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수도 Tel-Aviv는 나치의 물품으로 건설되었다. " (Haaretz, 2019년 10월 25일)
[세상의 비밀을 들려주는 라디오] “기존의 진실을 의심하는 것이 민주 시민의 도덕 ㅎㅎㅎ” (자칭, 아우슈비츠 생존자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 Elie Wiesel) " 나치는 독일의 유대인들이 독일 땅에서 모두 떠나 주기를 바랬고, 유대인 상류층이 관여하는 세계 유대인 협회는 유대 서민들을 팔레스타인으로 끌고 오기를 원했으며 중산층 유대인은 이를 싫어해 유럽에 머물고 싶어했다. 이 삼각관계 속에서 유대인 문제가 존재했다. 1933년부터 1939년까지 히틀러는 20만 명의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으로 이주 시켰다. 1941년 7월 31일 헤르만 괴링은 소련 공격 초기, 유대인 ‘해외이주와 대피’(Auswanderung oder Evakuierung)에 관한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Endlösung der Judenfrage) 명령을 전달했다. 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1942년 1월 SS 수뇌부는 베를린 교외 반제(Wannsee)에서 회의를 열었다. 전쟁으로 인해 아프리카 등지의 이민이 어려우니 이들을 동쪽 수용소로 보내 노동을 시키기로 결정했다. 1942년 6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부터 유대인의 이민 문제는 더 이상 붙잡고 있을 이슈가 아니었다. 전쟁물자를 생산하는데에 포로들과 함께 노동을 해야 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독일은 토사구팽 당했다. 뉴욕 유대 단체가 이끈 뉘렘베르크 재판을 통해 수용소 유대인에 대한 보상금을 요구했다. 이 돈을 받아내기 위해 서구 역사학자들로 하여금 학살(holocaust)의 단어를 오로지 유대인에게만 쓰도록 강제했고, 전쟁 보상금의 대상을 수용소 노동자가 아니라, "유럽 전역에 살고 있던 유대인 전체"로 확대하여 독일 정부로부터 70년 간 어마어마한 돈을 뜯어 내었다. 독일은 꼼짝 할 수가 없었다. 서독의 정보방어부장 코모사(Gerd-Helmut Komossa) 소장은 미국과 연합국이 독일의 주권을 제한한다는 비밀협약 (Geheimer Staatsvertrag 1949년 5월 21일)을 폭로했다. 2099년까지 독일 대중문화와 언론을 장악하고, 독일 보유의 금을 압수하며, 총리 인준까지 임기 마다 통제한다는 것이었다.(Komossa G.-H., Die Deutsche Karte: Das verdeckte Spiel der geheimen Dienste. Austria: Ares-Verlag, 2007.) 총리 안젤라 메르켈은 그의 주장을 극구 부인했고 서적을 판금시켰다. 핑켈슈타인(Norman G. Finkelstein)은 유대 단체의 이 마케팅을 '학살 산업'(Holocaust Industry)이라고 불렀다. (Finkelstein, N.G., The Holocaust Industry: Reflections on the Exploitation of Jewish Suffering, USA: Verso, 2015) 핑켈슈타인의 부모는 수용소 출신이었다. 그는 대학에서 파직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9R9nkYa21w
The Transfer Agreement 1978 책
유태인 죽이는게 아니라 이주하는게 수용소의 본래 목적
히틀러오 유태인단체의 파트너십
60,000명 이주 (1933-1936)
Zionist federation
유태인의 독일제품 불매운동 중지 및 팔레스타인 강제이민
앞면 나치, 뒷면 유대연맹 화폐 발행
1인당 정착금
1933-1938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정부의 반유대주의 정책
1) 이민쿼터 100->10%로 total 120만명 이주
2) 독일경찰의 신분허가증 소지 유태인만 허용
st.Lewis로 유태인들 쫓아냄
Otto Meyor 유태인 철십자훈장 수여
히틀러 20명 유태인 장교 철십자 직접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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