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윤회/카르마의 구조적 문제점 - 환생/윤회/카르마를 사실로 인정한다고 해도, 창조주의 우주설계 방식이 줫같아서 마음에 안 든다; 이 줫같은 창조주 녀석!

환생/윤회/카르마의 구조적 문제점 

 

1. '가해자의 행위를 은연 중 정당화'하는 문제

내가 현생에 장님인 것은 전생에 누군가의 눈을 멀게해서 그런 것이고, 강간을 당한 것은 전생에 누군가를 강간해서 그런 것일테니, 가해자의 행위를 두둔할 수 있게 됨. 실제로 인도나 여러 후진국들에게는 이런 식으로 피해자들에게 잘못을 전가.

누군가가 나에게 해꼬지를 해도, 그것을 수용할 수밖에 없게 만듦.


2. '성격의 불연속성' 문제

재벌이나 권력자 중에는 포악하고 인색한 성격을 지닌 이들의 비율이 높은데, 이들이 전생에는 남들에게 베풀고 선업을 쌓았다고 믿기는 어려움. 전생이든 현생이든 성격의 연속성을 전제해야 할 것이기 때문. 

 

3. '의식이 지워진다음 업장을 갚아나간다는 설정의 윤리적 타당성' 문제

전생의 의식과 거친육체가 사라진 마당에, 현생에서 느닷없이 전생의 인과응보를 갚아나간다는 설정값이 과연 올바른지에 대한 문제. 


4. '무아에 대한 왜곡' 문제

불교를 믿는 많은 이들이 윤회를 강조하지만, 사실은 불교의 핵심 사상은 비아 (무아는 사실 잘못된 번역으로, 비아가 올바른 개념). 애초에 '나'라고 하는 고정된 실체가 없고, 삼라만상이 무지에서 발생한 망상이라는 것이 불교의 가장 꼭대기 가르침인데 (12연기법), 윤회전생에 집착하면 그것은 개체적 차원의 문제에 포커스를 맞추는 결과를 낳고, 궁극적으로는 진리를 호도하는 결과를 낳게 됨. 애시당초 '나'가 존재하지 않는데, '나'의 윤회를 이야기한다?


5. '"최초의 전생", "최초의 카르마", "최초의 악"'의 문제

불교 경전은 전생윤회에 대해 상세하게 이야기하지만, 그 시발점이 되는 최초의 전개과정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득력있게 이야기를 못 한다.

이 점에 관해서는 힌두교의 텍스트가 훨씬 낫다.

불교가 최초의 전생, 최초의 카르마, 최초의 악에 대해 제대로 설득력있게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는, 비아를 강조하는 불교의 입장에서는, 힌두교 베단타처럼 악의 능동적 역할에 대해 인정할 수 없기 때문. 그러나 총이 등장하지 않는 평화롭고 잔잔한 영화는 재미가 없어서 아무도 보러 가지 않듯이, 이 세상은 일종의 유희로서, 온갖 잔혹하고 더러운 일들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불교에서는 악을 정화의 대상, 수행의 대상으로만 보지, 그 능동적 역할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딜레마 때문에 불교는 최초의 전생, 최초의 카르마가 어떻게 해서 발생했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애매모호하게 그저 '무지'에 의해 업이 발생했다는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청정한 대일여래가, 최초의 우주의식에게, 어떻게 무지가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그보다는 악은 처음부터 우주에 내재된 속성으로서 일정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함이 올바르다. 우리가 개체의식으로서 삶을 즐기기 위해서, 악은 정화의 대상일 뿐 아니라,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조미료 같은 것이다. 창조와 악은 불가근불가원의 관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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