은,
무언가 하나에 빠져들면 미친듯이 빠져들어야 거기서 얻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어중간하게 빠져들면, 결과도 어중간하게 나올 뿐이다.
이는 인생의 모든 영역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요컨대, 일심(一心)이 관건이다.
얼마나 오랜시간 주어진 주제에 강렬히 집중할 수 있느냐가 일의 성패를 가른다.
이는 예술의 감상도 그렇고,
연구도 그러하며,
외국어 학습도 그러하다.
물론 사랑의 성취도 그러하다.
불타는 연애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사랑의 환희와 상실감, 그리고 그 궁극적인 본질에 대해 알 것인가?
일심으로 미친듯이 파고들어야
내가 심은 씨앗을 수확해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모든 종교 교주들이 말하듯,
일심자라야 뜻을 이루노니,
그 간절하고 성실한 마음이
불가능을 가능케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종교적 신앙의 핵심은 일심인 것이다.
김탄허와 한동석,
그들은 본디부터 신통력이 있지는 않았지만,
한번 책을 보면 하루종일 그것에 전념할 정도로 무섭게 사물 배후의 이치에 파고들어,
범인들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래를 내다보는 지경까지 학문적 성취를 이룩했던 것이다.
하여, 나는 드라마 감상이 완료되는 2024년 09월 23일부터는
잡생각도 금하고,
웹서핑도 금하며,
기타 불필요한 행위를 최소화하여,
나의 전역량을 새로운 시대를 여는데 투입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간에 쫓기듯 하는 게 아니라,
아주 여유로운 마음으로 할 것이다.
치열함과 여유로움이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해야 한다.
이제는 내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더 이상 드라마의 주인공들을 지켜보는 관객으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주인공으로서 행동해야할 시점에 임박했다. (* 저녁시간대만 되면 어김없이 방구석에서 드라마를 감상하는 주부들, 또는 야구나 축구 경기를 보는 사내들의 그 하찮은 소시민적 삶을 나는 매우 싫어하고, 또 경멸한다. 그런 종류의 인간들은 가십을 퍼나르는 주체가 될 수는 있어도, 결코 자기 삶의 주역이 될 수는 없다. 역사의 무대의 전면에 서는 일은 더더욱이나...)
앞으로 2-3년이 고비다.
이 시간이 지나면 역사적 과업을 이루고, 내 뜻하는 바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주요 분기점을 놓치게 된다.
그리고 기회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일심(一心)이라고 하는 요지부동의 자세,
그것이 새로운 시대를 만들 것이다.
'오컴의 면도날'과 MVP 같은 극한의 실용주의를 일상의 전범위에 적용하여,
필요한 영역/인간/자원에만 역량을 집중하자.
어느 소리없는 망자의 외침처럼,
청춘은 짧고 기회는 한정적이지만,
뒤돌아보면 어느덧 노년이 되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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