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를 검토해보면

인류 역사를 깊이 검토해보면

대중들이 떠들어대는 정의, 공정, 선, 민주주의 같은 개념들이

얼마나 허망하며,

그런 것들이 실제로는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대중들은 멍청하니까 그런 개념들이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우상화/추상화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자연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어떻게든 자신의 의미를 구현하고자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이기적인 개인들의 집합체 밖에 없다.


개들은 먹이를 달라고 낑낑대고, 산책을 하고 싶다고 낑낑대며, 짝짓기를 하고 싶다고 낑낑대고, 관심을 달라고 낑낑댄다.

욕망의 형태가 좀 더 세분화되었을 뿐이지, 기본적으로는 인간도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밥을 먹고 싶다고, 물을 마시고 싶다고, 잠을 자고 싶다고, 짝짓기를 하고 싶다고, 인정을 받고 싶다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다고, 각종 유희와 쾌락을 즐기고 싶다고 낑낑대는 것이 호모 사피엔스 종의 전형적인 특징들이다.

 

이 고도로 이기적인 개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대놓고 야만적이고 잔인한 행위를 하기도 하고,

집단의 질서에 암묵적으로 동조하거나 방조하기도 하며,

이와 동시에 협력과 공생을 추구하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협력'과 '공존' 역시

어디까지나 자기 삶의 기반(사회적 안전망)과 '사회적 동물'인 인간으로서의 의미를 확립하기 위한 시도이지,

그 자체로 인류가 선한 행위를 지향한다는 증거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위선의 껍질을 선명하게 도려내고 나서

남는 것은 철저한 자기 자신의 욕망 뿐이다.

 

시간이 흘러 이데올로기와 혁명의 구호가 빛을 바라자,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

프랑스의 68혁명 세대,

중국의 문화대혁명 세대, 

일본의 전공투 세대,

한국의 5.18 운동권 세대는

사랑과 평화, 정의, 인권, 환경을 외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역사상 그 어느 세대보다도 더 물질주의적이고, 

서로에게 무관심한 세대로 변모했다.

 

이들이 '변절'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의 욕망에 충실했을 뿐이다.

 

사회가 이데올로기의 홍역을 앓자 얼씨구나 하며 그 축제의 분위기에 편승했다가,

사회가 신자유주의의 홍역을 앓자 얼씨구나 하며 다시 새로운 흐름에 순응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1997년 IMF 구제금융의 환란을 겪은 뒤 

민족주의를 외쳤던 인간들의 상당수는

미국으로 표상되는 천민자본주의를 숭배하게 되었으며,

영어를 숭배하게 되었고,

의과대학을 숭배하게 되었으며,

하버드로 대표되는 아이비리그 대학들을 숭배하게 되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다 욕망의 판이 바뀐 것에 불과했을 뿐,

세계는 애초에 공동선을 추구했던 적이 없었다.

 

세계 각 국의 운동권 세대를 보면 알 수 있듯,

타인을 돕고 사회개혁에 동참하려는 행위 역시 내면의 욕망이 밖으로 투사된 결과물이다.


물에 빠진 아이를 돕는 것도,

아프리카 난민에게 기부를 하는 것도

그 외연은 이타적으로 보이나,

실은 이기적인 욕망의 투사다.

 

즉, 타인을 돕는 행위는 자기가 이 세상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는 썩 괜찮은 사람이고, 존재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스스로에게 또는 타인에게 납득시키기 위한 인정욕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서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회에 기여할만한 일을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얼간이/위선자들의 껍질을 도려내고 남는 것은 각 개인의 내밀한 욕망 뿐이다.


아로는 지금까지 진정한 의미에서 이타적인 인간은 단 한명도 본 적이 없다.

이타적인 척을 하는 얼간이/위선자들은 많이 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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