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론의 치명적인 문제점: 윤리의 부재
모든 것이 정해져있다는 숙명론을 받아들이게 되면
그 사실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한 가지 치명적인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바로 윤리적 문제가 그것이다.
만약 이 세상 모든 것이 처음부터 정해진 시나리오를 따라 진행되고 있다면,
젖먹이 아기를 쓰레기통에 유기한 철없는 10대 부모들,
시민 운동가들을 납치해 손, 발을 날붙이로 절단시키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
영문도 모른채 극한에 공포 속에서 바다 한가운데로 수장된 비행기 탑승객들,
틈만 나면 살인의 유혹에 빠져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는 연쇄 살인마들의 존재는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운명론자들에 따르면 이 모든 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역사의 발전과정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신의 뜻, 자연의 섭리일 것 아닌가?
이 경우, 이 세상의 모든 부조리와 폭력, 전쟁과 기아, 기타 무수한 참상들은 신이 즐기는 창조적 유희로 전락할 뿐이다.
숙명론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이 세상을 만든 절대자가 망상장애와 정신분열에 시달리는 사이코패스 사디스트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한다.
이 치명적인 윤리적 딜레마를 운명론자들은 무슨 재주로 설명할 것인가?
아로가 보기에 이 딜레마를 풀 수 있는 궁극적인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다.
즉,
(1) 자유의지론을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받아들이거나, (* 자유의지론과 운명론 진영의 대립은 펠라기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논쟁에서 보듯 그 역사가 아주 오래된 것으로, 신학계/철학계의 영원한 떡밥이라고 할 수 있다.)
(2) 힌두교 베단타에서 하는 것처럼, 악의 존재를 완전히 긍정해야 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면, 악이라고 하는 꼬리표 자체가 이원론적 사고에서 나온 것이므로, 그런 개념 자체를 종식시켜야 한다. 삼라만상의 일원성에 기초해 그렇게 하든, 불교의 연기법에 근거해 그렇게 하든, 어쨌든 악은 선이라고 하는 상대성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종속적인 개념이며, 그 자체로 독립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객관적 진실과 관계없이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이 사고실험의 결과는 전적으로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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