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년"에 등장하는 신흥종교, 오모토; 생장의 집 등 오모토 이후 나타난 일본 신흥종교 대부분에게 영향을 준, 일본 종교계에서는 큰 파장을 미친 종교
大本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성립된 일본의 신토(神道)계의 신흥종교. 아야베시에 살던 가난한 과부 노파 데구치 나오(出口なお), 나오의 막내사위 겸 양자인 데구치 오니사부로(出口王仁三郎)를 공동교조로 여긴다. 한국식 한자 이름은 대본교. 오모토교(大本敎)라고도 하나, 정식 명칭은 敎를 붙이지 않는다. 교토부 아야베시에 있는 매송원(梅松苑)과 가메오카시(亀岡市)에 있는 천은향(天恩鄕)을 모두 본부로 여긴다. 공동교조 2명과 관계 있는 두 곳을 모두 본부로 삼은 것이다.
막부 말기 메이지 시대 간사이지방에서 발생한 일본 3대 신흥종교[2]로, 메이지 25년(1892) 2월 3일[3] 당시 57세였던 데구치 나오라는 과부가 신들림하여 신령의 말을 하면서 시작했다. 이 신은 나오에게 신들림한 상태로 나오와 이야기하면서 스스로를 간방의 금신(艮の金神, 우시토라노 곤진)이라고 밝혔다. 데구치 나오는 이후 병을 낫게 하는 신력을 지닌 사람으로 아야베에 조금씩 이름이 알려졌다. 나중에 우에다 기사부로, 훗날 '데구치 오니사부로'라고 개명하여 오모토의 성사로 불리는 사람이 나오에게 찾아와 합류하면서 비로소 오모토가 종교조직으로 발족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경전은 《오모토 신유(大本神諭)》, 《영계 이야기(靈界物語)》. 신도 수는 17만 명 정도로 추정한다.
한국에서 오모토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고, 현대 일본에서도 오컬트나 종교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듣보잡에 가깝다. 그러나 오모토 이후 나타난 일본 신흥종교 대부분에게 영향을 준, 일본 종교계에서는 큰 파장을 미친 종교이다. 예를 들면 오모토의 기관지 편집주간 출신이 세운 생장의 집이라든가, 오모토 신자 출신이 세운 세계구세교 등.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식민지 조선에서 이름을 떨치던 보천교와 교류한 적이 있다. 둘 다 당시 일본으로부터 감시대상인 동시에 오모토는 친 제국주의 성향을, 보천교는 시국대동단 결성 등 친 제국주의 움직임을 보였다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4]
일본 소설가 타카하시 카즈미(高橋和巳 1931-71)가 1966년에 출판한 소설 사종문(邪宗門)에 등장하는 신흥종교단체 히노모토 구령회(ひのもと救霊会)의 모델이 오모토 교단인 것으로도 회자되곤 한다. 소설 제목이 사종문(사악한 종교단체)인 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오모토를 모델로 삼은 작중의 종교단체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성립된 일본의 신토(神道)계의 신흥종교. 아야베시에 살던 가난한 과부 노파 데구치 나오(出口なお), 나오의 막내사위 겸 양자인 데구치 오니사부로(出口王仁三郎)를 공동교조로 여긴다. 한국식 한자 이름은 대본교. 오모토교(大本敎)라고도 하나, 정식 명칭은 敎를 붙이지 않는다. 교토부 아야베시에 있는 매송원(梅松苑)과 가메오카시(亀岡市)에 있는 천은향(天恩鄕)을 모두 본부로 여긴다. 공동교조 2명과 관계 있는 두 곳을 모두 본부로 삼은 것이다.
막부 말기 메이지 시대 간사이지방에서 발생한 일본 3대 신흥종교[2]로, 메이지 25년(1892) 2월 3일[3] 당시 57세였던 데구치 나오라는 과부가 신들림하여 신령의 말을 하면서 시작했다. 이 신은 나오에게 신들림한 상태로 나오와 이야기하면서 스스로를 간방의 금신(艮の金神, 우시토라노 곤진)이라고 밝혔다. 데구치 나오는 이후 병을 낫게 하는 신력을 지닌 사람으로 아야베에 조금씩 이름이 알려졌다. 나중에 우에다 기사부로, 훗날 '데구치 오니사부로'라고 개명하여 오모토의 성사로 불리는 사람이 나오에게 찾아와 합류하면서 비로소 오모토가 종교조직으로 발족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경전은 《오모토 신유(大本神諭)》, 《영계 이야기(靈界物語)》. 신도 수는 17만 명 정도로 추정한다.
한국에서 오모토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고, 현대 일본에서도 오컬트나 종교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듣보잡에 가깝다. 그러나 오모토 이후 나타난 일본 신흥종교 대부분에게 영향을 준, 일본 종교계에서는 큰 파장을 미친 종교이다. 예를 들면 오모토의 기관지 편집주간 출신이 세운 생장의 집이라든가, 오모토 신자 출신이 세운 세계구세교 등.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식민지 조선에서 이름을 떨치던 보천교와 교류한 적이 있다. 둘 다 당시 일본으로부터 감시대상인 동시에 오모토는 친 제국주의 성향을, 보천교는 시국대동단 결성 등 친 제국주의 움직임을 보였다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4]
일본 소설가 타카하시 카즈미(高橋和巳 1931-71)가 1966년에 출판한 소설 사종문(邪宗門)에 등장하는 신흥종교단체 히노모토 구령회(ひのもと救霊会)의 모델이 오모토 교단인 것으로도 회자되곤 한다. 소설 제목이 사종문(사악한 종교단체)인 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오모토를 모델로 삼은 작중의 종교단체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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